백령도를 공격한 다음 핵카드를 꺼낸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온 이유에 대하여 자유진영에서는 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체제를 보장해주면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라고 판단, 6자 회담, 햇볕정책, 일방적 대북(對北) 지원을 해 보았지만 실패하였다. 북한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핵무장의 길을 선택한 것은 핵무기로 남한을 공산화, 한반도를 통일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목표가 북한 노동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소위 전문가들은 편리한 대로 해석하였다.
경제력이 거의 50배나 되는 한국이 인접하고 있는 한 북한은 장기적으론 체제 유지를 할 수 없다. 남북한 체제 대결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樣式)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므로 한반도에서 정통성 있는 국가는 하나여야 한다. 소위 수령 지도 체제의 영속적 유지를 위하여는 한국을 종속화시키거나 공산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현상타파를 결심한다. 지금부터는 가상 시나리오이다.
그는 백령도에 대한 포격을 명령한다. 군인 및 민간인을 포함한 수백 명의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한다. 한국군은 여러 차례 공언한대로 원점 타격으로 보복에 나선다. 공군 전투기 수십 대가 출격, 백령도 포격을 명령한 군단 사령부와 포대를 공격, 파괴한다. 이번엔 북한 쪽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다.
다음 날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중대 발표를 한다. 요지는, “00월 00일까지, 우리를 공격한 한국군의 책임자들(국방장관, 합참의장, 공군참모총장을 특정)을 처벌하고, 손해를 배상하며, 백령도를 넘겨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의 한 도시에 대하여 핵무기를 쓰겠다”는 최후통첩이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긴급 전화 회담을 갖고 대책을 의논, 미국이 한국에 약속해온 핵우산 정책, 즉 확장된 억지 전략을 적용하기로 하였다고 공동 발표한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한반도로 전개된다. 중국은 이에 대응, 해군에 동원령을 내린다. 북한은 만약 미국이 공격해오면 미국의 서부지역을 핵공격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핵전쟁 반대운동이 일어난다. 대규모 시위대가 평화를 외치면서 서울 시내를 점거하고, 북한의 핵공격 위협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방어적 대응을 비판한다. 많은 국민들도 “일단 핵전쟁은 막아야 한다”면서 한미(韓美)의 강경대응에 반대한다. 갤럽 여론조사에선 70% 이상이 '평화를 위하여 북한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서울을 위하여 로스앤젤레스를 희생시킬 수 있나?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한국군의 원점 타격이 과잉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된다.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주장하는 의견은 목소리가 약하다. 이런 움직임을 지켜보던 미국에서도 의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서울을 지키기 위하여 로스앤젤레스를 희생시킬 순 없다”는 여론이 일어난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이나 잠수함 탑재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核공격할 때 이를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은 8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인의 안전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여론이 대세(大勢)를 이룬다. 미군 기지가 있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일본에서도 “제2의 히로시마를 반대한다”면서 미국의 대북(對北)응징 방침을 비난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난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틈을 타서 중국이 6자 회담을 제의한다. 핵전쟁을 막기 위하여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담판을 짓자는 것이다. 중국은 회담을 제의하면서 중북(中北) 접경 남쪽 50km까지를 '비행 및 무력사용 금지구역'으로 설정한다는 발표를 한다. 이는 미국의 공격을 피해 북한이 핵심 시설을 옮기려 할 때 피난처를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5개국은 회담 제안을 수락하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을 먼저 이행하라'고 한국을 압박한다. 며칠 뒤 북한 해역(海域)에 있는 무인도에서 핵폭발이 일어난다. 북한이 잠수함에서 소형 핵폭탄을 장착한 중거리 미사일을 고각도로 발사, 낙하시키는 실험을 한 것이다. 폭발력은 히로시마 급으로 추정되었다. 한국이 가진 허술한 방어망으론 이런 고각도 비행 미사일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미국 특사, 김정은에게 평화협정 제의
서울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인천공항을 비롯한 국제공항은 몰려 든 출국자들로 마비될 지경이다. 核민방위 훈련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정부는 뒤늦게 “핵폭탄이 떨어져도 살 수 있는 방법”을 홍보하지만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공무원들과 회사원들의 결근 사태로 국가기관과 기업의 일상 업무는 중단된다. 예금 인출 사태로 은행도 흔들린다. 사병 가족들이 연일 국방부와 합참 앞으로 몰려 가서 전쟁 반대 시위를 벌인다. 드디어 “이런 위기를 부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구속 수사하라”는 주장이 심각하게 등장한다. 그럴수록 미국의 반한(反韓) 여론이 증폭된다.
미국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한국 정부 몰래 북한에 밀사로 보낸다. 김정은을 만난 밀사는 “6자 회담에 나오라. 미북(美北) 담판도 동시에 진행하자”는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다. 김정은은 강하게 나온다.
“우리는 핵무기를 쓸 만반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미국이 공격하면 우리도 미국 본토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국방장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핵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 미국이 우리를 겨냥한 적대(敵對) 정책을 포기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꾼다고 약속하면 회담에 나가겠습니다. 이 약속은 공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꾼다는 데는 2000년 6월 김정일-김대중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진 바가 있습니다.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는 한편 두 나라가 수교합시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대북(對北) 밀사는 워싱턴으로 돌아와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 긴급 회의에서 CIA 부장은 2000년 6월의 김대중-김정일 회담 자료와 2007년 10월의 노무현-김정일 회담록을 찾아내 읽어본 결과를 보고한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하는 일종의 평화유지군으로 변경, 사실상 한미(韓美)동맹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밀약(密約)을 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보고된다. 대통령 등 지도부가 격분한다.
미국 대통령은 부통령을 특사 자격으로 한국에 보낸다. 청와대에서 한국 대통령을 만난 미국 부통령은 10쪽짜리 메모를 펴놓고는 작심한 듯 발언을 시작하였다. 상원의원 출신인 부통령은 외교관처럼 말을 둘러대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발언록의 요지는 이러하였다.
'한미동맹관계를 전면 재검토한다.'
<미국 정부는 작금의 사태와 관련하여 그동안의 두 나라 관계를 리뷰하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론의 변화를 참고하면서 동맹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미국의 책임도 있지만 근원적으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오랜 안보무임 승차 관행이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하여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는 계획을 검토하였습니다. 검토 단계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반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울이 북한 장사정포(長射程砲)의 타격을 받게 되니 북폭(北爆) 계획을 포기하라고 우리를 압박하였습니다. 그때 북한을 때렸더라면 핵문제는 해결되었고 아마도 북한정권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해공군력으로 북한의 핵시설을 파괴하는 데는 많아야 수십 명 정도의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의 장사정포가 서울을 포격하더라도 한 시간만 견디면 노출된 적의 포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친 것은 유감이지만 그 뒤에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9·11 사태 이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정, 압박할 때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무엇을 했던가요? 김정일과 만나기 위하여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제공하였는데 우리 정보기관의 판단으론 그 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회담하면서 주한미군의 성격을 평화유지군으로 격하(格下)시켜 유명무실하게 만들기로 밀약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러나 평양 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양해하였다. 이게 가장 큰 성과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김정일이 양해한 주한미군은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는 평화유지군이지요. 그런 군대를 왜 미국이 한국에 주둔시키나요? 이 밀약은 사실상 한미동맹 해체 음모였다고 봅니다. 각하도 대화록을 읽어보았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김정일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핵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북한의 입장에 서서 미국과 싸워왔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한 달 뒤 청와대를 예방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에게 노무현 씨는 ‘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다’고 발언하였습니다. 게이츠 장관이 회고록에서 ‘그는 약간 돈 사람이다’는 평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미국은 복수할 줄 모르는 사람을 경멸한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부통령의 너무나 직설적인 표현에 놀란다. '미국 사람들은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일단 화가 나면 무섭다'는 말이 생각 났다. 수십년 간 쌓아두었던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하였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한미 관계는 정상화되는 듯하였으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정부가 굴복하는 데 놀랐습니다.
이 사태의 핵심은 건강문제가 아니라 반미(反美)선동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위험한 물질로 선동하는 데 가담한 한국의 언론, 정치, 그리고 속아 넘어가는 한국인의 분별력에 우리는 놀랐습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당시의 미국 정부는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내심으론 한국군이 확실한 응징으로 북한정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길 바랐습니다. 북한군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 민간인까지 죽인 그날 한국군이 공군기를 출격시키고도 폭격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주한미군 측 보고에 따르면 합참에 근무하는 한국군의 한 장교가 ‘폭격을 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였다가 상관으로부터 구타를 당하였다고 하더군요. 미국은 전통적으로 복수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요청으로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를 연기하였습니다. 李 대통령은 실용적인 사람이라 오바마 대통령과 사이가 좋았고 일본과도 관계를 잘 유지하였습니다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임기 말에 왜 한일(韓日) 관계를 그렇게 관리하였는가입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북핵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데 꼭 필요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서명을 직전에 취소한 뒤에 독도를 방문하고 그 직후 천황 폄하 발언을 한 것이 일본의 우파에 의하여 역이용되어 결과적으로 아베 정권의 등장을 돕지 않았습니까?
이 반일(反日)정책을 박근혜 정부가 이어받아 우리가 놀랄 정도로 친중화(親中化) 하니 한미일(韓美日) 삼각 동맹 관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5년 중국의 전승절(戰勝節) 행사에 박 대통령이 자유 진영 지도자로선 유일하게 참석하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2016년 초 북한이 네 번째 핵실험을 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친중반일 노선에서 탈피, 사드 배치를 결단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였으나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사드 배치 비판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 보고 경악.'
여기까지 말한 미국 부통령은 메모를 옆에 내려놓고는 한국 대통령을 정시(正視)하면서 “각하,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말씀해보시죠?”라고 하자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데 왜 한국에선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한국 대통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국이 반대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 부통령은 비아냥조의 미소를 띠면서 입을 뗐다.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를 다른 나라에 물어보고 결정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도 미국의 허가를 받고 핵무장을 한 것은 아니죠. 미국 지도부는 속으로는 한국 정부가 핵무장하자는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인도 같은 친미(親美) 민주 국가의 핵무장은 미국의 국가이익에 반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막지 않았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 카드를 꺼내면 미국은 그것으로 중국을 압박, 북한의 핵개발을 좌절시키는 데 이용하려고 했는데 유감이었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부통령은 다시 서류를 들고 설명을 재개(再開)하였다.
<2016년 여름 한국에서 벌어진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은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시각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드 배치는 적의 핵미사일을 막겠다는 것이고, 더구나 동맹국인 미국이 자국(自國) 부담으로 하겠다는데 이를 막고 나서는 세력이 그토록 강하고 더구나 여당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국방장관을 시위대가 감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국은 과연 동맹국인가, 미국이 지켜줄 가치가 있는가 라는 회의(懷疑)가 지도부에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이 싫어하니 사드를 배치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는 한국이 결국은 과거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전통으로 돌아가고 말겠구나 하는 판단을 하는 이들이 늘어 갔습니다. 미국은 군사무기 배치는 비밀로 하는데 한국이 이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는데도 놀랐습니다.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은 그 뒤에도 악영향을 끼쳐 한국이 핵미사일 방어망을 조속히 완성하는 데 실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국군은 친북, 친중 여론을 의식하여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과 연결시키지 않는 독자적인 방어망을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좌파가 지배하는 국회가 예산을 거부, 잘 아시다시피 지금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었습니다. 한때 미국 정부는 한국의 보수층에서 요구하는 대로 1990년대 초에 철수해간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이를 한미연합사의 관리하에 두어 한국이 사실상 공동사용권을 갖는 방안까지 검토한 적이 있으나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드 배치 비판 경력을 가진 각하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는 포기하였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 순간 한국 대통령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대통령이 된 뒤 현실을 파악하고 나름대로 동맹 강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부통령은 “너무 솔직하게 말씀 드린 점 용서해주십시오. 오늘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라도 진실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1994년에 이어 2017년 우리는 북핵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또 다시 놓쳤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마지막 찬스였습니다. 북한이 예상 외로 장거리 미사일과 잠수함 발사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보고 우리도 심각한 대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정보기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하고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아직은 실전 투입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예방 공격으로 핵능력을 파괴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사작전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의 정보가 늘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2003년 이라크 공격 때도 후세인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오판(誤判)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CIA의 북핵 평가가 잘못된 것이라면, 즉 북한이 우리의 공격을 받고도 한 두 개의 핵폭탄을 보존할 수 있고 그것으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럴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았습니다만 문제는 핵폭탄이란 점이었습니다. 각하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한국과 논의를 시작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이 있는 한 미국 단독의 북한 공격은 불가능합니다.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서울을 두고는 미군이 아무리 압도적 전력(戰力)이 있어도 예방공격은 불가능합니다.
이때 한미 양국(兩國)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6년 사드 반대 사태로 한국이 핵미사일 방어망을 완비하지 못한 것이 이럴 때 우리의 손발을 묶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사드를 비롯하여 PAC-3, SM-3 등 다층적 방어망을 건설하고 이를 미국의 MD(미사일 방어망)와 연결시켜 두었더라면 설사 북한이 얻어맞은 뒤 남은 핵폭탄으로 보복을 가해와도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방어망이 허술한 상태에서도 과연 북한에 군사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로 두 나라 지도부가 고민한 사실은 각하가 잘 아시는 바입니다. 각하가 예방 공격에 가장 적극적이셨지만 이 계획이 한국 언론에 유출되는 바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반전(反戰)시위가 일어나고 북한이 핵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가운데 한국 국회가 압도적 찬성으로 군사 조치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키니 미국도 군사적 해결방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각하, 그게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조갑제 닷컴등 우파 사이트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유튜브 네이버 다음 네이트등 각종 포탈에
들어가서 글쓰기 운동을 전개해서 여론전 홍보전에 애국 우파들이 모두 동참해서 각종 포탈과
유튜뷰에서 좌좀들이 마구잡이 거짓정보와 왜곡 선동으로 젊은층과 대중을 선동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것을 막기위해 제대로된 정보 객관적 사실 알리기 운동을 지금도 하고 있겠지만
더욱더 그쪽에 우파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유튜브에도 애국 청년들이 좋은 영상도
많이 올리고 싸우고 있으니 추천도 지지및 응원댓글도 많이 달아주고 인터넷 여론전 홍보전쟁도
좌좀들에게 밀리지 않도록 애국 우파들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핵전쟁을 위협하자, 남한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강경 대응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군인 가족들이 국방부 앞에서 반전시위를 한다는 대목은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와 흡사하다. 지금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결국 스스로 북한에 접수되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좌익종북의 무리들이 김정은의 핵위협에 굴복하고 비겁하고 바보같은 국민들이 이런 정권에 지지를 보내는데 우리 후손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나.당장 죽더라도 비굴한 삶은 살수없다는 기백이 없는 민족에게는 가난과 수치 속에서 목숨만 연명하는 비참한 미래가 있을 뿐이다.소위 젊은 세대로 불리는 비겁하고 머리나쁜 바보들은 스스로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제는 쿠데타를 일으킬 용감한 군인들도 사라진 것 같다.
그 옛날 그 많던 댓글 부대들 다 어디가셨는가 모르겠네.
조갑제 사이트에서 자동 차단된것도 아닐텐데.
지금의 순간이 대한민국이 아차하면 벼랑끝에서
떨어질수도 있는데.오히려 요즘이 태평한가보다.
하기야 일부 댓글 부대는 보수층을 극우꼴통으로 비취게 하는
좌빨에서 심어놓은 위장전입 부대인줄 알았지만 그래도
선량한 댓글 부대도 좀 있었는데.그립군요...
위 시나리오 이전에 김정은은 다른 협박을 한다.
"돈 내놔라! 아니면 우리는 핵과 미사일을 다른 나라에 팔겠다!"
필자는 북한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산적"의 행동을 파악하는 게 쉽다는 글을 올린 적 있다.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을 돈 주고 사려는 나라는 많다. 결국 한국,일본 등은 돈을 뜯기지 않을 수 없다.
이젠 한국 일본 대만의 핵무장 카드 밖에없다.
핵에는 핵으로.핵군축은 핵군축으로.
무슨 얼어죽을 쌍중단이니 뭐 쌍퀘병단이니.
디 필요없다.문씨야 정신차려라.우리거 쓸 카드는 그거란다.
괜히 일본에게 쌍지팡이 틀지말고.명박이나 그네촌뜨기가 한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