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0년에 설립된 이후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영국의 이턴 칼리지(13~18세 교육. 한국의 중 고교 과정)는 매년 1300명 정도를 입학시킨다. 19명의 수상을 배출한 이 학교는 전쟁만 나면 동창들이 많이 죽는다.
1차 대전에 참전한 이 학교 졸업생은 5619명이었다. 해군(해병대)이 163명, 육군이 5320명, 공군이 136명. 戰死者는 1157명. 약20%가 죽었다. 전체 영국군의 전사율은 약11%였다. 이턴 출신자들의 전사율이 두 배나 되는 것은 이들이 위험한 곳에서 용감하게 싸웠다는 傍證(방증)이다.
2차 대전 때는 4960명의 졸업생이 참전하였다. 해군 398명, 육군 4050명, 공군 512명. 전사자는 해군이 33명, 육군 572명, 공군 143명으로 총 748명. 戰死率 15%. 공군의 전사율이 높은 이유는, 1940년 여름 영국 공군이 劣勢에서 독일 공군의 공격을 막아낼 때 희생자가 많았던 것과 관계 있다. 참전자 수를 보면 징집 연령에 속한 졸업생 전원이 군대에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학교의 人性 교육 지침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말라,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말라, 항상 상대를 배려하라, 弱者를 깔보지 말라, 잘난 체하지 말라, 다만 公的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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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중국처럼 주로 북방에서 내려온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인도도 중국처럼 문화의 힘으로 침략자들을 동화시키거나 흡수했다. 타지마할을 만든 무갈제국은 몽골계 이슬람 세력이었다. 이들도 힌두교 문화와 공존했다. 이슬람은 페르샤 문화를 흡수하여 세계 종교의 품격을 갖추었다. 몽골도 페르샤(이란)를 점령했다가 그 문화에 동화된 경우이다.
19세기 말 영국이 인구 3억의 인도를 다스릴 때 인도엔 약 15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6만 명은 군인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이 광활한 대륙의 변경에 퍼져서 주둔했으므로 보통 인도인들은 영국 군인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여 이런 少數로써 多數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도행정청(India Civil Service: ICS)이 그 비밀이었다. 인도행정청에는 약 1000명의 영국 공무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이 인도 각지에 파견되어 식민지 행정을 맡았다. 이 천명이 사실상 3억 인구를 다스린 것이다. 이 3억 인구는 언어만 해도 20가지이고 지방語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종교 인종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인도를, 영국 공무원 한 사람이 30만 명씩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셈이다. 이 불가사의한 행정의 비밀에 대한 연구서적이 수년 전에 출판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라는 사람이 쓴 '지배계급'(The Ruling Caste: 출판은 Farrar, Straus, Giroux, 381페이지, 27 달러)이 그것이다.
인도행정청에서 근무할 영국인을 뽑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기반한 公人윤리를 반복교육으로 깊게 심었다. 학생들은 인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그런 현지 관련 지식보다는 '제국의 魂'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인도에 대한 지식은 현지에 부임하여 배우도록 했다. 그 대신 大英제국의 知的이고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행해졌다. '유럽 도서관 한 개의 선반 위에 올라 있는 책이 인도와 아라비아 전체의 문학작품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著者 길모어씨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인 노블레스 오불리제'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젊은 관료들은 '책임을 떠안는 것의 쾌감'을 간직하고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인도에 가서 부임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奧地(오지)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상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수가 없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결단력이 요구된다. 영국관료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부임 초기부터 터득해나갔다.
소요사태를 예방하려면 우선 지배층이 민중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영국관료들은 인도사회의 풍습이나 관행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불태워죽여서 순장하는 식의 야만적인 풍습은 금지시켰다. 인도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관리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영국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영국관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현지의 언어에 숙달해야 했다. 이 식민통치 관리들의 행동윤리는 被지배층을 대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관리들은 절대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인도민중의 定評이 이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인도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행정청의 이름을 India Administrative Service로 바꾸고 그 골격을 이어갔다. 물론 영국인은 인도관리로 교체되었다. 인도는 영국관리들이 남긴 전통, 즉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한 공직규범을 계승하여 오늘날 세계최대의 민주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행정관료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慈善, 公平, 淸廉은 어느 시기,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국가엘리트의 행동규범이다. 영국의 인도통치의 예에서 보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다. 자선, 공평, 청렴의 행동규범을 뒷받침한 것은 애국심과 자부심이었다.
국가, 전통, 그리고 자존심으로 무장한 국가엘리트가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은 언제 만들어질 것이며, 이런 엘리트 집단을 양성할 국가적 교육기관은 또 어떻게 만들 것인가.
李承晩 대통령은 독립투사 엘리트의 대표였고,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는 군 장교단의 대표였다. 이들은 국가를 찾겠다고 싸우고, 국가를 지키려고 고민하고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國益을 중심에 놓고 思考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 뒤에 등장한 소위 민주투사 출신들은 당파, 지역, 계급의 이익을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시키면서 국가 엘리트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민주투사 출신들은 역대 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였다. 그들은 정권에 대한 유감이 국가에 대한 유감으로 변질됨으로써 애국심의 근저를 이루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심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정권을 잡고도 대한민국의 주인이란 의식보다는 조국에 대한 적대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 철학,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 국가 엘리트층의 再建이 선행되어야 통일이 제대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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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出世指針 간단하다. 요 이튼스쿨 人性指針 정반대로만 하면 된다.
이 기사의 상당부분은 상대적으로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품성 교육"에 관한 찬양은 상당히 과장-왜곡된 것이다. 전세계에서 다른 민족을 수탈하는 기술과 假面 부분에서는 영국이 가장 고도의 교육을 통하여 최첨단이었음을 이제는 정직하게 분석-표출해야 한다. 영국의 젠틀맨 쉽이라는 것은 완전 가짜 훼이스다. 그들은 지금도 보이지 않게 미국을,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정도이다. 조금씩 힘을 상실해 가고는 있지만. 한국의 통일이 좌절된 것은 누구 때문인가? 영국이 홍콩을 중공에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한국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하냐. 정신좀 차려라, 鮮人들아.
이턴 칼리지에 관한 글을 복사해서 국회와 정부 청사 앞에 뿌리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