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불러들이곤 전쟁 준비를 막는 이들
하지 않았어야 할 전쟁
1592년 왜병에게 기습을 허용했던 조선은 그 35년 뒤 후금에게 다시 침략을 허용하였다. 丁卯胡亂(정묘호란)이 그것이다(인조 5년). 인조는 그 9년 뒤인 1636년에 다시 병자호란을 막지 못하고 치욕의 삼전도 항복을 하고말았다. 어떻게 된 것이 40여년 사이 세 번이나 똑 같이 외부세력에 선제공격을 당하고 말았느냐 말이다.
더욱 웃기는 것은 인조 조정이 할 필요도 없는 전쟁을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1636년 淸으로 이름을 바꾼 後金은 조선에 대해서 大淸皇帝(대청황제)라고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조선조는 明에 사대하고 있는 입장에서 의리상 그렇게 못하겠다고 버티었다.
이때 明은 이미 망해가고 있었고 大淸은 떠오르는 세력이었다. 광해군은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서 明과 後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여 전쟁을 면했었다. 그런 광해군을 배신자라고 규정하여 쿠데타로 쫒아냈던 인조 조정은 明 황제 이외의 누구도 황제라 부를 수 없다는 명분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핵위기를 당하여 한미동맹을 강화, 사드 배치 및 한일관계 개선을 지향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낸 문재인 세력이 조선조적인 친중 노선으로 復古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조도 현실외교로써 청과 화친하고싶었으나 명분론을 들고 나온 斥和派(척화파) 신하들의 반발 때문에 淸과 대결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한 10개월간 계속된 인조 조정의 내부 노선 투쟁을 들여다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명분론은 淸軍의 침입을 부르는 초대장임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명분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전쟁 준비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대사간 尹煌(윤황)이 임금에게 전쟁준비를 건의하면 그가 지휘하는 사간원에서는 이런 건의를 올린다.
'요사이 병란의 기미가 이미 생겨 화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데, 하늘이 크게 재앙을 내려 수해와 旱災(한재)가 거듭 계속되니, 팔도의 생령이 모두 죽게 될 지경입니다. 그런데 전쟁까지 하게 된다면 국가가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청이 요구하는대로 그들 황제를 大淸皇帝라고 불러주면 된다. 그렇게 하자는 주화파 崔鳴吉(최명길)에 대해선 明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짓이라고 규탄해마지 않던 척화파가 자신들이 부른 전쟁 준비를 하자고 하니 백성들의 고통 운운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21세기의 親中사대주의와 17세기의 親明사대주의
대사간 윤황이 또 강화도의 무기와 전투식량을 평양으로 실어보내 평양에서 적을 막자고 건의한다. 비변사는 이 전쟁 준비 건의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가.
'그렇게 해야겠지만 民力(민력)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 억지로 일을 시키면 내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가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人心 때문이다.'
할 필요도 없는 전쟁을, 시대착오적인 명분론을 앞세우다가 초대해놓고는 전쟁 준비를 하겠다니 '그러면 백성이 고생하니 하지 말자. 백성들을 혹사하면 내란을 일으킬지 모르겠다'고 하는 판이니 대책이 없다.
-한국의 좌파들도 北의 핵개발을 비호하거나 사실상 지원해놓고는 애국자들이 나서서 '北이 핵무장하였으니 우리는 사드 등 미사일 방어망을 만들고 핵미사일 대피훈련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니, '왜 중국이 싫어할 일을 하느냐' '대피 훈련을 하면 민심이 흉흉해진다'고 반대하는데 인조 시절의 척화파 꼴이다.
실제로 제대로 된 방어책이 없었던 仁祖 조정은 청군이 서울로 들어왔을 때에야 강화도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조로 하여금 그런 굴욕적 항복을 하도록 했더라면, 그리하여 수만의 백성들이 淸으로 납치되어가는 비극을 불렀다면 강경파 신하들은 대대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만고충신이 되고 현실론을 앞세워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만 욕을 먹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들어버리니 진정한 반성도 책임규명도 불가능해지고 그런 과오 반복의 메카니즘은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체질로 살아남아 조선조를 망하게 하는 데 일조했으며 지금은 한국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병자호란을 부른 위선적 명분론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부를지 모른다.
북한의 핵개발을 방조한 자들이 핵미사일 방어망 건설을 방해하는 것은 淸을 도발, 전쟁을 불러놓고는 전쟁 준비엔 반대하는 인조 시절의 명분론자들과 어떻게나 같은지 놀랍다. 前者는 親明사대주의, 後者는 親中사대주의자들이다. 지금의 친북좌파가 진보의 탈을 쓰고 있지만 맨얼굴은 수구반동 세력임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左右 대결은 그 본질이 진보 對 守舊인데, 자유민주세력이 잔짜 진보이고 진보 자칭 세력은 守舊이다.












사태가 이런데도 문재앙 그 쪼다는 시진핑형님이 한반도전쟁불가
천명했으니 전쟁 안일어 날거야 하며
오늘 추운 엄동설한에도 청와대에서
키득키득대며 통닭에 맥주 마시고 있을겁니다.
중국관광객이 치맥좋아하지 하며...
이런 병신을 청와대에 앉혀놨으니...ㅉㅉㅉ.
조갑제 대기자님 어쩜 이리도 현재의시국과 꼭 맞아 떨어지는 시대상입니다 참으로 슲은 이 시대의 현실이고 더 없이 큰 재앙입니다조갑제 대기자님 선생님의글을 읽다보니 저의생각과 조곰 다른 점이 있어서 좀더 자세하게 기술해 주셨으면 해서 한가지 부탁 드립니다 우리 인조 대왕왕께서 인간으로써는 참을수없는 모멸과 국가의 통치권자인 제왕 으로써 굴욕을 참아가며 항복을 했음에도 수도없이 많은 넘녀 국민을 포로로 납치해갔고 이후 환향녀에서 되놈들의 그 진면목이 들어났듯이 인간으로서는 있을수없는 당시 청나라 오랄케들의 그 참혹한 행동들은 몇세기가 지났어도 용서할수없는 국가적 치옥이며 지금 당장이라도 그 원수를 갚어야 할것이다 제가 여기서 조갑제 대기자님께 부탁코져 하는것은 그 당시 포로로 끌려간 우리 선남선녀는 수만이 아니고 남자 4,5십만 여자 20만이였읍니다 이 본글의 후 편으로 당시 죽은사람 그리고 포로로 붇잡혀간사람 납치된 여성 환향녀의진실과 환향녀의숫자 환향녀를 대려오기위한 절차와 거기에 소요된 돈 그리고 끌려가 죽은사람 환향녀들의 귀국이후의 생활 당시 위정자들의 뻔뻔함과 그 책임자들의 그후생활 태평양 전쟁때의 일본의 남경학살과 병자호란때의 청나라 인간들의 살인 강간과 납치 살상등과 비교하여 어디가 더 반인륜 적이였을가 이 댓글자의 생각에는 별차이없는 거기서 거기인것같은데 이번 우리 대통령이 중국의 국빈 방문시에 남경학살에 대하여 중국을 이해하고 같이 슲어하고 부당하다고 편들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봐주시기를 대기자님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