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고가 많았던 정권은 김영삼 때이다.
1993년 3월28일, 부산 구포역 무궁화호 전복 사고로 78명 사망.
1993년 7월26일 아시아나 737기 전남 해남 공항 접근중 산과 충돌, 66명 사망.
1993년 10월10일 전북부안군위도면 서해페리 침몰로 292명 사망.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로 32명 사망.
1995년 4월28일 대구시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 폭발 101명 사망
1995년 6월29일 삼풍아파트 붕괴로 502명 사망.
1997년 8월6일 대한항공 747기 괌 공항 접근중 산과 충돌, 225명 사망이다.
이렇게 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정권측에선 '군사문화 때문이다'고 했는데 합리적 설명은 없었다. 가장 큰 사고는 외환수급을 잘못 관리하여 터진 외환위기, 그로 인한 IMF 관리 체제의 등장일 것이다. 사고가 많으니 민심도 흉흉해지고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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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의 발음문제는 특별히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그래도 대통령이 되기전이라면 몰라도 대통령이 된후에는 표준어 구사를 하도록 노력했어야 된다고 봅니다.퇴임후에 TV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은 본인의 발음이 잘안되는것에 대해서 기자들이(또는 방송에서) 너무 숭(흉)을 많이 봤다면서 약간 불만어린 말을 하였는데..
같은 경상도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발음이 잘 안되는건 별로 본적이 없습니다..대통령이란 자리는 모든 사람들(특히 국민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행동하나하나 말한마디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이명박 전대통령도 군대를 안갔다와서인지 거수경례가 제대로 안되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나중에 조금 고쳐진거 같긴 했습니다만...특히 각군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거수경례가 제대로 안되는 모습은 참 민망했었습니다.손을 쫙 피고 하는것이 아니라 마치 햇빛을 가리는듯이 손이 구부정했습니다..
亡國大道의 첫 삽을 뜬 이~대한 대통령.
김영삼 정부는 잘 아시다시피 사고공화국이었습니다..갑자기 기억나는건 1994년 10월 21일에 성수대교가 붕괴하고...바로 이틀후인 10월 23일에 조창호 육군소위(당시 나이 64세)가 북한을 탈출하여 귀환하게 됩니다.바로 다음날인 24일에는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요..
10월 28일에 김영삼 대통령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조창호 육군소위를 찾아갑니다.위로하기 위해서 간것이지요..그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조창호 소위에게 "인간 승리의 표본이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국가가 줄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주겠다고 했습니다.그러면서 이런말을 하더군요 "우리 조 소위같은 사람 애국심의 100분의 1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불행한 사고는 없었을거에요" 라고 했습니다....이런 불행한사고란 아마도 조소위가 한국에 올 즈음에 벌어진 성수대교 붕괴사고,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를 두고 하는 얘기겠지요..
근데 가만 생각해보면 황당한 얘기가 아닐수 없습니다..그 대형참사와 애국심과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애국심이 있으면 사고가 안났을거란 이야기인데..그럼 본인은 뭘했는지...굳이 따지고 보자면 대통령인 본인과 관계가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거니와 조창호 소위가 말하자면 국군포로인데..국가가 나서서 모셔와야 될분인데 스스로 탈출해서 한국으로 왔다는것은 그 자체가 매우 챙피한 일이지요..
김영삼은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조 소위 미안합니다..정말 미안합니다...대통령인 내가 국군포로인 조 소위를 데리고 왔어야 되는데 알아서 탈출하여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게 했으니 부끄럽습니다."라고 했어야죠...국군포로가 지금도 북한에 살아있다는데...송환요구는 입도 뻥끗 못하고 있으니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벌을 안받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