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있는 한 데모는 없어지지 않는다.'

'주한미군이 있는 한 데모는 없어지지 않는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독백처럼 한 이야기이다. 요사이 광화문으로 시위하러 나오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안보에 어떤 영향을 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열 명 될까? 핵문제가 최순실 사건보다 더 중대한 事案이란 사실에 동의하는 이는? 자주국방을 포기한 사람들이 못할 짓은 없다. 국방은 공동체와 구성원의 생존에 관련된 주제인데, 이를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존의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자주국방 의지가 없으면 彼我식별 기능도 마비된다. 필요가 없으니까. 따라서 敵에 대한 경계심도, 祖國의 소중함도 자리잡지 못한다. 중요한 것에 무심한 사람들은 사소한 데 집착한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해산시킬 때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은 결정문의 보충의견을 통하여, 大逆(대역)행위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의 바탕인 자유민주주의의 존립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행위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 둥지에서 뻐꾸기의 알을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한 뱁새는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게 되지만, 둥지에 있는 뻐꾸기의 알을 그대로 둔 뱁새는 역설적으로 자기 새끼를 모두 잃고 마는 법이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에 의해 장악된 피청구인 정당이 진보적 민주주의체제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그 전복을 꾀하는 행동은 우리의 존립과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는 소위 대역(大逆)행위로서 이에 대해서는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와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 朴正熙의 국가 근대화 대전략은 自助-自立-自主-自由의 4단계로 요약된다.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보겠다는 自助정신이 생겨야 自立경제가 건설될 수가 있고 自立경제를 기반으로 할 때만이 자주국방을 할 수가 있다. 그는 '자주국방능력이 없는 국가는 진정한 독립국가가 아니다'는 생각을 確執처럼 갖고 있었다, 그는 자주국방력을 방패로 삼아 전쟁을 막아 평화의 시간을 얻은 뒤 국력을 키우고 그 힘으로 북한정권을 녹여 韓民族 전체가 자유를 누린다는 원대한 꿈을 지녔다. 정신, 경제, 정치, 군사를 통합한 국가 대전략이었다.



2. 그의 자주국방과 통일관은 주체적 역사관에 기초한다. 이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1976년 1월 24일 국방부를 연두순시한 자리에서,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는 식이 아니라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밝힌 내용이다.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찾아낸 녹음 테이프에서 가감 없이 풀어본다.



'특히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논리를 이론적으로 여러 가지로 제시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공산주의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왜냐. 우리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용납해선 안 된다. 공산당은 우리의 긴 역사와 문화, 전통을 부정하고 달려드는 집단이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이 우리 민족사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여 지켜가는 국가이다. 하는 점에 대해서 우리가 반공교육을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공산당이 지난 30년간 민족에게 저지른 반역적인 행위는 우리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후세 역사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온 것은 전쟁만은 피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이 분단 상태를 통일을 해야겠는데 武力을 쓰면 통일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번 더 붙어서 피를 흘리고 나면 감정이 격화되어 몇십 년 간 통일이 또 늦어진다. 그러니 통일은 좀 늦어지더라도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참아온 겁니다. 우리의 이런 방침에 추호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武力으로 접어들 때는 결판을 내야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책이나 불경책에서는 殺生을 싫어하지만 어떤 불법적이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범할 때는 그것을 쳐부수는 것을 정의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누가 내 볼을 때리면 이쪽 따귀를 내주고는 때려라고 하면서 敵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선량한 양떼를 잡아먹으러 들어가는 이리떼는 이것을 뚜드려 잡아죽이는 것이 기독교정신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도 우리 동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무력으로 쳐 올라갈 리야 없지만 그들이 또다시 6.25와 같은 반역적 침략을 해올 때에 대비하고 있다가 그때는 결판을 내야 합니다.

통일은 언젠가는 아마도 남북한이 실력을 가지고 결판이 날 겁니다. 대외적으로 내어놓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 소, 중, 일 4대 강국이 어떻고 하는데 밤낮 그런 소리 해보았자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객관적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 남북한이 실력으로 결판을 낼 겁니다. 그러니 조금 빤해졌다 해서, 소강 상태라 해서 안심을 한다든지 만심을 한다든지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3. 朴正熙의 통일관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자유통일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4조의 통일관과 일치한다. 평화적 자유통일은 자주국방력과 민족주체성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위의 논평에서 드러나는 박정희의 한반도 상황 인식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북한 대결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4. 자주국방과 관련한 朴正熙의 語錄.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하고 이웃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해 가지고 앉아 있느냐?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이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1972년1월11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6.25와 같은 적의 침략을 또 다시 받을 때에는, 全國土를 초토화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최후까지 싸워야 한다.>(1968년3월7일 전국 지방장관, 시장, 군수, 구청장 대회 유시에서)

박정희는 경제를 희생하더라도 전쟁에선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안보를 늘 경제에 우선시켰다.



5. 그의 머리엔 늘 전쟁 地圖가 입력되어 있었다. 1971년 8월5일, 朴正熙 대통령은 을지연습 종합강평 때 실감 나게 이야기한다.



<敵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했을 때를 한번 가상해 보자. 敵은 全전선에 걸쳐서 일제히 공격할 것이며, 동시에 그 시간을 전후해서 동·서해안으로 敵이 기습 상륙할 것이다. 또한 敵은 공수부대를 우리의 후방 깊숙이 대량으로 공중투하할 것이다.

만약에 앞으로 공산당이 우리 대한민국에 지하조직을 가지게 된다면, 이러한 조직이 敵의 기습에 호응해서 일제히 도처에서 일어날 것이다.

동시에 敵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空軍 세력으로 공중공격을 해올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행동이 거의 같은 시간에 기습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 어떠한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겠는가. 제일 먼저 움직이는 것은 역시 軍일 것이다.

다음에는 정부가 즉각 계엄령을 선포한다든지 동원령을 하달한다든지 戰時(전시) 국가지도회의를 소집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충무계획에 따라서 하나하나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국민들은 초기에 반드시 상당한 불안과 공포에 싸여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해야 할 것이다.

초기에 우리 軍이 신속 과감한 행동으로 敵의 침투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고, 또한 정부가 침착하고 자신 있는 행동으로 사전계획에 따라서 하나하나 잘 처리해 나가게 될 때, 처음에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던 국민들도 점차 냉정을 되찾게 될 것이고,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신뢰감을 가지게 될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감은 오히려 敵에 대한 적개심으로 변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하여 자진해서 적극 협력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초기 대응책이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 전쟁은 우리가 충분히 버티고 나갈 수 있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북한군의 기습은 同時多發的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이다. 휴전선상의 全面 공격, 東西해안 지역에 대한 上陸작전, 특수부대의 후방 공중투입, 空軍에 의한 폭격, 그리고 國內 종북세력의 반란. 核무장한 북한은 여기에다가 하나를 보탤 것이다. 서울을 포위한 뒤, '한국군이 반격하면 서울에 原爆을 투하하겠다. 같은 민족끼리 싸우지 말자. 현위치에서 휴전하자'고 제의할 것이다. 이런 제의에 맞추어 남한內 從北세력이 들고 일어나 '휴전제의를 받아들이라'고 정부를 압박하면 '평화를 위하여 휴전안을 수용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2000만 수도권이 포위된 상태에서 休戰을 받아들이면 대한민국은 그 길로 소멸한다.

김정은의 손에 있는 두 개의 神器-核무기와 從北세력 중 적어도 하나를 빼앗지 않으면 한국은 다른 모든 면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밀린다. 30여 년 전의 박정희 시절에 비하여 경제는 발전되고 민주화도 많이 되었지만, 尙武정신과 自主국방 의지는 오히려 약화되었다. 박정희의 자주국방-자주통일 철학을 再해석하고 이를 현재적으로 활용해야 할 이유이다.



7. 朴正熙의 자주국방 전략은 역사적 뿌리가 있다.

서기 660년 唐은 신라와 동맹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여세를 몰아 신라를 치려고 했다. 태종무열왕이 이를 알아차리고 신하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多美公(다미공)이란 사람이 나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백성을 백제 사람으로 위장하여 도둑질을 하려는 것처럼 하면 唐의 사람들이 반드시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 더불어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

金庾信이 '그 말도 취할 만하니 따르십시오'라고 했다. 태종무열왕은 내키지 않았다.

'唐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 주었는데 도리어 함께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소.'

이에 金庾信이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金庾信이 한 말은 삼국사기에 '自救'로 표현되어 있다. 신라가 개노릇을 하여 唐을 섬길 용의는 있다. 唐이 신라를 존중해 주면 말이다(이것은 '자주적 사대주의'이다). 만약 唐이 크고 힘센 것만 믿고 신라의 자존심과 그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한다면 신라는 唐을 물어뜯어서라도 自救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야말로 新羅와 같은 小國이 大國을 옆에 두고도 自我를 지켜갈 수 있게 한 정신무장의 핵심 논리이다.

신라가 臨戰태세를 갖추자 蘇定方(소정방)의 唐軍은 백제 포로들만 데리고 귀환했다. 당시는 唐의 전성기 고종시대였다. 고종은 '어찌하여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의 대답은 그대로 신라에 대한 세계 최강국의 최고 찬사이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모시기를 父兄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新羅其君仁而愛民 其臣忠以事國 下之人事其上如父兄 雖小不可謨也)



8. 仁愛忠事. 즉 어짐, 사랑, 충성, 섬김, 이것이 신라의 공동체 의식이요 公民 윤리였다는 것이다. 요사이 식으로 번역하면 '신라는 대통령이 어질어 국민을 존중하며, 관료는 나라에 충성하고 국민들은 가족처럼 서로 아낀다'이다.

신하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는 게 아니라 '나라를 섬긴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국가를 임금보다 더 上位 개념으로 본다. 이는 헌법을 대통령보다 위에 놓는 국민국가의 원리이기도 하다.

신라는 자주성을 지켜내는 방식에서 국력을 초과하는 무리를 하지 않았다. 북한처럼 유아독존으로 모험을 하다가 必亡의 길을 걷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신라는 唐의 힘을 빌리고 그 唐의 패권을 인정하고 唐에 감사하려고 했다. 唐에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唐과 결전할 때도 외교적으로는 항상 유화책을 썼다. 자존심을 뱃속에 숨겨 놓고 펼친 强穩 양면의 실용노선이 신라의 독립을 성취했다.



9. 韓民族은 평화를 사랑하지만 침략을 받으면 決死抗戰하는 전통이 있다. 이런 기질 덕분에 세계최강의 나라, 최고의 문화 옆에서도 민족적 自我와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韓民族은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다섯 번의 決死抗戰을 치른 기록이 있다.

*612~645년: 고구려의 對隋, 對唐 항전. 612년 영양왕 때의 살수대첩, 645년 보장왕 시절의 안시성 싸움으로 대표된다. 세계 최강국인 수와 당을 상대로 혈전을 벌여 한반도가 중국화되는 것을 막았다. 을지문덕과 양만춘 등이 영웅이다.

*670~676년: 신라의 對唐결전. 당이 백제와 고구려 멸망 후 신라마저 속국화하려 하자 최전성기에 있던 세계최강국의 정예군을 상대로 육지와 바다에서 전쟁을 벌여 이김으로써 한반도를 민족의 생존공간으로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250년간 지속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열었다. 韓民族과 韓國語가 이 決戰으로 만들어졌다. 金庾信과 文武王이 지도자였다.

*1231~1270년: 고려의 對夢抗戰. 세계최강 기마군단을 보유한 몽골군은 아홉 차례나 고려를 침략하였으나 武臣정권이 이끌던 고려 지도부는 강화도로 들어가 결사항전, 40년을 버티었다. 몽골군을 상대로 가장 오래 저항한 기록을 남겼다. 몽골도 이런 투지를 높이 사 항복 후의 고려 왕조를 우대하였다. 고려 武臣 정권, 僧兵, 삼별초 등이 영웅이다.

*1592~1598년: 세계최강의 육군인 일본군을 상대로 한 국제전쟁에서 宣祖의 조선은 水軍과 義兵이 버티는 사이 明의 도움을 받아 이겼다. 李舜臣, 柳成龍, 義兵 등이 영웅이고, 선조의 전쟁 지도도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1950~1953년: 세계최강의 육군국인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을 받은 한국은 軍官民이 李承晩을 중심으로 뭉쳐 저항하였고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이 파병되어 침략 의도를 분쇄, 국제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았다. 한국전을 계기로 대만이 살고, 일본이 경제부흥, 서독은 재무장, NATO는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다. 한국은 戰後 경제발전과 민주화에도 성공, 자유의 방파제 겸 자유진영의 모델 하우스 역할을 하였다. 미국은 군사비를 세 배로 늘리고 병력을 倍增시켜 본격적인 對蘇 군비경쟁을 시작, 40년 뒤 공산진영이 무너지게 하였다. 한국전에서 韓美軍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버틴 덕분에 세계 수십억 인구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으니 韓國戰은 세계가 이긴 전쟁이다. 李承晩, 국군, 트루먼, 맥아더, 릿지웨이 등이 영웅이다.



10. 다섯 차레의 결사抗戰은 모두 當代 최강의 군사강국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고 그 영향도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프로 군대끼리 싸우는 유럽 식 전쟁이 아니라 軍官民이 한덩어리가 된 총력전이었다. 다섯 차례의 전쟁 중 결과가 가장 좋은 것은 신라의 對唐결전과 대한민국의 한국전 승리이다. 韓民族뿐 아니라 東아시아 및 세계 전체의 평화, 자유, 번영에 기여한 승리였다. 그런 점에서 7세기 말의 신라 사람들과 20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세계사적 영웅들이다. 가장 위대한 세대이다.



11. 5大 결전의 교훈은 모두가 공격전이 아니라 수비전이었다는 점이다. 우리 땅에서 싸운 수비전이었으므로 군인뿐 아니라 국민들이 애국심으로 무장, 익숙한 地理 속에서 총력전으로 저항할 수 있었다. 박정희의 자주국방은 韓國史의 이런 戰略개념을 이어 받았다. 자주국방의 근거는 자존심이다. 힘센 나라에 도전도 하지 않고 굴종도 하지 않고 오로지 自我(민족적 삶)를 지키겠다는 자존심을 戰力化한 것이 신라였고 그 연장선상에 박정희 식 자주국방의 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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