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민족'에 넘어가 좌파宿主가 된 김영삼

3대에 걸친 북한의 연가시 전략, 6월12일에 총결산 혹은 총붕괴(2)
김일성의 대전략

1977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동독(東獨)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에게 김일성은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 통일 후 필자가 입수한 회담록에서 옮긴다.
<남한에서 박정희(朴正熙)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고 정당한 민주인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 사람이 반공(反共)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통일의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에서 민주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조선의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민주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그들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군대는 물러가야 합니다. 남한 민중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김일성은 남한이 민주화되면 반공주의자가 집권해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활동이 자유로워지므로 대남(對南)공작에 유리하고, 특히 남한사람들 손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980년대 김영삼(金泳三) 같은 민주투사들은 ‘좌익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로 생겼으므로 민주화만 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고 했었는데, 김일성의 전략판단이 적중하였고, 민주화 운동 진영의 막연한 낙관론은 빗나갔다.


김영삼의 좌파宿主化

1993년 2월25일 김영삼 대통령은 14대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김 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한라산 기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그때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원점에 서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김일성은 이 연설을 듣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자살로 몰고 갈 ‘민족’이란 신경전달물질이 ‘반공주의자’인 김영삼의 뇌리에 들어갔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 대목이 연설문에 들어간 경로를 추적하면 김영삼 및 북한정권과 친밀한 한 일본기자와 이어진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보수정객들(張澤相, 趙炳玉)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국 정치의 보수 본류 속에서 출세하였던 김영삼은 대통령이 된 뒤에는 북한식 ‘민족’ 개념에 홀려 ‘좌파숙주’ 역할을 수행하였다. 좌경성향 참모 등용,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 부정(문민정부의 정통성은 상해임시정부에서 바로 이어진다고 함으로써 이승만, 박정희 부정), 무조건적 반일(옛 중앙청 철거), 전교조 교사 복직, 영변 핵시설 폭격 반대, 소급입법에 의한 전두환-노태우 재판, 김종필 세력 추방으로 보수분열, 건국 이후 처음으로 좌파정권 등장 초래 등등. 모두 김일성주의자들이 반길 일들이었다. 연가시는 확실한 숙주를 발견한 셈이다.


김대중을 사로잡다

연가시가 숙주의 뇌를 공격하듯이 김일성 세력은 늘 한국의 대통령을 공격이나 포섭의 대상으로 삼았다. 권력의 사령부를 무력화하거나 좀비화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공산화 전략임을 정확히 안 것이다. 그들은 포섭이 불가능한 박정희와 전두환(全斗煥)은 암살대상으로 삼아 외국에까지 쫓아가 일을 저질렀다(아웅산 테러). 연가시 세력이 김영삼에 이어 표적으로 삼았던 이는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주한미군 철수(또는 위상변경)나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고 일본에선 친북세력과 손잡고 反국가단체 한민통을 만들었다. 김정일은, 1997년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그에게 불리한 정보를 한국으로 내려 보내 공개되도록 하는 압박 전술도 구사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현대 그룹을 앞세워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 등으로 4억5000만 달러를 보냄으로써 (그것도 국정원을 시켜서) 김정일에게 약점이 잡힌 상태로 평양에 가서 상당히 위축된 분위기에서 김정일을 만났다. 여기서 합의된 것이 6·15 선언이다. 한국의 피아(彼我)식별 기능을 치명적으로 마비시키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장은, 헌법 제4조 위반이다.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추진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강조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은 反독재이다. 즉 북한주민의 대표성이 없는, 즉 공정한 선거로 뽑히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북한 노동당정권과는 긴장완화는 논의할 수 있으나 통일의 의논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서독은 동독 공산당 정권을 통일 논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북한노동당 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 우리 영토인 북한지역을 수복, 자유통일하여 한반도 전체를 민주공화국으로 만들라는 헌법 제1, 3, 4조를 총체적으로 위반한 용공적(容共的) 통일방안이었다.
‘민족’이 헌법과 국가이성을 마비시킨 것이 6·15 선언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대중은 김정일과 함께 주한미군의 위상 변경을 논의, 합의하였다. 북한정권에 적대적이지 않는 중립화된 주한미군이라면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김대중은 전제 조건은 비밀에 붙이고,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통일 후 주둔까지 양해하였다’는 식으로 왜곡, 전달하였다. 주한미군 문제는 통일문제처럼 북한정권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한미 양국(兩國) 문제이고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김일성의 남침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정권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두 개의 원칙을 김대중이 포기함으로써 그 뒤 한국은 북의 연가시 전략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핵문제의 방관자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교체가 확실한 시점에서 차기 정권에 쐐기를 박기 위하여 김정일을 찾아가 합의한 10·4 선언은 신경전달물질의 대물림이 되었다. 6·15의 ‘우리민족끼리’ 코드를 이어 받아 더욱 심화시킨 이 선언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실천이 정지되었다. 김정은은 이를 ‘잃어버린 11년’이라 표현하였다.
노무현-김정일 회담의 한 장면은 이 회담에 깊게 관여하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도 엿보게 한다. 2007년 6자 회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 합의’(2·13 합의)에 따라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IAEA 감시·검증요원의 영변 복귀, 대북(對北) 중유 5만 톤 제공 등이 마무리되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2007년 9월 27~30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를 개최하여 ‘9·19 공동성명’ 이행의 다음 단계 진입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 합의(10·3 합의)’가 도출되었고 10월 3일 6자회담 참가국들에 의해 최종 승인 되면서 비핵화 2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 합의의 핵심은 <모든 북한 핵 프로그램을 연말까지 신고한다>였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나고 있었다. 김정일은 북한의 6자회담 대표 김계관을 불러 합의 사항을 설명하도록 하였다. 공개된 ‘김정일-노무현 회담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김계관(북한 외무성 부상): 신고에서는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한다.>

모든 핵프로그램을 다 신고한다고 약속한 북한이 대한민국 대통령 앞에서 핵폭탄과 관련된 핵물질은 신고하지 않겠다고, 즉 핵심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노(盧) 대통령의 반응이 놀랍다.

<*노무현 대통령: 수고하셨습니다. 현명하게 하셨고, 잘하셨구요. 나는 공개적으로 핵문제는 6자회담에서 서로 협력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6자회담 바깥에서 핵문제가 풀릴 일은, 따로 다뤄질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남북간에 비핵화 합의 원칙만 한번 더 확인하고,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6자회담에서 같이 풀어나가자 이렇게 갈 거니까요.>

형사 앞에서 도둑이 “훔친 장물을 어디 팔았는지는 진술할 수 없습니다”라고 해도 형사가 “현명하십니다”하고 칭찬하는 모습이다. 핵문제의 피해 당사자가 구경꾼, 그것도 가해자를 편드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요사이 문재인 대통령의 자세도 그러하지 않는가?


미국 국방장관 앞에서 ‘미국이 안보 위협’

김정일 앞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핵문제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국정원 공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중략).주적 용어 없애 버렸습니다. 작전통수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 보내지 않았습니까… 보냈고요… 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시지 마시고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거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2012년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남측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그런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을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중략).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의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이 그 직후인 2007년 11월에 노무현을 만났다. 게이츠 전 장관이 쓴 회고록에 의하면 노무현은 그의 앞에서 “아시아의 가장 큰 안보 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다”고 말하더라고 한다. 게이츠는 “나는 그가 반미주의자라고 결론 내렸고 약간 돌았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한미일 동맹 관계 속에서 한국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안보위협으로 본다면 이는 인종개념과 좌익의 제국주의론이 혼재한 ‘민족’이라는 기준으로써만 설명할 수 있다. 숙주인 한국의 뇌(대통령) 속에 들어간 신경전달물질이 피아(彼我) 식별 능력을 마비시킨 정도가 아니라 연가시(北)의 의도대로 조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증거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 지평선 2018-05-27 오후 9:03

    ㄱ대중이 잔머리에 서울대철학과 출신 김영삼이 우월감에 젖어 똥오줌 분간 못하고 저지른 일들이 파편이되어 날아 다니면서 , 자유 대한민국을 공산화 하려는데 일조를 하고있다. 5.18 광주 폭동을 민주화로 나벨을 달아준 장본인- 략-

  • 白丁 2018-05-24 오후 8:21

    투철한 민주주의 신념으로 군사정권 압제에 신음하던 국민을 해방시켜주고, 애국 항일투쟁 정신으로 중앙청을 철거하고, 숭고한 민족 이념으로 간첩 이인모를 김일성 원수님 품으로 모셔드렸으며 노무현,이인제,손학규,이명박,서청원,이재오,김무성같은 人傑을 발탁하여 오늘날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게하고, 무엇보다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 軍출신 대통령 이30년간 가득 채워 넘겨준 곳간을 더러운 군사독재 돈이라고 깨끗이 비워서, 이회창이 대통령 되면 보수정권으로 회귀될까 저어하여 김대중에게 정권 넘겨주는 遠慮로 오늘날 보시다시피 전국민이 대통령과 직통하는, 오리지널 그리스식 직접민주주의 原初 정신으로 회귀하게 하는데 밀알이 된 이~대한 김영삼.

  • 지유의메아리 2018-05-24 오후 6:35

    영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도 20년이 되여옵니다 정신병자와 치매에걸려서 남편도 몰라보고 아침밥을 먹고 일어서면서 왜 밥을 않주는가하고 소리지르는 치매환자가 아니라면 20년전쯤의 이나라 사회현실응 기억할것이다 우선 첫번째로 지금 좌익정부라고 모두인식하는 현실과 20년전으로 함께 올라가봅시다 지금의 정부도 전임대통령과 전,전임 대통령을 구속했고 영삼이는 자기를 대통령이 될수 있도록 3당 합당과 가즌 혜택을 준 전임과 전전임 전두한, 노태우를 구속하고 사법처리했지, 또하나 김일성을 알현하려고 갖은 노력끝에 선물을 주려고 간첩으로 남파되여 전향하지도 않고 무기징역을 사는 이인모 무기수를 대통령 직권으로 사면하여 북으로 돌려보냈으나 종당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일성이는 죽어서 저세상으로 갔으니 그 무에 소득이 있었나 영삼이는 많은사람이 머리가 나뿌다고 골이비었다고하니까 한다는말이 건강은 못빌리지만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자기 머리가 나뿐줄은 알았던 모양이지 앞으로 이런사람 마을이장이라도 시키면 않되요

  • 무학산 2018-05-24 오후 5:39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땡삼이 시계가 우리 집에도 있더라
    얼마 전에 작은 창고 같은 공간을 청소하니 그게 나왔다.
    우리 집에도 있었으니 이 시계 값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되었을까?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