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비핵화

1. 맨정신 가진 언론은 조선일보 정도
 
 6·15, 10·4 선언문을 계승한 판문점 선언문은 핵폐기 선언이 아니라 핵보유를 인정한 바탕에서 낮은단계연방제로 가기 위한 한국의 체제정비, 즉 반공자유 안보체제의 해체를 노린 문건이다. 북한 식 용어, 북한 식 전략, 북한 식 문장으로 작성되었다. 북에서 불러주고 남에서 받아 쓴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 선언문을 북한식으로 해석하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한미동맹 해체 및 연방제 통일에 합의한 문서이다.
 
 4월28일자 주요 신문 사설 제목은 이렇다.
 
  ▲ 경향신문 = 핵 없는 한반도와 평화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다 
  ▲ 서울신문 =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첫발을 떼다 
  ▲ 세계일보 = 평화의 첫발 뗀 남북, 비핵화 마침표 찍자 
  ▲ 조선일보 = 북핵은 ‘美·北’에 넘기고 對北 지원 앞세운 남북 정상회담
  ▲ 중앙일보 = 문재인-김정은, 비핵화 대장정 문을 열다 
  ▲ 한겨레 = 판문점의 봄, 평화·번영의 시대 열다 
  ▲ 한국일보 =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비핵화ㆍ평화의 새 시대를 선언하다 
  ▲ 매일경제 =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천명한 판문점 선언 이젠 실천이다 
  ▲ 서울경제 = 한반도 대전환 이제 시작이다 
  ▲ 한국경제 = ‘대한민국 가치 수호’ 더 중요해졌다
 
 맨정신을 가진 언론은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뿐이란 생각이 든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아래 글(4월20일 북한노동당 전원회의 결의)을 읽을 필요가 있다. 핵무장을 완성한 사실을 이렇게 자랑하고 있는데, 이를 포기한다면 김정은의 자리가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라고 했는데, 그런 무기를 내려놓으면 북한정권은 독을 뺀 코브라와 같게 된다. 즉 지렁이가 되는 것이다.
 
 
 2. 이걸 읽고도 핵폐기를 믿는다면…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국가핵무력건설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영웅적으로 투쟁하여온 군수공업부문의 과학자, 기술자, 로동자들과 일군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내시였으며 우리 당 병진로선의 승리가 이룩됨으로써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갖추기 위하여 허리띠를 조이며 간고분투하여온 우리 인민의 투쟁이 빛나게 결속되였으며 우리의 후손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합의한 4월27일 판문점 선언문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북측이 취한 주동적 조치들’은 7일 전 북한노동당 전원회의 결정, 즉 핵보유 선언(핵무력 완성에 따른 실험중지, 핵군축회담 제안 등 포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을 높게 평가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북한은 이를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북한이 주장해온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무력화를 위하여 같이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이해할 것이다.
 지난 5월 북한 부상 김계관은 성명을 내고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를 다시 분명히 하였다.
 “우리는 이미 조선반도 비핵화 용의를 표명하였고 이를 위하여서는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 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그 선결조건으로 된다는 데 대하여 수차에 걸쳐 천명하였다.”
  적대(敵對) 정책 포기와 핵위협 제거는 한미동맹 해체를 뜻한다.
 

 3. 핵폐기 불가능 체제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김정은이 북한의 핵을 폐기하고 경제발전에 전념하고 싶어 한다’고 한 여러 발언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김정은은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는지, 추궁을 당할 것이다.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폐기할 수 없다는 점은, 노동당 규약과 헌법, 4·20 중앙당전원회의 결정문 등에 명백히 적혀 있을 뿐 아니라 체제의 생존이 핵무기와 불가분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봐서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노동당 규약: 북한 노동당의 최고 규범인 ‘조선로동당규약’은 <조선로동당은 조선민족과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놓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을 벌이는 자세를 천명한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가 북한정권을 영토 불법 강점 反국가단체로 격하한 것에 대응한다.
 규약은 통일 의지를 이렇게 드러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
 한미동맹을 해체, 남한을 미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민주 세력을 타도하는 ‘민주주의 혁명’을 수행, 한반도 전체를 김일성주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촛불혁명’이 이 ‘민주주의 혁명’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맞다고 판단하면 문재인 정권과 손잡고 한미동맹 및 반공자유민주주의를 해체한 뒤 6·15 선언에 적힌 대로 ‘낮은단계연방제’로 진행, 한반도 공산화의 첫 관문을 넘으려 할 것이다.
 규약은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중략)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겠고 했다. 6·15 선언 제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다. 노동당 규약을 옮긴 듯하다.
 2013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 핵 병진노선’을 명시하였다. 2016년 제7차 당대회 이후 개정된 규약엔 이것이 반영되었다.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제도를 공고 발전시키며,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사회주의 경제강국, 문명국 건설을 당의 핵심 사업 방향>으로 못을 박은 것이다.
 

 *헌법: 북한의 헌법에도 ‘핵보유국’이란 명시가 있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 강성국가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였다.>
 북한 체제의 최고 규범인 노동당 규약과 헌법에 명시된 ‘핵보유’를 김정은이 아무리 절대적 독재자라도 돈을 대가로 팔아넘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늘의 별따기’를 선전하는 것과 같다.
 북한 체제는 핵무력을 생존의 무기를 넘어 적화통일의 무기로 삼는다. 전략적 무기인 핵과 정치적 무기인 한국 내 종북세력을 결합시키면 전쟁 없이도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4. 싱가포르 합의는 비핵화 아닌 핵군축회담 합의문

 트럼프-김정은 합의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트럼프가 김정은으로부터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알 수 있다.

 합의문을 읽어보자.

 3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북한 발표)

 2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라고 했다. 3항은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고, 2항은 노력하는 의무를 명시하였다.

 1항도 <조선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고 하여 노력한다는 게 아니고 의무화하였다.

 따라서 3항은 노력할 것을 약속한 것이지 비핵화를 약속한 게 아니고, 더구나 북한만의 비핵화를 약속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어문장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1. The United States and the DPRK commit to establish new U.S.-DPRK relations in accordance with the desire of the peoples of the two countries for peace and prosperity.

2. “The United States and the DPRK will join their efforts to build a lasting and stable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3. Reaffirming the April 27, 2018 Panmunjom Declaration, the DPRK commits to work towards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4. The United States and the DPRK commit to recovering POW/MIA remains including the immediate repatriation of those already identified.>

1항은 commit to establish, 2항은 will join their efforts to build, commit to recovering으로 강한  의무적 표현인데, 3항은 commits to work towards이다. 그냥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이다. 즉 비핵화를 약속한 게 아니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비핵화는 북한이 의무적으로 할 일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3항이 인용한 판문점 선언의 해당 문장도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약속이 아니라 남북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약속한 정도이다.   

판문점 선언: <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South and North Korea confirmed the common goal of realizing, through complete denuclearization, a nuclear-free Korean Peninsula.)>

한반도 비핵화는 의무사안이 아니고 공동의 목표이다. 외교문서에서 '공동의 목표'는 실행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쓰는 선언적으로 '앞으로 잘해보자'는 정도의 표현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독소조항이 붙어 있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

여기엔 함정이 하나 있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의 조치가 무엇이냐인데 이는 4월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서를 지칭한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이 결정서에서 북한은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선언하고 핵군축회담에 나서겠다고 했다.

트럼프-김정은 합의는 완전히 북한식 문법으로, 북한식 전략대로 이뤄졌다. 북한은 앞으로 트럼프로부터 핵보유국 자격을 인정 받았으며 자신들의 비핵화를 약속함이 없이 한미동맹 해체를 의미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하여 노력한다는 약속을 하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한 외교관은 'commits to work towards'가 라틴어의 'pactum de contrahendo'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라틴어는 'commitment negotiate to'로 번역된다. 즉 협의하기로 약속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를 트럼프-김정은 합의에 적용하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하여 북한은 협의하기로 약속하였다는 뜻이다.

이런 합의를 만들어놓고도 폼페오와 트럼프는 김정은으로부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약속하였다고 주장한다. 억지이다. 무식한 합의를 덮으려는 것이다. 한국의 트럼프 팬들은 이런 문장을 읽지도 않고 트럼프가 이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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