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황을 '반역'으로 보는 이들의 관점

金鎭炫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이 진행 중

김진현(金鎭炫)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전 서울시립대 총장·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위원장)은 현 사태를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이라 규정하고 “김정은과 주사파 합작의 파국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지난 8월6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의 시작과 완성, 그리고 과제’(한국정치외교사학회 및 선진통일건국연합 공동 주최) 축사를 통해서였다.
그는 <자유, 민주, 평등 다원, 개방이라는 인류진보의 가치와 그 실현에서 아시아 최고인 대한민국이 우리 안에서 극성스러운 자기 부정과 자멸로 가는 처참한 몰골앞에 자괴감 그리고 문뜩 문뜩 허무감마저 든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통사적(通史)적 동시대사(同時代史)적 비교에서 그 어느 나라 민족주의 근대화 운동보다 우월한 대한민국의 실적을 의심 폄하 부정 저주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이 바로 건국 70주년을 맞는 2018년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현실 앞에 1945년 ‘해방’, 1948년 ‘건국’의 감격이 아니라 2018년 ‘자멸’의 피눈물 본다>고 개탄하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법통성 정통성은 북한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3대 세습왕조 유사종교집단과는 모든 면에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이렇게 정리하였다.
<민족주의 항일 독립운동, 근대시민자유, 정치민주화, 사회 문화다원성과 개방, 교육 과학의 고등화, 근대경제성장, 한민족의 지구촌 확장. 쇄국, 고립, 예속, 피침, 분단이 숙명처럼 계속된 역사의 고리를 끊고 바다로 하늘로 세계로 인류의 보편 진보 문명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킨 ‘세계적 한민족’의 중심도 대한민국이다.>
김 이사장은 대한민국에 대한 역사적 반동의 범인을 현 정권으로 특정하였다.
<잠깐이나마 한반도 남쪽 5000만 대한민국이 12억 중국보다 경제력(GDP)에서 컸던 기록(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이 있는 그런 대한민국의 중심성 완성의 길을 김정은이, 트럼프가, 시진핑이, 푸틴이, 아베가 막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안에서 ‘민주’정부의 권력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역사의 반동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는 ‘사이비 보수’의 책임도 묻는다.
<경제 제1주의의 안일한 사고에다 전두환 쿠데타의 등장과 광주항쟁 발발은 한국적 여야(與野)권력 정치지형을 지역·이념의 결사투쟁의 場으로 변질, 고착시켰>다면서 이 원죄가 이른바 사이비보수에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김정은과 주사파 합작의 파국의 위험”을 넘기 위해서 대한민국 주류는 끊임없이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원형과 지향점을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는 헌법이 명시한 대로 ‘통일’지향이며 주변 4강을 극복하지 않고는 통일이 어렵기 때문에 ‘자강(自强)’지향이어야 한다. 그는 <2018년 오늘에 분명한 진실은 대한민국을 의심 폄하 부정하고는 한민족 한반도의 자유 민주 통일 정의 평화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한국의 정체성 정통성 법통성의 강화를 통하여 “한반도 중심성 창조의 길”을 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柳根一의 진단: 어느 날 일어나보니 거리는 ‘완장’ 찬 사람으로 살벌

‘청와대 비서실과 정책실, 안보실의 비서관급 이상 참모 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나 대학 총학생회장 등 운동권 출신이나 각종 시민단체 출신은 전체 64명 중 23명(36%)이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관장하는 비서관급 이상 31명만 대상으로 좁히면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은 전체의 61%(19명)에 달한다. 작년 연말(17명)보다 비중이 더 늘었다.’
지난 8월 초의 이런 통계에 대하여 이념적으로 문제를 보는 데 탁월한 식견(識見)을 가진 柳根一 전 조선일보 주필은 이렇게 분석한다.
<집권세력이 이념적 동질성을 기준으로 권력체계를 짜기로 한 모양이다. 바로 전대협적 기준이다. 한국 범(汎)좌파의 주류가 완전히 386 NL운동권 중심으로 재편 완료, 또는 이동 완료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김대중이 야당 총재 때 이른바 ‘새 피’ 수혈(輸血)이란 이름으로 영입된 자칭 ‘중도개혁’ 야당의 신참당원으로 제도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김대중 세력을 ‘비판적 지지’ 대상으로 치고, 야당을 자신들의 보호막이자 놀이터로 이용하려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들의 사상적 기저(基底)에 비추어 당시의 김대중 야당은 일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당에 불과했지만 자신들의 중간 서식처, 신분세탁소로 이용하였다.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들어가 알을 낳고 마침내는 주인을 몰아내고 둥지를 차지하는 수법이라고 비유한다. “우리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를 하려는 사람들이다” 하고 나서기엔 당시의 다수파 민심이 우파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민주화 야당’일 뿐이다” 하는 식으로 눈속임을 했다는 것이다.
<이제 저들은 몇 단계를 거쳐 완전히 실권자로 부상했다. 민심도 많이 달라졌다. 더군다나 보수-우파가 폭망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권력, 일반 공무원, 사법 권력까지 거의 다 깔때기를 통해 좌(左) 항아리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니 더 이상 뭘 우려하겠는가? 이젠 “그래 우린 이런 사람들이고, 이런 것 하려는 사람들이다, 어쩔래?” 하며 눈알을 부라리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거리에 완장 찬 무리가 설치고 다니더라는 식이다.>


南時旭: ‘주사파 전대협 출신이 정권의 핵심으로 들어갔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문화일보 사장을 지내고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남시욱 선생은 최근 《한국 진보세력 연구"(개정증보판)》를 냈다. 800페이지에 이르는 역저(力著)로서 194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 좌파 세력의 부침(浮沈)을 다뤘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실권을 잡은 세력으로 거론되는 전대협의 성격을 30년에 걸쳐 추적하였다.
<임수경을 평양에 파견한 당시 전대협 의장 임종석(任鍾晳, 한양대 무기재료4)은 1990년 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10년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전대협 소속 대학생 등 200여 명은 재판 시작 전 “사수하자 전대협, 구출하자 임종석” 등 구호·박수와 함께 ‘전대협가’ 등 노래를 불렀다. 임종석은 2심 선고공판에서 출정을 거부해 궐석재판에서 징역 5년으로 형이 경감 선고되고 대법원에서는 상고기각으로 2심 형량이 확정되었다.>
남(南) 선생은, 문재인 정권 핵심에 들어온 전대협 세력을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 조직으로 분류하였다. 전대협이 출범 때부터 주사파에 장악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대협을 움직인 것은 공식기구가 아닌, 주사파 지하세력이 장악한 방계조직 ‘정책위원회’였다는 것이다.
<이 조직은 1987년부터 88년까지 전대협 제1·제2기 집행부 때 북한의 통일전선기구인 한민전의 전위조직을 자처하던 반미청년회가 침투해 조종했고 89년 이후에는 한민전의 지도 아래 결성된 주사파 지하조직인 자주민주통일(자민통)그룹과 조통그룹, 관악자주파 그룹, 그리고 반제청년동맹 등이 조종했다>고 분석하였다.
이들 4개 조직원 출신들로 정책위원회에 진출한 핵심인물은 정책위원장 등 중앙정책위원 5명과 각 지역 지구 대협(대학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 15명 등 20여 명에 달했다. 정책위원들은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인물 가운데서 선발되며, 이들은 모두가 전대협 집행부 간부들의 선배들로서 의장을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한다. 정책위원회는 철저히 가명(假名)을 사용해 노출되지 않게 활동하고 차기 전대협 의장도 여기서 내정함으로써 의장 선출과정에서부터 노선수립·투쟁방법 등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회의 때마다 한민전에 충성할 것을 결의, 일부 가사만 바꾼 ‘한민전가’를 부르면서 북한방송을 유인물로 작성, 배포했다는 것이다. 1987년의 전대협 출범부터 1993년의 해체 때까지 6년간 활동한 집행부는 모두 6기에 달한다. 이 기간 동안 수천 명의 학생 운동가들이 각종 혐의로 당국에 검거되었는데, 그 지도부인 역대 의장도 예외 없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한국전을 南侵 아닌 內戰으로 인식

남시욱 씨는 약 30년 뒤에 전대협 세력이 문재인의 청와대를 장악한 상황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문재인 정권 발족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언론이 분석한 청와대 비서진의 이념적 성향은 노무현 정권 때와 비슷한데, 이른바 386세대의 열혈청년들이 이제는 586세대, 즉 50대의 원숙한 정치인들이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문재인의 청와대 3개실(비서실 정책실 국가안보실)의 비서관급 이상 63명 중 35%에 해당하는 22명이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이다. 특히 임종석 직할인 비서실의 비서관급 이상 30명 중에서는 57%에 해당하는 17명이 운동권 또는 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들 운동권 출신은 주사파인 NL(민족해방) 계열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들이 주류를 이룬다. 전대협 의장과 간부 출신이 5명(임종석, 한병도, 신동호, 백원우, 유행렬)이며, 청와대의 문고리 실세 3인방(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제1부속실장, 유송화 제2부속실장)도 전대협 출신이다. 이 밖에 민청학련 전대협 등 학생운동가 출신으로는 윤영찬(국민소통수석), 하승창(사회혁신수석), 정태호(정책기획비서관), 황인성(민주평화통일자문회사무처장), 노영민(주중 대사), 진성준(정무기획비서관), 김금옥(시민사회비서관), 조한기(의전비서관), 문대림(제도개선 비서관), 박수현(대변인), 권혁기(춘추관장) 등이 있다. 이들 중 비서관이면서 수석에 못지않은 실권을 쥔 3인방, 즉,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국정정보를 관장하는 윤건영과 적폐청산 업무를 맡은 백원우, 그리고 정책을 맡은 정태호는 모두 전대협 간부 등 운동권 출신이다.>
남 선생은 <청와대 비서실이 NL파 운동권 출신으로 메워진 결과는 문재인의 국정수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2017년 9월21일(현지시간) 문재인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스탈린과 모택동과 김일성의 공모로 이루어진 6·25 전쟁 개시를 연설기초자의 식견부족 탓으로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그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엉뚱한 실수를 초래했다>고 비판하였다.


주사파 장악 비서실 의존 심해

비서실의 이념적 성향이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방식이 이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 분석에서 나타난다. 7월 둘째 주 ‘인도 및 싱가포르 국빈방문’ 일정을 제외한 대통령의 일정을 분석해봤다. 대통령은 7월 첫째 주, 셋째 주 11일간 총 84건의 일정을 소화했다. 매일 평균 7.6건의 일정이다. 이중 38건(45.2%)이 ‘비서실 업무현안보고’였으며, 10건(11.9%)이 오전 정규일정인 ‘일일현안보고’였다. 장소별로 보면, 전체 84건의 일정 중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의 일정이 63건(75%)으로 가장 많았고, ‘여민관 소회의실’이 9건(10.7%)이었다. 전체 일정 중 청와대 내에서의 일정이 94%(79건), 외부 일정은 6%(5건)에 불과했다.
7월14일 ‘최저임금 인상’결정에 따라 시끄럽게 출발했던 7월 셋째 주의 경우, 15일 일요일부터 19일 목요일 오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밖을 나서지 않았다. 또한 7월 한 달 간 ‘수요일’의 경우 해외 순방기간을 제외하고 모두 오후 3시 이전에 일정이 끝났다. 일정을 분석하다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정무를 행정부처보다 비서실에 의지하는 듯 보인다. ‘국민소통’을 강조하는 데 비해, 산업현장, 기업, 행정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의 현장 점검 및 방문은 매우 빈약하다. 대체로 토요일에 일정이 없으며, 공휴일 일정이 거의 없고, 앞뒤 주말을 끼면 거의 9일에 이르는 여름휴가를 가지며, 저녁 일정이 거의 없는 점 등을 보면 여유로운 월급쟁이의 스케줄로 보여서 ‘대한민국의 대통령 하기’ 참 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청와대 내의 비서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인데 그 비서실에 주사파, 즉 김일성주의 운동권 출신이 많다는 것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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