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이후 29년 추적기(1)

월간조선 특종으로, 사형집행 49년만에 "死後 무죄" 받은 "간첩의 대명사" 이수근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반세기가 걸린 무죄



탈출한 지 51년, 사형이 집행된 지 49년, 월간조선이 간첩이 아니라는 보도를 한 지 29년, 종범이 무죄를 선고 받은 지 10년이 흘러 "간첩 이수근"은 서류상 무죄인이 되었다. 그 사이 사건 관련자들은 죽거나, 병들거나, 망가졌다. 사건이 시작될 때 31세의 청춘이었던 이는 이제 80세의 노인이 되어 있다.

2018년 10월 11일 李穗根(이수근) 간첩 혐의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가 있었다. 사형집행을 당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李穗根을 대신해 재심을 이끌어온 사람은 이모부인 李穗根과 함께 간첩으로 몰렸던 처조카 裵慶玉(배경옥)씨다. 李穗根에게 위조여권을 만들어주고 서울에서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들어가는 여정을 동행한 죄로, 그는 이수근과 함께 간첩으로 몰려 21년간 복역했다. 1989년 12월23일에 출소한 이후 그는 줄곧 이 사건에 매달렸다. 80년에 가까운 그의 인생에서 전성기인 30~40대를 감옥에 묻어버렸다. 출소 이후 30년의 삶은 누명을 벗기 위한 투쟁의 시간이었다. 50년의 세월을 이 사건과 함께 보내는 사이 그는 혼자가 되었고, 장애인이 되었고, 80세의 老人이 되었다. 오늘 그 여정의 끝자락에 와 있다.

하루 사이에 아침 기온이 6도까지 떨어진 10월11일 오전,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서울중앙지방법원 425호 법정 앞은 썰렁했다. 裵慶玉 씨는 공판 예정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법정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는 혼자였다. 49년만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선고에 관심을 가진 언론은 별로 없었다. 몇 기자가 먼저 와 있던 裵씨를 알아보고 질문을 했다. 전날 裵씨는 ‘이수근 간첩사건 재심 최종 선고’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공판 일정 등을 직접 A4용지 한 장에 펜으로 적어, 법원 청사 2층에 있는 기자실 내부 게시판에 붙였다. 裵씨가 스스로 작성한 보도자료인 셈이다. 이수근은 한때 "간첩"의 대명사였지만 세월이 그 기억도 지워 무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법정 안 방청석도 텅 비었다. 10시20분 공판 시간이 다가오자, 3명의 판사가 자리를 잡았다. 검사의 맞은 편 자리는 비어있었다. 피고인도 변호인도 없었다. 이미 사망한 李穗根의 직계 가족이 남한에는 없다. 이 사건의 유일한 재심 청구권자는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다. 이 사건의 공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2008년 재심을 통해 간첩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던 裵慶玉씨도 처조카라는 이유로 재심 청구권자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는 2008년 재심 이후 곧바로 이모부 이수근의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을 이어갔다. 검찰이 주범인 이수근에 대한 재심청구를 미루는 사이 검사의 직무유기에 대한 고소, 1인 시위 등이 계속되었고 작년 검찰의 재심 청구, 개시결정, 그리고 오늘의 선고에 이르기까지 10년이 지났다.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 무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3부, 사건번호 ‘2017재고합41’ 사건 담당 김태업 부장판사는 담담하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수근을 죽음으로 몰고간 죄는 국가보안법위반죄, 반공법위반죄, 공문서위조죄, 위조공문서행사죄, 외국환관리법위반죄였다. 49년만의 재심 판결은 30여분 만에 끝났다. “주문, 피고에 대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부는 1969년의 판결은 ‘이수근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위장 귀순한 간첩임을 전제로, 군사기밀 탐지, 국가기밀 탐지 및 수집, 反국가단체 활동, 대한민국 탈출 등의 행위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및 반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이었으나,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제 3국으로 가기 위해 대한민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위조 여권을 만들고, 미화(美貨) 환전 후 취득신고를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중앙정보부는 영장 없이 피고인을 강제 연행해 불법 구금하고, 고문 구타 등의 가혹행위 등 인권을 유린했다”고 인정했다. “중앙정보부 및 검찰측이 제출한 피고인들의 진술서는 모두 이런 고문과 폭행에 의한 허위자백일 개연성이 충분하고, 따라서 증거능력을 상실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첫 공판이 열리기 전날 대공분실로 끌려가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고, 재판 당일에도 중정 요원들이 법정을 둘러싸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한 만큼 당시 법정에서 한 진술도 강요된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조잡한 암호문 ▲난수표가 없는 점 ▲이수근의 취득 정보가 의미 있는 국가기밀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당시 홍콩에 도착해서 충분히 북한 영사관 등으로 들어갈 수 있었음에도 캄보디아로 향한 점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에게 보낸 미안하다는 편지 ▲중정 감찰실의 폭행·폭언·협박을 견디기 어려워했다는 점 ▲이수근 사형집행 후 북한에서 ‘변절자의 말로는 이렇다’는 강연이 열렸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수근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위장 귀순 간첩이라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런 무죄 이유는 기자가 월간조선에 여러 차례 썼던 내용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이 사건이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해 간첩이라는 오명을 쓴 체 생명권을 박탈당함으로써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점에 대해 진정으로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마무리했다. 이수근이 위장 귀순한 간첩이며 북한의 지령을 받고 북한으로 복귀할 계획이었다는 49년 전의 판단은 이날 판결로 모두 부정되었다.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명예 회복이다.

2008년 자신에 대한 재심 무죄선고 당시 눈물을 흘리며 “기뻐야 하는데 허무하다”라고 했던 裵慶玉씨는 이날은 조용하였다. 여기까지의 시간이 고되었을 뿐 ‘무죄’ 판결은 당연하게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검찰이 재심을 청구하였으므로 이 선고를 받아들여 무죄는 확정된다). 배씨는 “이젠 억울함, 분노 같은 감정도 지나온 것 같습니다.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제 운명인거죠...”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오늘이 끝이 아닙니다. 이제 또 시작이죠”라며 선고 후 사건 기록 열람을 하러 간다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이모부 이수근을 대신한 손해배상청구 등 또 다른 법적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989년 3월호 月刊朝鮮에서 이수근 간첩 사건에 대한 조작 의혹을 처음 보도했던 기자는, 이후 사건 조작이 ‘의혹’이 아닌 ‘사실’로 인정되기까지 29년 동안 이 사건과 동행해왔다. 출소하자마자 기자를 찾아왔던 배경옥 씨와의 인연도 2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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