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대표의 暴言 暴行 사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당원 토론회에서 역대 보수 정권을 '극우적 세력'이라면서 정조 死後 218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빼고는 한번도 민주, 개혁적인 정치세력이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보수정권 때 "금강산과 개성이 무너지고 복지정책도 무너졌다"는 표현도 하면서 20년 이상 집권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극우'는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폭력을 동원하는 우파를 말하는데 적어도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그렇게 부를 근거는 없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건국은 우리나라 민주개혁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민주적 개혁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만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없었는데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없었더라도 지금처럼 퍼줄 복지가 가능하였을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은 북한군의 한국 관광객 사살 사건 때문이고, 개성공단이 중단된 것은 북한정권의 핵 미사일 도발 때문인데 책임을 보수 정권에 轉嫁한다. 그가 극우를 구분하는 기준이 극좌적(친북사회주의적) 가치관임을 짐직하게 한다. 그렇다면 그의 이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최고가치로 삼는 대한민국 헌법과 맞지 않다.

이해찬 식 역사관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 있다. 김대중 노무현만 잘하고 다른 조상들은 다 잘못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그가 입고 먹고 살고 타고 다니는 이 위대한 선진 文明은 누가 만들었나? 김일성이 만들어서 선물한 것인가?

이해찬 의원은 이런 폭언뿐 아니라 폭행도 하는 사람이다. 월간조선 2004년 12월호 기사중 해당 부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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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부동산 매입 건으로 구청 관계자 호출

李 총리가 서울市 정무부시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서울市 송파구청 재무국장이던 정태복(鄭泰福·70) 씨는 1995년 12월18일 「이해찬 정무부시장실」에서 발생한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국장인 나를 포함해 담당과장·계장·직원이 李 부시장실로 불려갔습니다. 李 부시장의 형이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금으로 송파구 가락동 근처에 7억8000만원짜리 건물을 구입했지요. 그런데 부동산 등기과정에서 행정적 착오가 있었어요. 그게 문제가 됐습니다』

―무슨 문제였습니까.

『건물가액(價額)과 토지가액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관한 것이었지요. 금액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랐습니다. 우리 직원과 李부시장의 형 측과 견해가 달랐어요』

―형이 부동산을 구입했는데 왜 李 부시장이 나섭니까.

『정무부시장실에서 근무하던 한 비서관이 우리 구청 담당 계장에게 전화를 했어요. 「건물을 구입한 사람이 李 부시장의 형이니까 잘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지요. 형이 아마도 동생에게 얘기를 했겠죠. 전화를 받은 계장은 신경을 썼지만 담당직원의 실수를 발견하지 못했던 거예요』

―무슨 실수였습니까.

『법원 등기소에서 등기를 하는 과정에서 서류가 반려됐어요. 알고 보니 토지가액과 건물가액을 합한 액수가 서로 달랐던 거지요. 계산上의 착오였습니다. 담당과장 전결 사항이었는데 더하기를 잘못 했던 겁니다. 바로 수정조치를 해서 등기가 완료되기는 했습니다』

―큰 실수였나요.

『담당직원이 잘못한 건 맞지요. 그러나 단순한 실수였습니다』

―그런데 李 부시장실에 왜 갔습니까.

『저는 그날 오전에 區의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과장이 「빨리 부시장실로 가자」며 저를 찾아왔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상황을 설명하더군요.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 후 직접 확인해 봤어요. 담당직원의 실수가 한눈에 들어왔고, 납득이 가는 단순한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나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고 했더니 「(李 부시장이) 국장까지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李 부시장에게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면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곧장 달려갔습니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돌변』

―이해찬 정무부시장과 송파구청 소속 鄭 선생과는 어떤 관계라고 봐야 할까요.

『업무상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요. 저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서울시가 우리 구청에 대해 감사권을 가지고는 있지요』

―李 부시장실에 간 게 몇 시였습니까.

『오후 1시쯤이었어요. 李부시장이 부재 중이라 부속실에서 한 30분쯤 기다렸더니 그가 들어오더군요. 담당직원을 제외하고 저와 과장, 계장이 부시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차분히 설명하니까 李 부시장이 이해를 하던가요.

『가져간 서류를 펴 놓고 설명을 하려던 순간 李 부시장이 갑자기 반말로 제게 「네가 뭔데, 얼마 받아먹으려고 그렇게 지시했어」라며 고함을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순간적으로 돌변하기에 「이 사람 왜 이러나」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더니 「(서울시) 감사관 오라고 그래」 한 후 「담당직원 어디 갔어」라고 했습니다』

―부속실에서 대기 중이던 담당직원은 그때 들어왔습니까.

『네. 그 직원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고는 「잘못했습니다」라고 했어요. 李 부시장은 제 부하 직원에게 몇 마디 폭언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서울시 감사관이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끝났습니까.

『의자에 앉아 있던 李 부시장이 무릎 꿇은 직원을 향해 책인지 서류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뭔가를 집어던졌어요. 그러고는 그에게 다가가 한 차례의 손찌검을 하는 겁니다. 그 순간 감사관이 달려들어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말렸어요. 그런 후 李 부시장은 「이자들 재산등록 서류 가져와」 하더군요. 그런 후 감사관에게 「내일 당장 송파구 특별감사 해」라고 했습니다.

감사관은 「국장만 해당되고 나머지 직원은 직급이 낮아 재산등록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저는 그 순간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찬 부시장이 「당장 가져오라」고 해서, 곧장 송파구청에 있던 제 재산등록 서류를 서울市의 다른 직원이 가서 가져왔습니다』(손찌검과 관련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당사자는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차례 손찌검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숨긴 것 없어. 이게 다야?』

―뇌물을 받기 위해 일부러 서류를 조작한 것은 아닙니까.

『저는 그 이듬해에 30년이 넘는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는 퇴직을 앞두고 있었어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뇌물입니까. 감독 책임이 있는 제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李 부시장은 저를 도둑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속이 아주 상했어요. 당시 그의 나이 40代 중반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리 부시장이라고 하지만 젊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제 인생이 처량해지더군요』

―당시 재산은 얼마나 됐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현재 살고 있는 집 하나뿐이었습니다. 李 부시장은 제 재산등록 서류를 검사(檢事)처럼 꼼꼼히 보더니 「숨긴 것 없어. 이게 다야?」라고 하더군요』

―李 부시장실에서 언제 나왔습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오후 5시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송파구청으로 바로 돌아왔습니까.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후 감사관실에서 경위서를 작성하고 추가로 조사를 받았어요. 그렇게 끝난 시각이 밤 10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평생 공무원하면서 그런 일은 처음』

―9년 전의 일을 어떻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제 일기에 그날 일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으니 기억을 못 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요』

―특별감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감사거리가 안 됐는데 무슨 감사가 있었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감사관도 「단순한 실수를 가지고 부시장이 난리다」고 했어요. 누가 봐도 단순한 실수를 고의로 몰아 넣은 데 대해 너무 화가 났어요』

―부하 직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고의가 아니고 단순한 실수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묻습니까. 부하 직원이 제게 미안해하며 「사표를 쓰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작은 실수를 가지고 사표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만류했지요』

―그 일이 있은 후 李 부시장이 「미안하다」는 뜻을 전달해 오던가요.

『사과는 무슨 사과…』

―이후 李 부시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왜 그 사람 얼굴을 봅니까. 그 일이 있은 후 선거기획단장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黨으로 가버렸어요』

―李 부시장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어요. 1998년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교육부, 참 잘도 되겠네」라고 혼자 중얼거렸지요. 총리가 된다고 했을 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총리하나. 나라가 좀 시끄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형 문제로 난리 친 사람이 어떻게 국정을 논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총리 하나』

정태복(鄭泰福) 씨는 20代 공무원 초년병 시절 겪었던 일을 하나 들려줬다.

『강원도 지방과 행정계에 있을 때였어요. 1958년 제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지요. 강원도 지방공무원 교도원(지금의 공무원연수원) 업무를 맡고 있었어요. 연수가 끝난 공무원들에게 강원도지사 명의의 수료증을 주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료증 수여식이 있던 당일 내무국장의 결재가 안 났던 거지요. 저는 결재를 미리 올렸는데 국장이 멀리 출장을 가는 바람에 처리가 미뤄졌던 겁니다.

저는 당연히 결재가 난 줄 알고 도지사 직인을 찍어 수료증을 전달했습니다. 결재 없이 도지사 직인을 찍었으니 당연히 징계감이었지요. 그런데 그 국장이 돌아와서 보고를 받은 후 「괜찮다」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국장은 나중에 서울市로 발령이 났어요. 이후 그는 세제(稅制)개혁을 통해 서울시의 재정(財政)상황을 크게 호선시켰습니다. 당시 서울市에서 그를 신화적 존재로 인정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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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ronger 2018-12-05 오후 3:30

    내가 손찌검 당했다면, 맞받아 쳤을 것이다.

  • 1 2018-11-30 오후 7:29

    이런자가 왜? 대한민국에 사는지 알수없다!!! 자유 민주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자가 나왔는지 알수없다!!! 이런자가 여당의 대표가되었다는것이 자유 민주 대한민국은 진짜 민주국가라는것이 증명됬다!!! 두번다시 좌파정권의 실수는 자유 민주 국민의 최대의 굴욕이라는것을 일깨워준 역사적 교훈이 되었다!!! 좌파, 운동권, 친북파 종북파,반국가단체 민노총,전교조,좌파 민간단체라면 치가 떨린다!!! 자유 민주 대한민국에는 자유 민주 국민만이 살아야하는 나라다!!!

  • love 2018-11-30 오전 9:33

    이런 수준 미달의 엉터리 역사관을 가진 자가 집권당 대표라니! 참으로 개탄 스럽다!

  • 白丁 2018-11-26 오후 10:04

    이 者, 한국 좌익 인간상의 典型이요 模範이며 標本이며 龜鑑이지.

  • 정정당당돌직구 2018-11-26 오후 4:22

    요즘 집권당 잣대로 들이대면 위게에 의한 직권남용에 폭력행사에 친인척 비리혐의, 명예훼손까지 징역 합이 15년은 받을 중죄구만 잘난 주댕이로 극우타령은.

  • 黃葉靑山 2018-11-26 오후 12:46

    욕을 해주고 싶지만 나도 똑같은 인간이 될까봐 그만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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