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겪어본 정치는 어쩌면 이기심과 性을 상대한 결전이다. 사유를 국유화, '부화(불륜)' 척결이 그 증거이다. 마치 본능을 없앨 것 같은 공산 혁명 분위기이다. 하지만 남한에 비견은 안 되지만 러브 스토리는 존재했다.
전후 소련 여성들이 남자를 끌어안는 사건이 심심히 않았다고 한다. 너무 많은 소련 남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소·독(蘇獨) 전쟁 끝난 지 4년 후에 국비 유학갔던 나의 연구실장이었던 김광봉(북한에서 유일한 목화 박사)의 증언이다.
6·25 전쟁 후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리원 공산대학에서 잘생긴 축에 속하던 부친은 여자들에게 인기였다. 그 덕에 부화 건에 걸려 농촌 오지에 두 번이나 쫓겨 갔다 겨우 복귀하였다.
그 통에 나는 농촌 오지에서 남녀칠세부동석 나이에 이른다. 처음 인민학교(초등)에 입학하였는데(황북도 서흥군 고성리) 운이 참 좋게도 1학년 다닐 때까지 남녀 혼합반이었다. 그 후 북한은 고등 중학교 졸업까지 남녀 혼합반을 불허하였다. 하기에 그 짧은 남녀 혼합반이었지만 러브스토리가 있어 추억을 아름답게 한다. 그마저 없었다면 정말 멋대가리 없는 불행 인생으로 끝났을 것이다.
사실 러브 스토리라고 하기는 미숙한 '남녀칠세부동석'의 스토리이다. 나의 학급에 김금순이란 앵두알같이 얼굴이 이쁘고 작은 여자애가 있었다. 그 애 집은 학교에서 15리 되는 먼 곳이었는데 우리 집 앞을 반드시 지나가야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면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그 여자애는 추울 때에는 멜 가방과 등 사이에 두 손을 넣고 달랑달랑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이뻤다. 뒤따라가며 자주 꼭 찌르고 모르는 체 했다. 눈을 흘기는 모습이나 우는 모습 등 모두 너무 이뻐 더 손이 갈 정도였다.
교실에 앉아있을 때도 뒤에 가 건드리며 좋아했다. 당연히 그 여자애는 싫어했고 그 횟수가 지겹게 늘자 견디다 못해 그녀의 아빠가 학교에 찾아왔다. 바쁜 농장 일에 시간 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찾아온 것이다.
"너 왜 우리 금순이를 못살게 구느냐?"며 큰 소리로 꾸짖는다.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빤히 쳐다보며 대꾸했다.
"아니예요. 쟤를 좋아했지 미워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쟤를 누구도 때리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어요!"
훗날 읍 인민학교(초등학교)씨름 선수였을 만큼 덩치도 좋고 하여 작은 금순이를 누구든 때리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얼굴도 잘생긴 놈의 애비는 리(里)에 2인자 간부인 농장 기사장이었다. 간부 자식 놈이기에 함부로 하기도 그랬다.
자기 잘못을 전혀 모를 정도로 미성년자였던 나의 세계에서는 금순이를 좋아했고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금순이 아빠도 당당한 녀석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여 독기를 푸시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기분 나쁜 소식을 접하게 된다. 금순이와 한동네에 있는 또래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랬다. 녀석을 혼내려 갔던 금순이 아빠가 오히려 딸에게 이랬다는 것이다. "그 녀석이 너를 누가 때리지 못하게 막고 있고, 또 간부 아들이고 또 멀쩡하게 잘 생긴 놈이 너를 좋아하니 시집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혹 떼러 보냈던 아빠가 혹을 더 붙이고 왔으니 기가 막힌 금순이는 목 놓아 울면서 "그 지겨운 '민 돼지'하고 절대 살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민 돼지'는 학교에서 젤 힘이 세서 나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이 소리를 들은 나는 기분 나쁘기 그지없었다. 학교에 온 금순이를 막무가내로 교실 구석에 밀어붙이고 따져 물었다.
"야! 너 내가 나쁜 놈이라고 징징댔다며?"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이지만 미성년 나의 태도이다. 작은 금순이는 앵두알 같은 얼굴에서 금방 눈물이 터져 나올 듯하며 오돌오돌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 앞에 덤빈다고 "네가 나를 콕콕 찌르며 괴롭히니까 그렇치?!"
속으로 야! 요것 봐라! 하면서도 이 반발에 당황하여 한동안 말을 잃었다. '정신 잃은' 나에게 금순이의 최후 반격은
"너 다시는 그러지 않으면 좋겠어!"
"그럼 나를 좋아할 거야?!"
궁지에 몰린 쥐는 탈출구를 찾은 듯 머리를 끄덕인다. 그 후부터는 다시는 그녀의 뒤에서 만지작거리거나 콕콕 건드리지 않았다. 아쉽게도 한 달도 안 되어 아빠의 출세로 전학 가게 되었다.아마도 어린 금순이는 저 지겨운 놈 잘갔다고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후 과학원 연구원었던 내가 금순이 사는 황북도 서흥군 고성리 1반 동네를 지날 때이다. 마을 어른에게 금순이 소재를 물으니 교원대학을 나오고 읍 학교 선생을 한다고 했다. 시간상 만날 수가 없었다. 몸서리칠 정도로 지겨웠던 '민 돼지'를 지금 만나도 싫어했을까. 지금은 아닐 것이다.
그로부터 30년 후 나는 탈북하여 남한에 와있다. 학교 때의 러브스토리 전부인 금순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통일이 돼야 가능할 것이다.
금순이와의 '러브 스토리'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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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8, 07: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