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이후 한국 축구의 미래는 누구?

세계축구의 새로운 흐름! 갑자기 경기가 재미 있어졌다.

Intro 


2025년은 많은 축구 팬들에게 인상깊은 연도일 것이다. 축구는 수 십년 동안 전세계적인 인기를 보유하는 스포츠이다. 대한민국도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으로 이어지는 슈퍼스타들 덕분에 국내 축구팬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남녀노소 즐기는 축구가 한동안 재미를 잃어간다는 말들이 있었다. 왜 그런 말이 나온 것이냐. 답은 간단하다. 똑같은 팀들이 우승을 하고 점점 이렇다 할 슈퍼스타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축구는 요사이 축구와는 다르다. 완벽한 전술 내에서 선수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결과를 내는 게 아닌, 내로라 하는 슈퍼스타들이 화려한 개인기, 중거리슛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소리치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 수비수들은 훨씬 거칠었고, 공격수들은 과감하게 개인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며, 한 감독이 오늘의 축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펩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 감독은 일명 ‘포지션 플레이’를 통해 선수 한 명 한 명이 제 역할을 소화하며 골을 만들어내는 전술을 선보였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지속적 패스와 오프더볼 무브(공을 소유하지 않은 선수들이 패스를 받기 위해, 빈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만드는 움직임)를 통해 게임을 지배하였다. 


티키타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이러한 축구전술은 바르셀로나가 6관왕을 한 시즌만에 이루어내는 기염을 토하며 많은 축구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기록은 2019/2020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6관왕을 달성하기 전 까진 깨지지 않은, 깨질 것 같지도 않던 기록이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주축선수로는 고작 22살이였던 리오넬 메시, 지금까지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를 논할 때 빠지지않는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정복하고 바르셀로나로 온 티에리 앙리 등이 있었다.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많은 감독이 공 점유율을 중시하는 전술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포지션 플레이로 팀 전체가 협력하여 골을 만들어내는 축구가 보편화 되었다. 


이때까지도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필두로 한 쟁쟁한 이름의 슈퍼스타들이 즐비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슈퍼스타들의 노쇠화, 그리고 전술적 변화를 아유로 한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챙겨가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자, 슈퍼스타들이 점점 사라졌다. 한 경기에서 엎치락 뒤치락 한 골씩 주고받던 재미있는 경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축구시장의 인기가 늘어나며 全세계의 부자, 회사 심지어 국가들까지 축구구단을 인수하며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선수들은 점점 돈을 쫓기 시작했고, 구단들은 재정적 이유로 구단에 충성을 바친 선수들을 내치는 상황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매년 이기는 팀이 이기는, 매년이 예상이 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 예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연고의 맨체스터 시티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원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더욱 발전된 전술로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지배하였다.  

 


왜 2024/2025 축구가 재미있었는가? 


1. 언더독의 반란, 그리고 감동적인 서사 


왜 2024/2025 시즌 축구가 재미있었는가?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2024/2025 시즌 축구는 속된 말로 ‘아드레날린이 터지는’시즌이였다. 약팀들의 급부상, 한 골씩 주고받으며 긴장감 넘치는 경기들, 그리고 차세대 슈퍼스타, 유망주들의 발굴이 그 이유다. 먼저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확인해 보자. 4년 연속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한 맨체스터 시티는 주축 미드필더, 케빈 데 브라위너의 노쇠화 및 부상, 로드리의 부상 때문에 시즌 초부터 부진하였다. 압도적인 골 결정력을 보여주며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 엘링 홀란드도 그 둘이 빠지자 한 동안 한 골도 넣지 못 하였다.


그에 반해 근 몇 년간 살짝 부진하던 리버풀은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불안하였다. 암흑기의 리버풀에 2015년에 감독으로 부임하여 리버풀을 다시금 상위권 팀으로 올려놓은 위르겐 클롭이 리버풀을 떠나며, 그 후계자로 아르네 슬롯 감독이 부임하였다. 아르네 슬롯 감독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페예노르트 로트르담에서 돌풍을 일으킨 감독이다. 리버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아르네 슬롯 감독은 이렇다 할 선수 영입이 없었음에도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4/2025 시즌 초중반 즈음부터 많은 이들이 리버풀의 우승을 예상하였다.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아르네 슬롯의 리버풀은 결국 리그 34라운드에서 우승을 확정지으며 맨체스터 시티의 연승을 멈췄다. 


리버풀 뿐이 아니였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위 몰락한 名家라 불리던 노팅엄 포레스트가 돌풍을 일으켰다. 2부리그와 1부리그 사이에서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던 노팅엄 포레스트는 2022/2023 시즌 영국 프리미어리그로의 昇格을 이루어냈다. 그 해에 리그 16위, 그 다음해에는 17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별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 하였다. 그러나 2023/2024시즌 부임한 누누 산투 감독의 노팅엄 포레스트는 이번 시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팀이 되었다. 역습 전술과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노팅엄 포레스트는 1983/1984시즌 이후 처음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7위 안에 들었다.


같은 리그의 또 다른 몰락한 명가, 잠자는 거인, 첼시도 리그 4위 마무리 및 컨퍼런스리그 우승을 이루어 냈다. 같은 런던 연고의 크리스탈 팰리스도 FA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1-0으로 잡아내며 1905년 구단 창단 이후 120년만에 첫 우승을 했다. 얼마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2007년생 공격수 박승수가 이적을 하며 방한을 통해 토트넘 홋스퍼와 친선경기를 치른 뉴캐슬 유나이티드도 카라바오컵을 우승하며 56년의 트로피 가뭄을 해소하였다. 


다른 리그에서는 오랜기간 부진을 겪던 바르셀로나가 축구계 초신성 라민 야말과, 노장 레반도프스키, 길어진 부진을 이겨낸 하피냐를 주축으로 도메스틱 트레블(리그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를 이루어내며 길어질 것 같던 암흑기를 떨쳐내었고, 슈퍼스타 음바페, 벨링엄,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필두로 향후 10년은 우승을 독점할 것 같던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全勝을 이루어냈다. 프랑스 리그앙에서 매년 우승을 차지하며 카타르의 國富사업으로 막대한 지원을 받던, 우리나라에선 이강인의 팀으로 유명한 파리 생제르망마저 창단 이후 첫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며 팬들의 가려운 부분을 해소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많고, 유명한 손흥민의 팀, 토트넘 홋스퍼도 17년만의 우승을 통해 손흥민의 평생 소원이 이루어졌다. 10년간 한 팀에 헌신하며 각종 개인상을 휩쓸었던 손흥민의 마지막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한국인들에겐 굉장히 의미가 깊었고, 현지팬들도 눈물을 쏟게 만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처럼 2024/2025 시즌은 많은 팀들이 오래된 트로피 가뭄을 해결하며, 축구팬들에게 ‘成佛의 해’라고 불리게 되었다. 餘談으로 만년 꼴등이라 놀림 받던 KBO의 한화 이글스마저 이 글 작성 시점인 8월5일 까지도 1위를 유지하며 축구팬이자 한화 이글스 팬들에겐 “한화 이글스도 우승 가뭄을 해결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하였다. 番外로, 이번 시즌 축구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토트넘 홋스퍼, 크리스탈 팰리스, 리버풀, 뉴캐슬을 상징하는 동물들이 전부 ‘鳥類’라는 점에서 한화 이글스의 우승이 정말 현실에 가까워지는 듯한 분위기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번 시즌 축구는 예측불가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뿐아니라 메시와 호날두가 유럽을 떠나며 그 자리를 촉망받는 유망주, 소위 ‘초신성’들이 메꾸며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을 제공하였다. 축구 경기들도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많은 축구인 및 축구팬들이 “Game is back”, 우리가 알던 옛날 축구가 돌아왔다라는 말을 하게 만든 챔피언스리그 4강, 인테르 밀란과 바르셀로나의 경기가 있다. 두 경기 총합 13골이 나오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하는 경기였다.  

 

 

2. 긴장감 넘치는 경기 


인테르 밀란-바르셀로나 시리즈는 여러  방면에서 상징적인 게임이였다. 첫 번째로, 오랜기간 부진을 겪던 바르셀로나는 이번 시즌 새로 부임한 한지 플릭 감독 아래, 새로운 팀으로 환골탈태 하였다. 그 중심엔 유럽 최고의 유소년 아카데미인 ‘라 마시아’가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재정난과 1:1룰 복귀에 차질을 겪으며 선수 영입이 원만하지 않았다. 차비 전 감독은 라 마시아의 재능들을 대체자로서 눈여겨 보았다. 그도 그럴 게 차비 감독도 ‘라 마시아’ 출신이고, 바르셀로나의 전성기의 중심에는 항상 ‘라 마시아’ 출신 선수들이 있었다. 차비 감독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출장시간을 주고 진짜 프로경기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결과로 한지 플릭 감독 밑에서 라민 야말, 알레한드로 발데, 파우 쿠바르시 등의 선수들이 꽃을 피운 것이다. 


인테르 밀란은 어떤가? 인테르 밀란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 경쟁, 코파 이탈리아 우승 경쟁 등으로 主戰 선수들은 혹사당하고 있었고, 球團 수뇌부들도 선수 영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인테르 밀란의 주전 선수들은 노쇠화 하는 팀이다. 이런 惡材에도 불구하고 시모네 인자기 감독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본인이 왜 名將인지를 증명하였다. 세 시즌 안에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두 번을 기록한 것이다.  


두 번째 觀戰 포인트는 한 골씩 주고 받는 두 팀의 쇼다운일 것이다. 4강 1차전 시작과 동시에 인테르 밀란은 마르쿠스 튀랑과 덴젤 둠프리스의 골에 힘입어 2 대 0으로 앞서 나갔다. 시작과 동시에 敗色이 짙어진 바르셀로나를 구한 것은 다름아닌, ‘만 17살’ 현재 全 세계 최고의 스타인 라민 야말이었다. 라민 야말은 단신으로 인테르 밀란의 베테랑 수비수 세 명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좁은 공간에서 반 박자 빠르게 감아차며, 인테르 밀란의 허를 찔럿다. 라민 야말의 슈팅은 포물선을 그리며 얀 좀머 골키퍼를 넘어서 그물망을 흔들었다. 

 

그 후 분위기를 탄 바르셀로나는 페란 토레스가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시리즈 최고의 다크호스중 하나인 ‘덴젤 둠프리스’는 바르셀로나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후반 63분, 다시 한 번 앞서가는 골을 넣으며,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왜 인테르 밀란-바르셀로나 시리즈가 최고의 시리즈인지를 증명하는 골이 나왔다. 코너킥 세트피스 상황, 다니 올모가 박스 밖에서 기다리던 라민 야말에게 패스를 했다. 하지만 그 공이 향하던 선수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하피냐였다. 라민 야말은 그 패스를 그대로 흘리며 뒤에서 대기하던 하피냐에게 중거리 슈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하피냐는 그대로 슈팅을 하였고, 그 공은 골대를 맞고 얀 좀머 골키퍼의 등에 맞으며 바르셀로나의 逆轉의 계기가 되었다.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의 패턴, 역전승, ‘Remontada’가 실현되는 듯 하였다. 결국엔 3 대 3으로 끝난 1차전 이였다. 

 

선수단의 부상은 바르셀로나의 발목을 잡았다. 바르셀로나의 골 머신, 주포 레반도프스키와 주전 풀백이자 유망주 알레한드로 발데의 부상, 그리고 인테르 밀란과의 2차전 직전 주전 풀백인 쥘 쿤데의 부상이 있었다. 2차전은 다시 한 번 비슷한 양상으로 가는 듯하였다. 2 대 2 동점 상황이 계속 되던 중, 후반 87분, 하피냐의 결정적인 골로 바르셀로나가 결승으로 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추가시간 3분 즈음, 인테르 밀란은 끝까지 바르셀로나의 결승 진출을 방해한다. 무려 37살, ‘프란체스코 아체르비’가 세트피스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프란체스코 아체르비는 알코올 중독, 그리고 암과의 死鬪를 이겨내고 복귀 한 선수였다. 그렇게 연장전으로 돌입한 인테르 밀란은, 다비데 프라테시가 골문을 흔들며, 4 대 3으로 앞서 나간다. 


바르셀로나는 라민 야말이 고분분투하나, 그를 막은 것은, 덴젤 둠프리스와 함께 이번 시리즈 최고의 다크호스, 얀 좀머 골키퍼였다. 36살인 얀 좀머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고작 86억 원에 인테르 밀란으로 합류한 선수였다. 라민 야말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그의 재능을 뽐내며, ‘이건 무조건 들어갔다’ 싶은 골들을 亂射하였으나, 인테르 밀란의 수문장 얀 좀머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반사신경으로 막아냈다. 결국 최종 점수 4 대 3. 1차전과 합쳐서 총 7 대 6이라는 엄청난 점수가 나왔다. 이 경기를 본 사람들은, 바르셀로나 혹은 인테르 밀란의 팬이 아니더라도 ‘단연 최고의 경기’라며 극찬을 하였다. 시모네 인자기는 자신이 왜 명장인지를, 라민 야말은 자신이 왜 최고의 유망주인지를 보여준 경기였다. 굉장히 여운이 남는 시리즈였다.  결승전에선 파리 생제르맹이 5-0으로 인테르밀란을 꺾고 우승했다. 

 


한국인들에게는 왜 의미가 있는가? 


1. 손흥민 


최근 몇 년간 한국 축구 팬층은 크게 늘었고, 그 중심에는 손흥민이 있었다. 독일 레버쿠젠에서 활약 후 토트넘으로 移籍했지만, 초기에는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의 신뢰 속에 21골 7도움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2018/19 시즌 토트넘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3골을 기록하며 ‘맨체스터의 주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주제 무리뉴 감독 아래에서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며 해리 케인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였고, 번리전 70m 질주골로 푸스카스상을 수상했다. 2020/21 시즌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공동·페널티킥 없이)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2020/21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이후, 손흥민은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해리 케인과의 콤비 플레이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합작 골 기록을 세우며 전설로 남았다.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득점 능력과 헌신적인 움직임, 폭발적인 스피드를 갖춘 손흥민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 체제에서 역습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다. 


2022/23 시즌 초반, 부상과 폼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고, 월드컵 직전 眼窩골절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타르 월드컵에서 主將으로서 대한민국을 16강으로 이끌었고, 포르투갈전에서는 결승 진출을 결정짓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시즌 후반 토트넘으로 복귀한 그는 2023년 4월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통산 100호 골을 달성했다. 2023년 여름, 해리 케인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손흥민은 토트넘의 주장을 맡게 되었다. 새 사령탑 앤지 포스테코글루 감독 아래에서 그는 중앙 스트라이커 역할로 변신하며 다시 한 번 득점 감각을 과시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보여주는 리더십과 獻身은 전 세계 축구팬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 역사에도 깊이 각인되었다. 손흥민은 이제 단순한 스타 선수를 넘어, 한 세대를 대표하는 傳說로 자리 잡았다.


2024년 들어 손흥민은 예상치 못한 슬럼프에 빠졌다. 시즌 초반 좋은 흐름을 이어갔지만, 연이은 빡빡한 일정과 작은 부상들이 겹치면서 득점 감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주장이 된 부담감, 그리고 토트넘의 불안정한 수비력과 기복 있는 경기력도 손흥민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일부 팬과 언론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손흥민은 특유의 성실함과 정신력으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앤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신뢰 속에 그는 훈련량을 늘리고 전술적으로도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유럽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토트넘은 리그에서는 기복을 보였지만, 유로파리그에서는 꾸준히 승리를 쌓았다. 


8강과 4강에서 손흥민은 결정적인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결승 상대는 스페인의 강호 세비야였다. 세비야는 ‘유로파리그의 왕’으로 불릴 만큼 이 대회에서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했지만, 손흥민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그는 전반 23분, 빠른 역습 상황에서 감각적인 왼발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후 후반전에도 팀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손흥민은 토트넘에 오랜만에 메이저 트로피를 안겼고, 개인 커리어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후 그는 “이 순간을 위해 모든 어려움을 견뎠다. 팬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의 유로파리그 우승은 단순한 트로피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슬럼프와 비판을 극복한 리더의 이야기이자, 아시아 선수로서 또 하나의 역사적인 이정표였다. 


2. 한국의 축구의 미래 


손흥민의 전성기도 지나가고 그도 33살이 되었다. 그가 10년을 헌신한 토트넘 홋스퍼와 함께 UEFA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린 후, 그는 미국 MLS의 LA FC로의 이적을 결정하였다. ‘박수칠 때 떠난다’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축구는 손흥민을 필두로 여러 재능있는 선수들과 함께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흥민도 곧 은퇴를 바라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손흥민을 代替할 것 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킨 광주 FC의 엄지성은 기성용이 몸 담았던 클럽, 스완지 시티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 이 외에도 강원에서 나이에 안 어울리는 노련함을 보여준 양민혁이 손흥민의 대체자로 토트넘 홋스퍼로 갔으며, 대전의 윤도영도 브라이튼 호브 앤 알비온으로 갔다.


하지만 필자는 이 선수에게 기대를 걸고있다. 스토크 시티의 ‘배준호’. 대전에서 스토크 시티로 이적한 배준호는 2부리그에서 전전하던 스토크 시티를 강등으로부터 지켜내며 현지팬들로 하여금 “Korean King”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왼쪽 윙에서 주로 뛰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도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준호의 이런 활약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한 팀의 관심을 샀는데, 바로 박지성이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을 따라 입단했던, PSV아인트호벤이다. 연속으로 네덜란드 리그 우승을 한 PSV아인트호벤은 유망주 육성으로도 이름을 날린 구단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지성 외에도, 데니스 베르캄프, 호마리우, 루드 반 니스텔루이, 히바우두, 호나우두, 필립 코쿠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배준호가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한다면, 과연 박지성 그 이상의 선수가 될 수 있을지, 그의 앞날이 어떨지는,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얼마전 프리시즌 기간 몇 팀이 방한하였다. 그 중엔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에디 하우 감독 아래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꽤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한 한국 유망주가 이적을 확정지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유스팀인 매탄 고등학교의 박승수. 2007년생 윙어인 박승수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프로 계약을 하자마자 여러 유럽 구단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김민재가 몸담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 로베르토 데 제르비 감독의 마르세유, 그 외에도 황희찬의 울브스, 조규성, 이한범의 미트윌란 등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축구인들 꿈의 리그, 영국 프리미어리그로의 이적을 원하던 박승수는 뉴캐슬 유나이티드행을 결정 하였다.  


이번 방한에서 박승수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친선전을 치뤘다. 이내 많은 국내팬들이 충격을 받았다. 예상보다도 박승수는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경기 초반부터 그는 특유의 빠른 발과 폭발적인 돌파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흔들었다. 특히 후반 15분경,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뒤 단번에 속도를 올리며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는데, 이는 동료 공격수의 헤더 슈팅으로 연결되며 관중석에서 큰 환호를 이끌어냈다. 비록 골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의 플레이는 “차세대 손흥민”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뉴캐슬의 에디 하우 감독도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박승수는 아직 어린 선수지만, 매우 영리하고 두려움이 없다. 전술 이해도와 속도,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을 만드는 능력이 인상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발언 이후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박승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박승수의 잠재력은 단순히 개인 기술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경기 내내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압박, 그리고 빠른 전환 플레이로 팀 전술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성향은 손흥민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와 닮아있다. 프리시즌 이후, 뉴캐슬은 박승수를 1군 스쿼드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방한 구단 중 가장 유명한 FC바르셀로나도 한국 선수들과 연이 조금 있다. 바로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 이다. 이 셋은 옛날 한국의 유망주라 각광 받으며 바르셀로나의 유스 아카데미인 라 마시아에서 훈련하였다. 그 중 이승우는 유스 경기에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리오넬 메시의 기록을 전부 갈아치우며 ‘코리안 메시’라고도 불렸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아카데미 라 파브리카의 마르틴 외데고르, 현 아스날 미드필더와 함께 최고의 유망주 2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앞길을 막은 것은 다름아닌 FIFA. FIFA는 18세 미만 유소년 보호조항을 어겼다는 이유로 바르셀로나에 징계를 내렸고, 이승우를 포함해 백승호와 장결희마저도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식 경기를 일절 뛰지 못 하게 하는 징계를 내렸다. 여기엔 많은 논란이 있지만 당시 이 셋은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징계 대상이 맞긴 하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FIFA에 밀고한 것이 누군지에 대한 것은 여러 말이 나오지만 최근 ‘한국인’들이 밀고한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는 세계 최고의 유스 아카데미로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 세르히오 부스케츠, 마우로 이카르디 등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그런 라 마시아에 한국인 쌍둥이 이대한 이민국 형제가 입단하였다. 고작 14세에 불과한 대한, 민국 형제는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팀인 에스파뇰의 유스 아카데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바르셀로나의 레이더에 잡히게 되었다. 이민국은 오른쪽 풀백으로써 정확한 크로스가 장점이다. 이대한은 원래 풀백이였지만 윙어로도 뛰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한국 축구는 손흥민이 남긴 거대한 발자취를 이어받을 차세대 스타들을 맞이하고 있다. 박승수, 배준호, 양민혁, 엄지성, 윤도영 등은 각자의 리그와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들이 향후 10년간 한국 축구의 주역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손흥민의 은퇴가 다가올수록, 그가 이뤄놓은 유산은 단순한 개인 커리어를 넘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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