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人 나라의 풍경

벌은 모여 살고 나비는 혼자 녹슨 철길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노인나라 풍경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사년 전 노인 나라로 이민을 왔다. 바닷가의 실버타운은 적막함과 완만한 죽음이 고여있었다. 그곳 시민인 구십 세를 넘은 노인은 저승 가는 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둠이 오기 직전 찰나의 황금빛 노을을 즐긴다고 했다. 늙은 어린아이도 많았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있다. 실버타운에 이년 살다가 해변가 집을 구해 이사했다.

벌은 모여 살고 나비는 혼자 녹슨 철길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사람도 벌과 나비처럼 성향이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내가 ‘옥계 신선’이라고 별명을 붙인 심 선생과 바닷가를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팔십대 중반이 되니까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 못 하게 될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종착역이 가까워 오면 기차가 속도를 줄이듯 생활의 속도도 줄이고 있어요. 친구들이나 자식은 나보고 늙고 몸도 아픈데 왜 큰 병원이 가까운 서울에 있지 않고 바닷가에서 사느냐고 물어요. 그렇지만 순간순간 색깔이 바뀌고 다양한 파도 소리를 내는 저 바다를 보세요. 얼마나 좋아요.”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참 실버타운의 김 박사님을 보면 걱정이 돼요. 저보다 한 살 많은데 작년에 뇌경색이 와서 몸이 불편하잖아요? 얼마 살지 못할 거 같아요. 그런데도 돈을 엄청 아끼는 거예요. 거의 쓰지 않아요.”

김 박사라는 노인은 젊은 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평생 교수로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식도 없었다. 심 선생이 걱정을 늘어놓았다.

“김 박사님이 잘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할 텐데 돈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싸구려 햄버거를 사 먹으면서 좋다고 하더라구요. 나보고 휴게소의 설렁탕이 좋다고 먹으러 가자고 하는데 안 갔어요. 훨씬 좋은 맛집들이 많은데 말이죠. 음식을 같이 먹어도 꼭 엔분의 일로 나누어 내자고 합니다.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우리들과는 정서가 맞지 않죠. 성실한 김 박사님은 월급을 쓰지 않고 또박또박 모아 제법 큰 돈이 된 것 같아요. 그 돈을 주식이나 채권 같은 걸 사서 관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돈을 쓸 시간이 없는데도 너무 아끼는 거예요. 상속할 자식도 없는 분이 말이죠.”

“돈을 좀 쓰라고 충고를 하시죠.”

“말해 줬죠. 그랬더니 그 돈을 다 썼는데 그때까지도 살아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예요. 내 생각으로는 김 박사나 나나 둘 다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죠. 이삼 년쯤 남았다고 할까. 그런데 김 박사는 백 살 너머까지 살 걸로 착각하는 거예요. 산다고 해도 나이 90이 넘어봐요.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삶이면 돈이 의미가 없죠. 내가 은행원을 할 때 보면 수십억을 예금해 놓고도 그냥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구요.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팔아 자식들에게 줄 돈을 미리 주고 필요한 생활비만 가지고 바닷가 마을로 왔어요. 시골로 내려오니까 정작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궁하지도 않아요. 며칠 전 아이들과 손자들이 내려왔을 때 좋은 음식을 사줬죠.”

그 말을 들으니까 얼마 전 죽은 친구 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친구 부부는 둘 다 금융기관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함께 일했다. 착실하게 저축을 했다. 한번은 그 집을 놀러갔더니 부인이 이런 하소연을 했다.

“이제는 돈을 좀 쓰자고 했더니 남편은 비오는 날을 대비해서 그래도 참자고 해요. 남편은 돈을 쓴다는 걸 모르게 됐어요. 말 좀 해주세요.”

그때부터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그 부인이 갑자기 암으로 죽었다. 친구가 엄청 울었다.

노인이 된 내가 직접 노인 나라로 들어와 본 풍경들이다. 이런 걸 젊은 나라 사람들이 알까. 젊은 시절 분주하게 살던 나는 노인이 된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었다. 젊음이 영원할 걸로 알았다. 내 뜻이 가득하고 욕망이 들끓었다. 그 젊음이 어느 날부터인가 증발해 없어져 버린 것 같다. 내가 보는 노인 나라 풍경을 젊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라도 알려주고 싶다. 요즈음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선물 받은 것 같아 감사한다. 순간순간을 밀도 있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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