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그 얼굴을 가리고 읽을까>
간혹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신문 지면은 귀하고 비싼 건데 잘 알려진 사람의 얼굴을 구태여 실을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다. 익숙한 얼굴이더라도 박정희 각하와 같은 정인군자거나 본받을 만한 사람의 얼굴은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배움이 있으니 실을수록 좋지만,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의 얼굴,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의 얼굴, 행실만이 아니라 보아서 더러운 감정이 이는 얼굴 사진을 왜 그 사람에 관한 기사마다에 같이 싣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여 얼굴이 곱게 생겼으면 또 모를까, 얼굴에서 무어랄까 혐오감도 아니고, 구역질도 아니고, 증오심도 아닌 그런 복합적 감정이 왈칵 솟아오르는 생김새다면 많은 이들이 그 얼굴을 외면할 것이다. 그런데도 신문은 관련 기사마다 빠뜨리지 않고 얼굴 사진을 싣는다. 기사만으로도 누구인지 다 아는 데도 보기에 괴로운 얼굴까지 싣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도 참 못 생긴 사람이지만 여자나 남자나 못 생긴 얼굴은 괜찮다. 못 생긴 얼굴은, 보는 사람이 그냥 못생겼는갑다 하고 만다. 그러나 이상하게 마주 보기 싫은 얼굴이 있고 때론 소름이 돋거나 저절로 눈길을 닫아버리는 얼굴이 있다. 차라리 험악한 얼굴이다면 그래서 외면한다는 이유라도 되지만 험악하지도 않으면서 보는 데에 인내심이 필요한 그런 얼굴이 없지 않다. 그런 자가 자기 얼굴과 같은 더러운 짓을 했을 땐 더욱 저절로 외면된다. 그런데도 신문은 아까운 지면을 그 사람 얼굴로 채운다. 차라리 그 자리에 고운 글 하나라도 싣는 게 낫지 않을까?
요사이는 어떠한지 모르지만. 우리 어릴 때의 교과서에는 애국자. 영웅, 선인들의 얼굴만 실렸었지 범죄자. 매국노, 악인 등의 사진은 일체 없었다. 이와 같이 본받아야 할 사람의 얼굴을 싣는 것은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백 마디의 말보다 교육적 효과가 높을 수 있다. 신문도 그렇게 하면 안 되겠는가.
오늘도 신문을 열자마자 그 여자의 얼굴 사진부터 보였다. “x놈과 겸상을 하면 재수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겸상이야 안 하면 그만이지만 신문은 안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그 얼굴을 가리고 읽는다. 가린 때문에 그 자의 기사만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기사도 덩달아 못 읽는다. 꼴보기 싫은 여자는 이런 식으로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갑다.
오늘도 그 여자의 얼굴 사진부터 보였다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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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3, 2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