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韓이 싫었지만 이젠 韓을 위한 변명을

정객은 의리 아닌 정치로 말해야, 전과자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한동훈 정도면 됐다.
잠시 韓이 싫었지만 이젠 韓을 위한 변명을

어제(10.4)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곽상언이 '팩트' 제시 요구하자…한동훈 "뉴저지 아파트값이 팩트"》

미리 준비를 하기라도 한 듯이 무섭도록 재빠른 대답이다. 가만히 보노라면 한동훈의 언변은 빠르기가 번개 같다. 상대가 질문을 마치자마자 대답이 총알처럼 튀어나온다. 빠를 뿐 아니라 정곡을 콕 찔러 대답한다. 대답에 그치지 않고 상대가 어버버하게 하는 공격성이 들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말실수가 따르느냐 하면 그러지도 않는다.

그가 법무장관으로 국회서 답변할 때에, 답답했던 국민의 가슴이 뻥 뚫렸었다. 환호하고 박수쳤다. 반면에 민주당엔 말씨름하지 말아야 할 상대로 각인됐다. 이제 한동훈이 국회 증인이 아닌 자기들과 같은 의원이니 민주당은 그와 맞서기를 더욱 꺼리는 듯해 보인다. “말로 싸워서 이길 순 없다.”는 명제가 한동훈에겐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한동훈의 저런 재능은 타고난 자질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이 어찌 아직 남아 있겠으며 그의 이름이 어떻게 지워지지 않고 도리어 빛나겠나. 같은 배신자 소리를 듣는 김무성처럼 일찌감치 국민의 기억에서 아득해졌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교제상의 ’의리‘ 하나 때문에 배신자 소리를 듣는 현실이니 관조자인 나도 입맛이 쓰다. 사람은 모두를 잘할 수 없다.

이덕무는, “뿔이 있는 짐승은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소를 타는 사람은 비로소 천명을 안다.(角者無齒 騎牛始命)”고 했다.

저런 측면에서 보면, ‘배신자’면 또 어떻고,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나. 정치판에선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인간과 정치를 한 묶음으로 볼 필요도 없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없듯이 재주 좋고 덕성 높은 사람은 정치판에 없다. 교회나 절간에 있다.

정치인이 도덕군자여야 한다면 이재명은 대통령이 아니라 도지사도 하지 말아야 했다. 만약 재주와 덕성 중 택일하게 되면 너나없이 재주를 선택할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바탕으로서 어쩔 수 없는 심정의 발로(發露) 아니겠는가. 비판만 받기에는 한동훈의 재주가 아까워서 하는 소리다. 정약용은 ‘집을 그리는 칠십운. 혜장에게 부치다’란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맑은 옥이기에 하자가 잘 보이는 것이지(瑩玉易見瑕)
흙탕물이야 누가 안 맑다고 뭐랄 것인가(泥水勿責澄)

자치통감은 재주가 덕을 넘어서면 안된다(才勝德)고 가르친다. 원문은 이렇다.

“재주와 덕을 모두 갖춘 사람을 성인이라 하고, 재주가 덕보다 뛰어난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한다.”

옛날에도 재주와 덕을 두루 갖춘 성인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황벽(荒僻) 시골에 은둔하여 오로지 자연을 벗삼았다. 하물며 오늘날의 세상에 성인이 몇이나 되며 소인은 하고많겠나. 소인을 멀리하자면 하루도 못사는 세상이다. 지금의 정치인 모두를 다 멀리하자면 그들은 국회가 아니라 낚시터에 가야 한다. 현대 서양 문화권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은 이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You can’t have it all).”

우리가 익히 아는 조조(曹操)는 천하 악질이었다. 자기를 대접해 주려는 여백사 가족을 몰살했고, 뒤늦게 오인했음을 깨달아 도망치면서도 시장에서 돌아오던 여백사마저 입막음하기 위해 죽였다. 반면에 정치는 빼어나게 잘했다. 오직 능력만 보고 인재를 등용하는 ‘구현령(求賢令)을 발표했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백성을 위해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했으며 이윽고 삼국 중 가장 강력한 위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장거정(張居正)은 망해가던 명나라의 수명을 200년 연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재상이었다. 그는 권력을 쥐자마자 사치와 향락을 누렸다. 그가 타고 다닌 가마는 32명의 가마꾼이 메는 거대한 가마였다. 내부에 침실, 화장실, 접견실까지 갖춘 움직이는 호화 주택이었다. 그는 “의리에 어두웠기에 인륜을 해치고 의리를 범하는 일을 저지르며 기복출사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백성을 위한 정치만큼은 똑 부러지게 했음을 역사가 인정한다. (기복출사 起復出仕;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임에도 어버이의 상중에 벼슬자리에 나아감)

그는 재정이 파탄 난 명나라를 살리기 위해 일조편법(一條鞭法)을 만들어 세제 개혁을 단행했다. 관료들의 중간 착복을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뇌물 관료를 퇴출하기 위해 고성법(考成法)을 시행하여 그가 집권한 지 10년 만에 명나라 국고에는 10년치 백성의 식량과 은(銀)을 쌓아 놓아 국가가 다시 일어서게 하였다.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 정객은 의리가 아닌 정치로 말해야 한다. 정치인은 우선 정치부터 잘해야 하고, 야당은 대여 투쟁부터 잘해야 한다. 한동훈의 투쟁성은 이미 검증됐다.

지난 한때엔 26~27살이 결혼 적령기였다. 28살이 넘으면 노총각 소리를 들었고 30살이 되면 장가가기가 힘들었다. 내가 26살 무렵 부모나 동네 어른들에게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맞선을 보고서 상대가 절반만 마음에 들면 결혼하는 게 낫다.”

평생의 반려자를 고르는 데에도 저러한데, 하물며 전과자가 판치는 정치판에서야 한동훈 정도면 됐다. 의리를 기준 삼고서 싫어만 할 것도 아니다. 그는 한때의 허물을 면치 못함이 있었지만, 한 조각 마음이 있어 우익에 헌신하려는 듯하다.

한동훈에게도 한마디 한다. 재주는 증명됐으니 이제 인품을 닦아야 세상에 더 쓰인다. 재주가 화려한 옷이라면, 덕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체온이자 인품이다. 배도 뒤에서 밀어주어야 가듯이, 인품이 밀어주어야 재주도 제값을 하게 된다. 내 말솜씨의 속도가 내 마음의 깊이보다 너무 앞서가고 있지 않은지 잘 살펴 유지경성 하시길.

(유지경성 有志竟成;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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