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乙)’로 살아가는 서민 부부

"같이 입사한 판매직원들 대부분이 저질 고객의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갔는데 저는 끝까지 버텼어요."
변두리의 연립주택이 꽉 들어찬 골목 안 열 평 정도의 집에서 그 부부는 열 살짜리 딸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남편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 포클레인 기사로 일했고 아내는 오랫동안 강남의 유명백화점에서 판매사원을 해 왔다. 오늘 한국의 선량한 전형적인 서민 부부에 속한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먹고 살면서 하나 있는 딸이 잘 자라 주는 게 부부의 희망이다.

“오랫동안 포클레인 일을 해 왔는데 어땠어요?”
“인간관계에 시달리지 않고 혼자 일하는 거죠. 그런데 혼자 산 속에 들어가 포클레인을 움직일 때는 쓸쓸하고 외로워요. 그리고 혼자 지하 이십 미터를 파 내려갈 때도 있어요. 땅 속에서 손바닥만하게 작아진 하늘을 보는 거죠. 다시 세상으로 못 올라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어요.”

외로운 직업이다. 예전에 변호사로 상담을 하면서 대형 크레인을 조작하는 기사의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높은 공중에 있는 작은 유리통 안에 갇혀 있는 새 같이 혼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너무 외롭다고 했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공군사관학교를 나오고 전투기 조종을 하는 젊은 장교였다. 어두운 밤 하늘을 혼자 비행기를 몰고 가다보면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땅인지 모르겠더라고 했다. 구름 속에서 혼자 있으면 무섭고 외로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파일럿을 그만두었다고 내게 말했었다. 먹고 산다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넘쳐흐르는 화려한 백화점 매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포클레인 기사 부인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백화점의 전기제품 판매부에서 이십 년을 견뎠다고 표현했다. 매장에 있으면 질 나쁜 고객들과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고 한다. 구입한 텔레비전에 일부러 흠을 만들어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트집을 잡으면 새 걸로 바꿔주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종류가 있다고 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질 나쁜 고객들은 전화로 쌍욕부터 시작해요. 어떤 여자는 너 머리 다 뜯어놓을 테니까 기다려 한 적이 있어요. 이 직업도 오래하니까 유들유들해져요. 그럴 때 ‘고객님 조심해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죠. 실제로 머리를 뜯긴 적도 있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적도 있어요. 우리 판매원들은 돈을 낸 그 사람들의 스트레스 해소 대상인 거예요. 사흘 후에 구입한 상품을 배송해 주겠다는 설명을 듣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도 바로 보내주지 않는다고 전화를 걸어서 짜증을 내고 욕을 하는 고객도 있어요. 그런데 대꾸하면 판매원 노릇은 아예 불가능하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런 세상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짓들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졸부들이 많아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 라벨이 붙은 것들로 치장하고 와요. 자기들의 재력을 알아달라는 거죠. 그런데 막상 흥정이 붙으면 턱없이 깎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좋은 부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거예요. 같이 입사한 판매직원들 대부분이 저질 고객의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갔는데 저는 끝까지 버텼어요. 먹고 살려고 하는 게 절실한데 못 견딜 게 없죠. 제가 머리를 뜯기고도 가만히 있으니까 미안했던지 그 다음에 다른 손님을 데리고 와서 물건을 소개하는데 저와 아주 친한 척 어깨를 툭툭 치는 거예요. 저는 이제 어떤 고객이 오든지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이 영업직이 좋아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어려웠던 시절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게 염원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계에서 10위권에 드는 수출대국이 됐다. 잘 살게 됐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게 뭘까. 조금 돈이 더 있다는 걸로 허영에 들뜨고 과시하고 남을 무시하는 삶일까. 잘 살아보자는 구호의 내용물은 무엇이었을까. 외형적으로 모든 국민이 작은 집에 승용차를 가지는 중산층이 되는 것이었다. 그 영혼에는 무엇이 들어 있어야 하는지는 후순위로 밀렸었다. 백화점 영업사원을 오랫동안 한 젊은 엄마는 험한 갑질 속에서 삶에의 통찰력을 얻은 것 같았다. 그게 훨씬 돈보다 값진 선물을 받은 건 아닐까.


[출처] 을로 살아가는 서민부부|작성자 엄상익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 정답과오답 2017-10-24 오후 3:39

    솔직히 말해 국민 반이상 개새끼 같아 보입니다
    수준이 거의 사람 같지 않다는..
    온통 거짓과 저질 속고 속이는 대한민국...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