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이 외는 詩(월간조선 발간 [한국의 名文]에서)
문장을 쓴다는 것이 레이몽 크노의 詩처럼 ‘한 개나 두 개의 낱말을 집어 계란 삶듯 삶는’ 그런 단순한 기술만은 아니다.
한국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내가 한국 근대소설을 텍스트로 삼아 佛語(불어)로 박사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기까지, 어쨋든 나는 늘 佛語 쓰기에 많은 고초를 겪어 왔다. 기껏 애를 먹고 쓴 논문의 문장들을 同語(동어)반복이 많다며 교수는 김매듯이 무자비하게 솎아내는 적이 많았다. 한국 학생들의 문장은 대체로 논리적이지 못하며 반복이 심하고 思考(사고)가 독창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자주 했다. 그렇다면 저들 문장의 ‘논리적’이고 ‘독창적’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중학교 과정부터는 물론 대입학력고사에 主과목으로 철학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나라, 四肢選多(사지선다)형 시험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세계문학을 주도하는 찬란한 文學史(문학사)를 가진 나라.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 숨만 쉰다고 모두 철학자나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알고 보면 그들의 문장 수업은 자연스럽게, 그러나 철저하게 早期(조기)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리에 나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먹은 프랑스 아이를 아무나 붙들고 詩 한 수를 읊으라 그래 보라.
아직 佛語 문장을 쓸 줄도 모르는 초등학교 1, 2학년생의 입에서 文學史에 빛나는 시인의 詩를 듣기는 어렵지 않다.
프랑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 佛語를 쓸 줄도 모르는 딸애도 詩를 외워가야만 했다. 그것이 유일한 숙제였다. ‘포에지(시)’ 노트엔 선생님이 詩를 복사한 걸 노트 왼편에 붙이고, 오른쪽 흰 여백엔 아이가 詩의 이미지를 포착해 정성껏 그림을 그려넣었다. 겨우 만 여섯 살이 넘은 딸애는 노트를 나에게 맡기고 작은 입으로 詩를 暗誦(암송)했다. 눈을 감기도 했고 선생님이 감정을 넣어 읽던 걸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詩 암송은 5년간의 초등학교 과정 내내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동안 기라성 같은 시인들의 詩들이 딸의 입에서 무수히 흘러나왔고, 또 가슴을 적시고 갔다. 위고, 베를렌느, 모리스 카렘, 랭보, 모파상, 발레리, 아폴리네르, 프레베르, 레이몽 크노, 데스노스….
비유나 표현 자체도 독창적이고 아름답지만 脚韻(각운)을 맞추는 절제된 형식을 통해 더욱 더 풍부한 언어감각을 훈련시키기에는 詩 암송이야말로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오는 가을 저녁, 베를렌느의 ‘가을’이나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같은 詩를 어린 딸의 입을 통해 듣노라면 감개가 무량해지곤 하였다.
母國語에 대한 애정
詩 암송 외에도 ‘작문’이라는 정확하고 논리적인 표현력을 훈련시키는 과목도 인상적이었다. 문법 공부와는 별도로 중간에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문장의 인과관계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詩를 통해 배운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언어표현과 철학적 사고로 무장된 논리보다 나를 더 감동시키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母國語(모국어)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 定着(정착) 초기에 급한 편지 쓸 일이 있으면 나는 동네 푸줏간 주인인 제르맹씨에게 부탁하곤 했다(프랑스에선 모든 업무를 서신을 통해 하는 경우가 많다.) 한두 번 써주더니 아예 사전까지 가게에다 갖다놓았다. 나는 그가 고기를 썰던 크고 뭉툭한 손으로 볼펜을 들고 꾹꾹 눌러 불어 문장을 쓰는 걸 보면 공연이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그는 집을 짓듯 한 문장 한 문장을 써내려가고는 혹시 쓸데없는 말, 되풀이되는 말, 적합하지 않은 단어가 없나, 또 문장들끼리 아름답게 조화가 되는지 새 문장을 쓸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내려가곤 했다. 그는 일반 사전 외에도 同義語(동의어)사전도 가지고 있었다. 그건 그가 무식해서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작문은 수준급이었다.
이런 작문의 태도는 그 후 내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 대부분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다. 詩人이 아니어도 작가가 아니어도, 푸줏간 주인도 청소부도 편지 하나를 쓰기 위해 동의어사전을 뒤적거리며 고심을 한다.
고기 중에 가장 맛있는 살점을 떼내듯이, 쓸고 또 닦아내어 말갛게 속이 보일 때까지 그들이 문장을 고르는 걸 보면 프랑스 문학과 예술의 위대함을 낳은 것은 결코 위대한 예술가들의 재능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제르맹씨의 모습 속엔 詩를 외던 소년이 항상 살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장교육을 생각할 때마다 詩畵(시화)가 그려진 詩 노트를 살짝 접고 꿈꾸듯 詩를 암송하던 딸애의 모습이 떠오른다.(2006년 1월9일)
프랑스의 문장 교육
- 권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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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29, 1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