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注: 이 글은 작자가 평남 성천에서 여름 한 달 가량 머문 뒤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문에 연재(1935년 9월27일~10월11일)한 것이다. 원문은 문학사상에서 나온 ‘이상문학전집 3’ 1998년 판을 사용했다. 李御寧씨 추천.
향기로운 MJB의 미각을 잊어버린 지도 20여 일이나 됩니다. 이곳에는 신문도 잘 아니 오고 遞傳夫(체전부)는 이따금 ‘하도롱’빛 소식을 가져옵니다. 거기는 누에고치와 옥수수의 사연이 적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일가 때문에 愁心(수심)이 생겼나 봅니다. 나도 都會(도회)에 남기고 온 일이 걱정이 됩니다.
건너편 팔봉산에는 노루와 멧도야지가 있답니다. 그리고 祈雨祭(기우제) 지내던 개골창까지 내려와서 가재를 잡아먹는 ‘곰’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밖에 볼 수 없는 짐승, 산에 있는 짐승들을 사로 잡아다가 동물원에 갖다 가둔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짐승들을 이런 산에다 내어 놓아준 것만 같은 착각을 자꾸만 느낍니다. 밤이 되면 달도 없는 그믐 漆夜(칠야)에 팔봉산도 사람이 寢所(침소)로 들어가듯이 어둠 속으로 아주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공기는 수정처럼 맑아서 별빛만으로라도 넉넉히 좋아하는 ‘누가’복음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참 별이 도회에서 보다 갑절이나 더 많이 나옵니다. 하도 조용한 것이 처음으로 별들의 운행하는 기척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객주집 방에는 석유등잔을 켜 놓습니다. 그 도회지의 夕刊(석간)과 같은 그윽한 내음새가 소년시대의 꿈을 부릅니다. 鄭형! 그런 석유등잔 밑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호까(연초갑지)’ 붙이던 생각이 납니다. 벼쨍이가 한 마리 등잔에 올라앉아서 그 연두빛 색채로 혼곤한 내 꿈에 마치 영어 ‘티’자를 쓰고 건너 긋듯이 類(유)다른 기억에다는 군데군데 ‘언더라인’을 하여 놓습니다. 슬퍼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도회의 여차장이 차표 찍는 소리 같은 그 聲樂(성악)을 가만히 듣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또 이발소 가위 소리와도 같아집니다. 나는 눈까지 감고 가만히 또 자세히 들어봅니다.
그리고 비망록을 꺼내어 머루빛 잉크로 산촌의 詩情(시정)을 기초합니다.
그저께신문을찢어버린
때묻은흰나비
봉선화는아름다운애인의귀처럼생기고
귀에보이는지난날의기사
얼마 있으면 목이 마릅니다. 자리물-深海(심해)처럼 가라앉은 냉수를 마십니다. 石英質 鑛石(석영질 광석) 내음새가 나면서 폐부에 寒暖計(한난계) 같은 길을 느낍니다. 나는 백지 위에 그 싸늘한 곡선을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靑石(청석) 얹은 지붕에 별빛이 나려쪼이면 한겨울에 장독 터지는 것같은 소리가 납니다. 벌레 소리가 요란합니다. 가을이 이런 시간에 엽서 한 장에 적을 만큼씩 오는 까닭입니다. 이런 때 참 무슨 才操(재조)로 光陰(광음)을 헤아리겠습니까? 맥박 소리가 이 방 안을 房째 시계로 만들어 버리고 長針(장침)과 短針(단침)의 나사못이 돌아가느라고 양짝 눈이 번갈아 간질간질합니다. 코로 기계 기름 내음새가 드나듭니다. 석유등잔 밑에서 졸음이 오는 기분입니다.
‘파라마운트’ 회사 상표처럼 생긴 도회 소녀가 나오는 꿈을 조곰 꿉니다. 그러다가 어느 도회에 남겨 두고 온 가난한 식구들을 꿈에 봅니다. 그들은 포로들의 사진처럼 나란히 늘어섭니다. 그리고 내게 걱정을 시킵니다. 그러면 그만 잠이 깨어 버립니다.
죽어 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여 봅니다. 壁(벽) 못에 걸린 다 해어진 내 저고리를 쳐다봅니다. 西道千里(서도천리)를 나를 따라 여기 와 있습니다그려!
名文 시리즈 / 山村餘情(1)
- 李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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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12, 10: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