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文 시리즈/헐려짓는 光化門

너는 그 자리 그 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方向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친 것이다.
편집자 注: 이 글은 동아일보 1926년 8월 11일자에 쓴 사설이다. 정진석씨 추천.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廳舍(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총독부’ 정책 德澤(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은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意識(의식) 없는 물건이요, 말 없는 건물이라,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反抗(반항)도 回避(회피)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 할 뿐이다. 오랫동안 風雨(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石工(석공)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앎이 없으리라마는, 뚝닥닥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 아파하며, 役軍(역군)의 둔장이 네 허리를 들출 때에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 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 질려할 것을 네가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팔도 강산의 石材(석재)와 木材(목재)·人材(인재)의 精粹(정수)를 뽑아 지은 光化門(광화문)아! 돌덩이 한 개 옮기기에 억만 방울의 피가 흐르고, 기왓장 한 개 덮기에 억만 줄기의 눈물이 흘렀던 光化門아! 靑苔(청태) 끼인 돌 틈에 이 흔적이 남아 있고, 풍우 맞은 기둥에 그 자취가 어렸다 하면, 너는 옛 모양 그대로 있어야 네 생명이 있으며, 너는 그 身勢(신세) 그대로 무너져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풍우 몇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逆賊(역적)도 드나들며, 守舊黨(수구당)도 드나들고, 開化黨(개화당)도 드나들던 光化門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殺伐(살벌)의 銃劍(총검)도 지나며, 日露의 使節도 지나고, 청국의 國賓도 지나던 光化門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天職이며, 그 길을 引導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天命이었다 하면, 너는 그 자리 그 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方向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친 것이다.
너의 천명과 너의 천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이었거니와, 너의 생명과 너의 일생은 헐리는 그 순간에, 옮기는 그 刹那(찰나)에 마지막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너의 마지막 운명을 우리는 알되 너는 모르니, 모르는 너는 모르고 지내려니와 아는 우리는 어떻게 지내랴?
‘총독부’에서 헐기는 헐되, ‘총독부’에서 다시 지어놓는다 한다. 그러나 다시 짓는 그 사람은 상투 짠 옛날 그 사람이 아니며, 다시 짓는 그 솜씨는 雄健(웅건)한 옛날의 그 솜씨가 아니다. 하물며, 이 때 이 사람의 감정과 기분과 理想(이상)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다시 옮기는 그곳은 북악을 등진 옛날의 그 곳이 아니며, 다시 옮기는 그 方向(방향)은 景福宮(경복궁)을 정면으로 한 옛날의 그 方向이 아니다.
서로 보지도 못한 지가 벌써 수녀이나 된 경복궁 옛 大闕(대궐)에는 長霖(장림)에 남은 궂은비가 오락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 하는 망치 소리는 長安(장안)을 거쳐 北嶽(북악)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닯아 하는 白衣人의 가슴에도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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