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注: 이 글은 1963년 3월 1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설이다. 정진석씨 추천.
현역군인 수십 명이 최고회의로 몰려들어 ‘데모’를 했다 한다. 동기나 이유를 따질 겨를이 없이 명색 공화국에서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국방장관을 위시해서 3군참모총장과 해병대총사령관이 국민 앞에 엄숙히 ‘군의 정치적 중립’을 宣誓(선서)한 것이 바로 16일 전의 일이다. 그런 선서가 없었다고 한들, 군인이 정치에 관여를 해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를 고금의 역사가 昭然(소연)히 가르쳐 주고 있는 바이다.
하물며 5·16 혁명으로 軍이 통치를 하고 있는 이 마당에 그 혁명정부의 예하에 있는 젊은 장교들이 떼를 지어 統帥系統(통수계통)을 紊亂(문란)하고 정치적 행동을 내걸어 행동한다는 것도 下剋上(하극상)의 기풍이 그 극에 달했다고 해도 잘못이 아니요, 군율을 무시함이 이에 더할 바 없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에 가담한 수효가 기 10명에 불과하나, 사려가 미숙한 혈기에서 온 소치라 할지라도 군인된 본령을 망각한 이들의 思考基底(사고기저)가 벌써 국가의 화근이니 국민된 자, 秋毫(추호)의 동정이 있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猥濫(외람)하게도 “이 나라 정치정세를 좌시방관할 수 없어 全국민의 이름으로” 운운하여 국민의 의사를 僭稱(참칭)했다. 우방의 막대한 원조로써 현대무기를 장비했고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으로 국방비를 부담하면서 막강 60만의 대군을 擁(옹)하고 있는 소이는 155리 전선을 지켜 외적에서부터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 재산을 수호하라고 한 것이지 절대로 그들이 정치에 관여라하고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정치에 눈을 떴거든 군복을 벗고 정치운동으로 나서라. 왜 비겁하게도 신성한 군복을 걸치고, 무기를 지닌 특권을 향유한 채 군율을 어기고 국법을 짓밟고, 국민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는가. 그들은 6개 항목의 건의사항을 내세워 ‘憂國衷情(우국충정)’ 이라는 自家陶醉(자가도취)를 자행했다. 하나하나 비판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지만, 혹 일부 군인이나마 그런 倒錯(도착)된 사고방식에 오염되었다면 이야말로 큰 일이기에 지금 그 잘못을 깨우쳐 놓아야 하겠다.
첫째 “…현정부를 전복하고자 음모한 민족배반자인 쿠데타 분자들은 그 직의 고하를 불문하고 嚴重索出(엄중색출), 극형에 처함으로써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정부의 권위를 확립하라.”고 했다.
당연한 주장같지만 하급군인들이 새삼스럽게 그런 구호로 데모를 하지 않더라도 혁명정부는 국가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행동으로 표시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들은 이에 발각된 그런 음모사건의 처단에 정부를 태산같이 믿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중이며, 오히려 철없는 군인들의 이번과 같은 망동이야말로 더 할 수 없이 ‘공포에 떨게’하는 혼란과 불안의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볼 때 自家撞着(자가당착)도 類萬不同(유만부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둘째,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했다. 대관절 계엄의 본질을 알고 하는 소리인가. 계엄령은 일반행정력으로써 도저히 국가치안을 유지할 수 없을 때 군대의 일사불란의한 명령계통과 무력을 동원하여 3권을 장악하고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수단인 것이다. 일반 국민은 눈이 빠지도록 질서와 안정을 갈구하고 있는데 반란을 기도한 것은 일부 몰지각한 군인들이요, 또한 이번 데모처럼 상사에 불신을 표시하는 군기문란의 震源(진원)이 다름아닌 그들 자신인데 무엇을 하겠다고 계엄령이 선포되어야 하는가.
셋째로 구태의연한 구정객들의 정치활동을 즉시 중지시킬 것을 요구했다. 무엇이 구태의연이며 어떤 것이 新態(신태)인지 그들의 주장근거를 忖度(촌도)할 수는 없으나 2·27 선서 이후의 정치활동은 국민들이 보기에 憐憫(연민)할 정도로 자숙의 빛이 현저한데 민주주의적 정치양식을 군대의 영내처럼 혼동하는 천박한 견식을 버려야 한다.
넷째, 군정을 연장하거나 朴의장의 민정 참여를 요구한 것은 더욱 불가해하다. 그런 것은 최고통치권자인 朴의장 자신이 국내외 정세를 통찰하여 취할 결단이지, 하급군인이 관여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다섯째, 더욱 강력한 시책을 감행하라는 요구는 ‘우유부단하고 미온적인 시책’을 전제로 하는 주장인데 그렇다면 위의 제4항과는 전연 모순되는 윤리도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섯째,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부득이 최후적인 수단을 講究(강구)할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 이 구절이야말로 다른 어떤 사항보다도 可恐(가공)하고도 전율할 ‘반란의 예비’적 망발이다.
그래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최후적인 수단이라 했으니 실력에 호소한다는 뜻이냐. 반란을 음모한 쿠데타분자를 규탄·극형에 처할 것을 불법데모로써 육박한 그들이 목적은 다르다 할지라도 공공연히 최고통치기관을 향해서 軍의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위협적 언동을 취하는 것은 영락없이 똑같은 ‘반란’의 수단이 아닐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정녕코 이런 소아병적 혈기야말로 국가를 百尺竿頭(백척간두)의 위기로 몰아 넣는 反민주적 군국주의의 濫動(남동)임을 개탄하면서 군법의 추상 같은 발동을 ‘全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히 요구한다. 당국은 이들의 엄단을 발표한 바 있지만, 만의 일이라도 이번 사태와 같은 군대의 부하라 하여 조금이라도 온정이나 撫摩(무마)가 가해진다면 일파만파로 연쇄반응은 그칠 줄을 모를 것을 우리는 沈憂(심우)한다. ‘울며 馬謖(마속)을 斬(참)한’ 제갈공명의 비장한 公心(공심)이 절실히 요청되며, 민주주의 만년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하여서 차제에 軍의 강철 같은 단결과 함께 軍책임자들의 단호한 행동이 있어야 할 줄 안다.
名文시리즈/일부軍人들의 탈선행동에 警告한다
- 崔錫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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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24, 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