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선자인가-레이건을 생각하며

우리 국민 가슴 안에는 한 쇳덩어리가 박혀 있다.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치욕감의 뭉치가 박혀 있다.
한국민은 위선자인가
written by. 박 근(전 유엔대사)

-레이건 대통령을 생각하며-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불렀었다.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성낸 목소리로 외쳤었다. 냉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의 선함과 강함과 再生力을 확신한 지도자였다. 미국에 대한 한없는 자존심과 긍지, 낙관과 자랑을 간직한 채 이승을 떠난 위대한 20세기 정치가였다.

냉전이 해체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1988년 그는 소련을 방문했다. 그가 소련을 '惡의 제국'이라고 매도한 지 불과 5∼6년도 못된 때였다. 심술쟁이 수행 기자들은 소련을 惡의 제국이라고 매도한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그 惡의 제국에 온 기분은 어떤가 하고 집요하게 꼬집었지만 보청기를 낀 레이건은 못 들은 체했다. 드디어 한 기자가 기회를 잡아 바짝 다가서서 큰 소리쳤다.

'대통령, 지금도 당신은 惡의 제국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까?'
'노!'
'왜 아니란 말이요?'
'나는 다른 시대의 다른 때를 이야기 한 것이지요.'

1987년에 고르바쵸프가 백악관 회담에서 레이건에게 소련의 개혁정책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이리 저리 간섭만 아니하면 만사 잘 진행 될 것이라고 하자, 레이건은 긴 농담으로 대답했다.

'한 대학교수가 미국학생을 보고 너는 장래 뭣을 할 생각인가 하고 물었더니, '글쎄 모르겠어요. 아직 내가 결정 못하고 있어요' 라고 했다. 옆에 있던 소련학생에게 너는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글쎄, 아직 지시를 받지 않았기에 나도 몰라요'..'

고르비와 친해지면서 미국 언론들에 대한 불만이 화제로 떠오르자 레이건은 린든 죤슨 대통령의 농담을 되풀이했다. '내가 포토맥 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가면 언론들은 대통령이 헤엄을 못 한다고 대서특필 할 것이요.'
레이건이 취임 후 몇 달 안되어 총격을 당해 피를 토하며 응급실 수술대에 누웠을 때 수술하러 온 의사를 향해 '당신은 공화당이겠지요?' 했다. 그 의사는 웃지도 않고 '오늘은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화답했었다. 그는 많은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온 몸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기자들이 물으면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고 정면으로 부인하기로 약속하고 크레믈린宮에서 고르비에게 소련에 종교의 자유를 주라고 권고하였다. 고르비가 자기는 무신론자라고 하고, 소련에는 믿는 자유도 있고 안 믿는 자유도 있다고 강변하면서 미국에서는 무신론자를 비난하지 않느냐고 반박하였다. 레이건은 자기 아들도 무신론자라고 하면서 언젠가는 그 아들에게 최고의 성찬을 베풀어준 다음 '너 지금 요리사가 있다고 믿는가, 없다고 믿는가'하고 물어볼 생각이라고 하였다.

여론 조사에서 레이건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자, 한 기자가 '미국민들이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도 우리 국민을 무척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아마 그들이 그것을 느끼기 때문이겠지요.'하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그에게는 政敵도 악한도 미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 행위를 미워했고 그 사람은 미워하지 않았다. '惡의 제국'의 괴수 고르바쵸프와 끝에 가서는 친구가 되어 冷戰해체를 가속화시킨 비결이 거기에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레이건은 그 누구에게도, 그가 가장 사랑한 아내 낸시에게까지도 그의 마음속을 완전히 드러내주지 않고 외롭게 신비스러운 수수께끼를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레이건이 백악관을 떠난 후 900여권의 전기가 발간되었다.

한국국민은 위선자인가?
거리에 버렸던 고아 토비 도우손이 동계올림픽 모굴스키에서 동메달을 따자 서로 다투어 그가 내 자식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국민···, 미국 스포츠의 영웅 하인스 워드에 한국인 피가 절반이 섞여 있다 해서 그 동안 멸시하고 멀리하던 흑인 혼혈아를 껴안아 입 맞추고 싶어하는 국민···, 이런 국민은 도대체 어떤 국민인가. 이중잣대의 가치관을 안고 사는 위선자일까? 정의로운 피와 비굴하게 보일 만큼 情的인 피가 흐르는 우리 국민의 모순은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국민 가슴 안에는 한 쇳덩어리가 박혀 있다.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치욕감의 뭉치가 박혀 있다. 중국에의 오랜 종속,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 공산주의에 의한 분단과 민족상잔이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비극의 감정은 나날을 즐기고 기뻐하는 우리들 삶의 의식 밑바닥에 지금도 깊이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에도 우리 민족의 3분의 1은 시대착오 속에 살고 있다. 공산독재와 고립과 굶주림 속에 사는 21세기 연민의 대상이다.

세계 어느 국민도 유대인과 팔레스타인族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비견할 수 있는 비극과 수치의 역사를 안고 있지 않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국민은 자기존경과 자존심을 상실한 것이다. 정신적 자폐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과 자존과 긍지를 갈망하는 목마른 사슴이 되어있는 것이다.

긍지에 대한 우리의 갈증은 그 동안 학교 교단의 '단일민족'이니 '白衣민족'이니 하는 신화 등을 통해 풀어 왔다. 우리를 강점한 일본을 지금까지 둘도 없는 악한으로 몰아 부치면서 살아왔다. 종속주의에 안주하며 몇 천명도 채 안 되는 군대밖에 갖지 못한 채 사실상 국방과 안보를 해체해 버린 나라가 조선조의 말기였다. 누구나 와서 능욕하는 벌거벗고 거리에 누워진 나체 여인이었던 것이다. 주변 강대국들의 먹이로 전락한 우리 자신, 중국에 대한 종속주의에 안주하면서 근대화의 기회를 외면한 우리 자신, 이러한 우리의 실패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중국에 대한 종속이 일제의 식민지로, 일제의 식민지가 국토 분단으로, 국토분단이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因果(인과)의 연결고리는 모두 내 탓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치욕과 상처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地政學的 운명과 시대가 나은 숙명인 것이었다.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환성은 이 메마른 우리들의 가슴을 긍지로 펄럭이게 해 주었다. 나 자신도 붉은 악마들의 '대~한 민국'에 눈물 흘렸고 두 주먹 불끈 쥐며 목이 터지도록 함께 외쳤다. 그 소리 지금도 내 가슴 안에 메아리 뜨겁게 친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우리의 환호가 컸었기에 우리의 실망도 크지 않을 수 없다.

동계올림픽에서 종합 7등, 붉은 악마들이 못다 피운 자존과 긍지의 꽃을 다시 피워준 우리 선수들! 사람은 자기 멋대로 살고 국민도 자기 멋으로 존재한다.

오! 우리에게 자존(SELF-ESTEEM)과 긍지를 싫증나도록 안겨다오. 도우손 이여! 워드여! 한국국민에게 자존과 긍지를 안겨준 우리 아들딸들이여! 백인이든 흑인이든, 우리가 버린 고아, 미국 시민, 일본 시민이든 상관없다. 순수한 우리 핏줄이든 섞인 핏줄이든 상관없다. 한국 피만 흐르면 반쪽이어도 좋고 반반 쪽이라도 좋다. 우리에게 자랑과 영광을 안겨 다오! 긍지와 자존을 느끼게 해 다오! 존경과 영광과 긍지의 상징들과 하나가 되어 자존과 긍지를 느끼고 싶은 심정은 아름답고 기특한 자기긍정의 정신이다. 우리 국민은 결코 위선자가 아니다.

지난날 역사시간에 우리가 단일민족임을 자랑한 이유는 그 시대에 맞는 교육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도 그것이 마치 어떤 자랑감이 되는 듯이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면 그의 정신적 고향은 고비사막이고 그런 내용을 실은 교과서의 책장은 휴지통이다. 이미 세계는 하나로 가는 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우리 국민에게는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자랑이 있다. 오직 북한만이 우리 민족을 창피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북한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줄 우리의 영웅은 어디서 생각에 잠겨 있는가! 언제 생각에서 깨어나 두 주먹을 쥘 것인가.

레이건이 살아있다면 오늘날 우리 국민을 위선자라고는 하지 않을 줄 믿으면서 그를 그리게 된다. (konas)

朴 槿(한미우호협회 회장, 前 UN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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