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외삼촌이 단돈 몇 푼을 탐내어 조카를 유괴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수십 년이 지나 趙甲濟(조갑제) 기자가 이 사건을 추적해 진실을 낱낱이 밝힌 글을 읽은 날은, 하루 종일 유령이 어둠 속을 떠도는 것 같았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어린이 시체가 담긴 박스를 두고 범인이 경찰 눈앞에서 도망쳤다. 김금식은 폭행죄로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이 사건을 언론 보도로 접했다. 김금식은 자신이 더 많이 맞았는데 전과자라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온 데 대한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찰, 검찰, 법원에 복수하기 위한 그의 극본에 놀아난 검찰은 ‘공범’ 배역에 김기철, 살해당한 어린이의 외삼촌과 정대범을 집어넣었다.
김금식의 친구 김기철은 ‘착하다’는 이유 하나로 이 사건에 말려들었다. 최후에 이 연극을 결정적으로 뒤집을 때 ‘사실 우리는 범인이 아니다’고 증명할 만한 善人(선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잡히지 않자 검찰은 아주 작은 단서 하나라도 잡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 사체가 담긴 박스 외에 다른 어떤 단서도 하나 남기지 않은 범인을 놓친 이상, 결국 眞犯(진범)이 누구인지는 神만 알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뜻밖에 이 사건의 범인이 스스로 나타났으니 檢事(검사)로서는 대박이었다. 언론은 일망타진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검사는 김금식이 “친구 김기철과 함께 했다”고 범행을 시인했는데도 김기철이 끝까지 딱 잡아떼자 그에게 자백을 받기 위해 그야말로! 말 그대로!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두들겨 패고 잠을 안 재웠다. 김기철이 조사를 빙자한 구타를 당하고 교도소로 돌아와 잠을 잘라치면 다른 죄수들에게 집단 공격이 들어왔다. 그들에게 잠 잘 것을 하소연해도 “널 잠재우면 우리가 두들겨 맞는다”며 패댄 것이다. 김기철은 몰려든 대중의 온갖 비난과 저주 속에서 포승줄에 묶여 하지도 않은 현장검증을 해야 했고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몇 번이나 들어야 했다.
곁에서 고문 당하는 김기철을 봤던 김금식은 후에 조갑제 기자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저렇게 당하면 제 에미하고 붙어먹었지 하고 추궁해도 ‘그렇다’고 대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김기철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병대에 지원했다. 덩치도 좋고 인물도 좋고 바둑은 유단자였다. 어린이가 살해당하던 그 시간, 김기철은 생업터전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물증도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검사는 그 물증을 허위조작으로 몰았고, 오히려 김기철이 김금식, 정대범과 만나 사전 모의하는 것을 보았다는 거짓 증인을 만들어냈다. 감옥에 있을 때는 가족과의 면회도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실마리를 변호사가 물고 늘어졌다. 자신이 어린이를 찔렀다고 벅벅 우겨댔던 정대범은 왼손잡이였는데, 어린이는 오른손잡이에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거기에 결국 김금식의 “지금까지의 진술은 모두 허위 자백이었다. 나는 전과자를 믿어주지 않는 법을 우롱하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 능력을 테스트하려고 했다. 허위 자백은 검찰청 직원이 시키는 대로 맞춰했다”는 폭탄선언으로 ‘범인’들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착한 기철이,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만 알았던 우직한 기철이는 전혀 타협을 하지 않았다. 고문에 굴하지 않았다. 죽어도 굴복할 수 없었다. 죽으면 죽었지 안한 것은 안한 것이었다. 그가 고문에 진작 졌더라면, 일찍 거짓으로 자백했더라면, 그리 모진 세월을 살다가 일찍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문으로 작아졌고 어깨뼈가 내려앉았다. 기철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약 10년 후 결국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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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은 복수와 자존심을 위해 여러 사람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기철의 엄마는 기철이 감옥에 있을 때 화병으로 죽었고, 60대의 기철이 아버지도 기철이 죽자마자 세상을 떴다. 이들은 당하기만 할뿐 저항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난하여 일찍 해병에 지원한 기철이 같은 ‘순덕이’들이 나라를 지키고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국가와 우리 모두는 너무 잔혹하고 지나치게 가혹했다. 그에게 너무도 큰 빚을 지고서도 당연하다는 듯 그 누구도 그를 기억하려들지 않았다. 특히 ‘대한민국 人權(인권)’이라는 이름의 실권자들에게 기철이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내 책상 위의 《김기철氏는 왜 요절했나?》 책 표지에서 기철이는 너무도 순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책의 48페이지에 실린 그는 한쪽으로 완전히 찌그러진 어깨를 하고서도 웃고 있다.
뒤늦게 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