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서면 들리는 목소리

아메바의 세포핵에서 발견되는 정보의 양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 질에 실을 분량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자연, 특히 산과 들에서, 성경 《구약》 ‘욥기’의,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수탉에게 슬기를 주었는지 네가 아느냐?’고 한 구절을 떠올리며 어떤 초월자, 창조주의 목소리 같은 것을 듣게 된다. 몇 가지, 내가 그런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경우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니, 호두를 물고 온 까마귀가 아무리 해도 껍질이 깨지지 않자 차도에 물어다 놓아 지나가는 차 타이어에 깔려 깨지니까 달려가서 알맹이를 물어가고, 또 그렇게 해서 물어가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하찮은 짐승이라지만 사람의 꾀와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셉 캠프벨이라는 심리학자가 한 실험도 한 번 들어 볼만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는 알에서 부화되어 막 껍질 밖으로 나오는 병아리를 향해 독수리 모형을 휙 하고 날려 보냈더니 그 병아리가 깜짝 놀라 껍질 안으로 숨어버리더라 한다. 다음에는 역시 알에서 밖으로 나오려는 병아리에게 비둘기 모형을 날려 보냈더니 그 병아리는 놀래지도, 숨지도 않고 말똥말똥 마주 쳐다보더라 한다. 그 병아리들은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오려던 순간이었으니까 어미닭이 가르쳐 줄 기회도 없었는데 이렇게 부리가 이렇게 생기고 눈매가 이런 날짐승은 위험한 놈이고 또 저렇게 생긴 놈은 괜찮다는 것을 알았을까 -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와 같은 예는 찾으려 하면 수없이 많겠지만, 어쨌든 사정이 그런데 그런 동물들을 어찌 하찮은 미물이라 하겠는가.

식물의 경우도 그렇다. 늦가을 등산로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보면 생긴 모양이 거의 완전 원형에 가깝게 동그랗다. 그것은 어미도토리나무의 자식 장래 생각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도토리 열매가 그 어미나무 부근에서 싹이 터서는 그 나무가 수분이며 양분을 다 앗아가고 또 넓게 덮은 樹冠(수관)에 가려져 햇볕도 못 얻어 쬐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새끼의 모양을 동그랗게 해 떼굴떼굴 굴러 될수록 어미나무에서 멀리 가라고  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또 도토리는 고소한 맛이 나는데 거기에도 그 열매가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싹을 틔우라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런 맛이 나니까 다람쥐란 놈이 가을이면 다음 일 년의 양식으로 삼으려고 열심히 주워서 이곳저곳, 제 나름으로 은밀한 곳에 숨겨 둔다. 그런데 이놈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형편이 없어서 제가 숨긴 것 중 3할 밖에 찾아 먹지 못한단다. 그러니 나머지 7할은 어미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다람쥐가 숨겨둔 그곳에서 싹이 터 각각 한 그루의 도토리나무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은 본 일이 있을 것인데, 녹두가 다 익고 난 뒤 따끈한 햇볕을 받으면 그 껍질이, 한쪽으로 뒤틀리면서 톡 하고 놀라울 만큼 힘차게 터진다. 그러면 녹두알들이 적어도 수 미터 사방으로 튀어간다. 그 역시 어미한테서 멀리 가서 잘 살아라 하는 하늘의 뜻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어미밤 이야기는 더욱 감동적이다. 밤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그 밤은 3년 동안 그 자식, 새싹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고 자신은 썩어 흙이 되고 만다고 한다. 우리가 조상 제사를 모실 때 神位(신위)를 붙이는 木主(목주)는 모두 밤나무로 만드는데 거기에는 밤나무의 그와 같은 자식 사랑을 생각하고, 사람도 그 부모,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 보니 아메바의 세포핵에서 발견되는 정보의 양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 질에 실을 분량이 넘는다고 한다. 현미경을 통해서야 겨우 보이는 그 작은 미생물이 그렇게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면, 나는 내 경험과 이해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이 우주를 지배하는 어떤 뜻, 큰 意匠(의장·grand design)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