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誠其意(선성기의)의 교훈

바쁜 세상이지만, 그래도 지성스런 마음만은 잊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敎職(교직)을 떠난 지도 5년 여,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스승의 날이 가까이 오니 괜히, 지금은 그 직에 있는 분들 형편이 좀 나아졌는지 걱정이 된다. 교사든, 교수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은 권위가 있어야 한다. 권위주의는 괜한 허세요, 위압이니 배격해야 하겠지만 권위는 그와 전혀 달라서 신뢰할 만한 지식, 인품이라고 보아, 그것이 없어서는 사람을 가르치기 어렵다.

그, 가르치는 사람의 권위가 형편없이 떨어진, 아니 짓밟히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대 말께부터였다. 제자가 교수를 친 일도 있었고, 어느 학교에선가는 학생이 교수라는 사람을 꿇어앉히고 머리를 깎아버린 일도 있었다. 중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학생이 교사를 구타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무렵, 한 번은 어느 초등학교 아이들이 교사가 벌을 준다고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그래서 출동한 경찰관은 교무실에 들러 애들이 왜 저러느냐고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그 선생을 잡아가는 일까지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된 데에는 교사에게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당시 정부의 발상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정부는 어찌된 셈인지 교직에 있는 사람들을 무슨 폭력배나 상습적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사람 같이 취급했었다. 寸志(촌지)가 큰 문제라고 하면서 스승의 날을 교사들이 돈을 받을 수 없는 방학 중의 날로 옮기겠다느니 하는 모욕적인 말까지 공공연히 나왔었다.

憾情(감정)이 비치어 있거나 정도를 넘은 체벌을 해서는 안 되고, 돈 봉투가 오가고 그것이 학생들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느 직업에나 보리밭의 깜부기처럼 못난 짓을 하는 사람이 얼마간 있기 마련이다.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고 갈 사람들을 키우는 聖嶪(성업)이 교육인데,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그런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면은 단속을 강화하고 그런 일이 있을 경우 무거운 책임을 지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라가 전체 교직자들을 무슨 범죄자 보듯 했으니, 그러고 교육이 제대로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 어리석은 짓이 아니었나 한다.

그때는 내 자신이 교직에 몸담고 있어, 할 말이 목에까지 차올라도 구차스런 자기변명 같이 들릴까봐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이제 그 일에서 떠난 지도 상당한 시일이 지났으니 배우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부모 되는 분들에게 한 마디 했으면 한다.

할 말이 많지만 그 중에서 한 가지만 한다면 동양의 고전 ‘大學(대학)’에 나오는 ‘先誠其意(선성기의)’라는 한 마디를 반드시 새겨들었으면 한다. 이는 학문을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이 지성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비단 학문뿐 아니라 무엇이든 배우는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 곧 스승을 대하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자세라고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書藝(서예)의 聖人(성인)이라고 불리는 중국 王羲之(왕희지)의 ‘非人不傳(비인부전)’이라는 말이다. 그는 그 한 마디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먼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배우려는 뜻이 지성스럽지 못한 것을 말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설화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도술을 배우려는 한 젊은이가 스승이 오라고 한 날 아침에 갔더니 스승이 먼저 와 있다가 돌려보내고, 이튿날에는 전날보다 좀 이른 아침에 갔더니 또 먼저 와 있던 스승이 돌려보내고, 나중에는 동 트기 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제야 한 가지, 한 가지 씩 가르쳐 주더라는 이야기 같은 것이 그것이다.

1981년 어느 날 시인이자 서예가인 圓光(원광)이라는 스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들려 준, 자신이 붓글씨를 배울 때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해인사에 있을 때 그 절의 한 큰 스님에게서 붓글씨를 배웠는데 처음 4개월 동안 붓 한 번 잡아 보지 못 하고 먹 갈기만 했다고 했다. 중이 되려는 사람도 적어도 1년 넘게 마당 쓸기, 나무 해 오기, 물 길러 와서 밥 짓기만 하는 불목하니 노릇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佛經(불경) 한 줄이라도 배울 수 있다 한다. 陶藝(도예)를 배우는 사람들도 그런다고 한다. 그 일을 배우려는 사람은 흙을 져다 나르고 水飛(수비)라 하여 흙에 물을 붓고 밟는 일만 반 년 넘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릇 만드는 물레 근처에 갈 수 있다 한다.

오늘 같이 바쁜 세상에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그 지성스런 마음만은 잊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