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TV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스케일이 큰 雄渾(웅혼)한 이야기를 하자

문명의 利器(이기)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텔레비전에도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으면서 문제도 많은 것 같다. 不倫(불륜)드라마의 범람이 가장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지저분한 이야기는 입에 담기도 싫고-, 내가 보기에는 그 못지않은 문제가 ‘자꾸 운다’는 것이다.

아침 시간,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시간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하루도 예외 없이 운다. 남자도 울고 여자고 울고, 애도 울고 노인도 운다. 시청자들의 눈물을 짜내는 이런 프로그램은 국민을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빠지게 하는 害惡(해악)이 여간 크지 않을 것 같다. 이런 感傷(감상)은 텔레비전 드라마 뿐 아니라 우리의 영화, 노래, 대중소설 등 온갖 것에 넘쳐 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접하는 敍事物(서사물)에 ‘아이는 착한데 가난하다’느니, ‘아무리 해도 안 돼서’ 어쩌고 하는 파리한, 핏기 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러면 成人(성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어린이, 청소년들을 통속적인 사람이 되게 하고 나약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는 강하고 용감하고 진취적인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성인이 되어 이끌고 갈 때 이 나라가 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데에 눈을 뜨고 마음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 사람들은 그들의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프론티어(개척자) 정신을 심어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 중 하나가 ‘Seven alone’이라는 제명으로 영화화되어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었고, ‘초원의 꿈’이라고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된 미국의 실화소설이다.

이야기는 어떤 부모가 일곱 남매의 자녀를 데리고 험준한 산 저 너머에 있다는, 기름진 초원을 찾아나서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도중에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그 아버지가 그들과 싸우다 상처를 입고 죽게 된다. 아버지는 열네 살 난 맏아들에게, 네가 가장 노릇을 해 가족을 돌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얼마를 더 가다 이번에는 폐렴을 앓고 있던 그 어머니마저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린다. 젖먹이를 포함한 그 어린 남매들은 눈 덮인 로키산맥을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기어이 넘어, 마침내 아빠·엄마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그 초원에 도착하고 있다.

오래전 이야기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몇 년 전에 발표된, 게리 폴슨이 쓴 중편소설 ‘손도끼’도 그런 것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열세 살 난 소년은 밀림 속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혼자 살아남아 손도끼로 바위를 쳐 불을 얻어 추위를 이겨내고 나무 열매를 따고 산닭을 잡아먹으면서 끝내 그 死地(사지)에서 살아 돌아오고 있다.

이웃 일본만 해도 그러한 성격을 띤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모모타로(桃太郞) 상’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그 이야기는 본래 그들의 전래 전설이라 한다. 이야기는 복숭아에서 태어난 아기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서 각각 한 마리의 개·원숭이·꿩을 데리고 ‘오니가시마(鬼が島: 도깨비섬)’로 가, 약탈을 일삼는 ‘오니(鬼: 도깨비)’ 무리를 쳐 그 섬을 정복한다는 것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 ‘모모타로’를 그들 어린이들의 영웅으로 키우고 있다. 장난감점에서는 ‘모모타로’ 도자기 인형을 팔고, ‘모모타로상’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고 있는가 하면 오카야마란 곳에는 개와 원숭이, 꿩을 데리고 왼손을 이마 위에 얹고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모타로’ 동상을 세워 두고 있다.

그들의 뜻은 거기에 머물고 있지 않다. 그들은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이 이야기를 잘 다듬어 국정교과서에 싣고 있다. 인류사에서 보았을 때는 만용이요 악행이었지만,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데서 볼 수 있듯, 그들이 조그마한 섬나라에서 세계로 뻗으려는 야망을 가진 것도 그 어린이들이 그런 영웅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우리의 古典(고전)을 들추어 보면 본래 우리 이야기가 눈물, 한숨에 젖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예는 많겠지만 여기서는 고구려 개국시조 高朱蒙(고주몽)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삼국사기》 ‘동명성왕’ 조에 보면 고주몽은 扶餘(부여)의 왕자 帶素(대소)가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달아나 스물두 살의 나이에, 沸流水(비류수) 가에 고구려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여기서부터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는 것이다. 주몽왕은 어느 날 비류수에 채소 이파리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이에 그는 개울물에 채소 잎이 떠내려 왔다는 것은 필시 이 상류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만약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는 나의 臣民(신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沸流國(비류국)의 왕 松讓(송양)을 만나 그를 굴복시키고 나라의 地境(지경)을 크게 넓혀 대 고구려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스케일이 큰 雄渾(웅혼)한 이야기가 아닌가?

드라마 쓰는 분들, 소설 쓰는 분들, 노래 짓는 분들, 제발 눈물 찔끔거리고 콧물 훌쩍거리는, 貧血的(빈혈적)이고 哀傷(애상)에 젖은 이야기, 이제 그만 좀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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