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角(시각) 차이

사람이 남의 처지에 선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우연한 경험’으로 깨달았다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시절, 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뒤에 알고 보니 그것은 우리 이웃만의 일이 아니고 당시 뿐 아니라 아득히 먼 옛날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오죽하면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속담까지 있었겠는가.

나는 나이가 들면서 서로간의 소통 부족이 이해 부족으로 이어지고 결국 미움과 증오로 변해 목숨까지 끊는 비극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동양의 賢者(현자) 孟子(맹자)가 그런 인간사를 환히 들여다보고 <離婁(이루)>편에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易地思之ㆍ역지사지)’고 한 것도 모두 그것을 경계한 말일 것이다.

세계사를 보면 전제군주들이 暴政(폭정), 虐政(학정)을 계속하다 결국 파국을 맞은 것도 그들이 백성의 사정을 모른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잘 먹고 잘 입고 온갖 환락에 빠져 사니 백성이 등골이 휘는지, 굶는지, 죽는지 몰랐고 그러다 보니 민중의 고통, 분노가 쌓이고 쌓인 끝에 폭발하고 만 것이다.

1770년대 말, 프랑스는 황제 루이 16세의 사치와 낭비, 측근의 부패로 재정이 파탄났다. 나라는 그 바닥난 재정을 민중에 대한 수탈로 메워 갔다. 그러다 보니 거리에는 거지가 넘쳐나고 백성은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견디다 못한 디종 市의 백성들은 “빵을 달라!”고 외치며 蜂起(봉기)했다. 그때 폭동을 수습하겠다고 나선 市長(시장)은 딱하다는 말투로, “들에는 풀이 있다. 가난한 자들은 풀을 먹어라!”고 했다 한다. 그러곤 얼마 안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우리도 아득히 먼 이야기가 아니라, 權座(권좌)에 앉은 사람이 국민의 심정은 전혀 모르고 엉뚱한 言行(언행)을 하던 기가 찬 세월을 살아온 적이 있다.

‘매스컴 이론’에 ‘피드백(feed back)’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하면 청중의 반응이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송신자(communicator)가 말을 하면 수신자(communicatee)가 듣는데,  들은 쪽은 그에 대한 반응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송신자와 수신자는 서로 자리가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송신자는 또 다시 그 반응에 반응을 한다. 이것이 원활해지면 그 사회는 소통이 잘 되는, 言路(언로)가 트인 건강한 사회가 된다.

반면, 독재자가 권력을 쥐면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現 40대 연령층 이상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땡, 전’이라는 말이 있었다. 매일 저녁 땡 - 하고 9시 時報(시보)가 울리면 텔레비전에 당시 대통령이 나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이라며 국민의 심정에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연설인지 훈시인지를 했다.

그때 많은 시청자들이 “텔레비 끄라!”고 소리치고, 그런 날이 되풀이 되니 뜻 있는 사람들은 그 당시를 ‘시간이, 세월이 멈춰선 채 썩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권력자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국민으로부터 되돌아가는 반응을 차단하고 있으니, 당사자는 국민들의 울화를 까맣게 몰랐다. 그러니 ‘易地思之’란 있을 수 없었고, 그것이 곪아 터져 버린 것이 바로 1987년의 ‘6월 항쟁’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속으로 ‘위와 같은 일들은 모두 그 사람의 생각이 짧아서, 사람이 暗愚(암우)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여겼다. 나의 그런 마음속에는 ‘나는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자리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그런 장담을 하는 것이 아주 잘못됐다는 것, 사람이 남의 처지에 선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우연한 경험으로 깨달았다.

어느 날 내가 탄 택시가 건널목을 지나려는 순간, 푸른색 보행자 진행 신호가 붉은 신호로 바뀌려고 깜박깜박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좌우 살피지도 않고 건널목으로 달려들다 내가 탄 차에 치어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순간적으로 나는 그 할머니가 미웠다. ‘파란 불이 깜박이는 것을 보면 곧 신호가 바뀌리라는 것 쯤은 알았을텐데 뭐가 그리 급해서 목숨을 걸고 뛰어든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차창 밖 사람들의 반응은 나와 아주 딴판이었다. 차도 양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내가 탄 차의 운전사를 향해 벌겋게 성을 내며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가. 신호도 신호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길을 건너려 하면 안전하게 가도록 기다려 주어야 할 것이지, 왜 그렇게 서둘렀느냐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보는 시각과 밖에서 보는 시각은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

그 후, 나는 다툴 일이 생기거나 상대가 원망스러울 때면 그 날의 교통사고를 떠올리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차 밖으로 자리를 옮겨 서 보기’를 한다. 그러면 대개의 경우 다소 마음이 진정이 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로, 權座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여간 눈을 밝게 뜨고 정신이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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