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神通(육신통)

爲政者(위정자)들에겐 지극한 정성과 慧眼(혜안)이 필요하다

우리 先人(선인)들은 道(도)를 터득한 사람은 凡人(범인)과 달리, 초능력을 가진다고 했다. 그런 능력은 모두 여섯 가지인데 그것을 흔히 六神通(육신통)이라 불렀다. 우리 說話(설화)나 高僧(고승)들의 逸話(일화)에는 그런 神通力(신통력)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러 나온다.

第一(제일)의 신통력은 ‘天眼通(천안통)’이라 해, 앉아서 천리 밖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三國志(삼국지)》에서 諸葛孔明(제갈공명)이 수 천리 저쪽 전장에서 친구 龐統(방통)이 화살을 맞고 말에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아깝다, 방통!”하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그런 것이다.

性澈(성철)스님에 관한 이야기도 天眼通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해인사에 있을 때 자신을 찾아온 한 여성 신도의 얼굴을 가만히 건너다보더니 “집에 불이 났나…” 하더란다. 사람들은 그 말을 그냥 무심히 들었는데 나중에 그 신도가 집에 돌아오니 바로 그 시간, 그녀의 집에 불이나 한 동안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수 백, 수 천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天耳通(천이통)’이다. 唐(당) 玄宗(현종)이 어느 절에 들렀다. 바람도 없는데 그 절의 추녀 끝에 달린 風磬(풍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때 곁에 있던 절의 승려가 “이 풍경은 아무 데 광산에서 나는 쇠로 만든 것인데 지금 그곳에 큰 지진이 났습니다”라고 하더란다. 그 중은 절에 서서 아득히 먼 곳에서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세 번째는 상대의 마음속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他心通(타심통)’이다. 과거 TV에서 방영되었던 <太祖 王建(태조 왕건)>에서 弓裔(궁예)가 보여준 觀心法(관심법) 같은 것이다.

네 번째는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漏盡通(누진통)’으로 사람이 이에 통하면 극락에 이른 것과 같다 한다.

다섯 번째는 ‘宿命通(숙명통)’으로 인간의 운명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설화를 보면, 托鉢(탁발)을 나온 승려가 어느 집 아이를 보고, “이 애는 虎食(호식)에 갈 팔잔데 그것을 면하려면 절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마지막 여섯 번째 신통력은 흔히 縮地法(축지법)이라고 부르는 ‘神足通(신족통)’이다. 부산 연산동 金蓮山(금련산) 중턱에 있는 摩阿寺(마아사)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있다.

500여 년 전 어느 해 겨울, 그 절의 주지가 잘못해 아궁이의 불씨를 죽여 버렸다. 그는 ‘방에 불도 못 켜고 이튿날이 冬至(동지)인데 부처님께 팥죽도 쑤어 드리지 못 하게 되었다’고 걱정하며 잠에 들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주지가 부엌에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아궁이에 불이 살아 있었다. 주지가 그 불로 팥죽을 끓여 부처님께 올리려다, 법당의 열여섯 羅漢(나한) 중 오른쪽 세 번째 羅漢의 입술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얼마 후 荒嶺山(황령산) 봉화대를 지키는 사람이 절에 들렀다.

그 사람은 간밤에 눈보라가 사납게 쳐 이 절의 上佐[상좌, 師僧(사승)의 대를 이을 여러 제자 가운데서 가장 높은 사람] 아이가 불씨를 얻으러 와 불을 주고는 그냥 보내기 애처로워 팥죽 한 그릇을 먹였다고 주지에게 말하더란다. 세 번째 羅漢이 上佐 아이의 모습을 해 신족통으로 산꼭대기에 있는 봉화대에 갔다 왔던 것이다.

위의 육신통 이야기는 재미있기는 해도 황당한 데가 많고, 그래서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또 그런 것이 있다 해도 보통사람은 흉내도 낼 수 없다. 그 대신 道通(도통)한 사람이 아니라도 지극한 정성을 가지면, 그 비슷한 신통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李舜臣(이순신) 장군의 《亂中日記(난중일기)》를 읽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倭亂(왜란)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이루던 장군은 달이 지려 할 때 쯤 간교한 왜적들이 夜襲(야습)을 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장군은 곧 부하들이 한 곳으로 출동하게 해 敵船(적선)의 기습에 대비하게 했다. 그런데, 우리 水軍(수군)이 나가있던 그곳으로 倭船들이 침입한 것이다. 敵은 전혀 의외의 장소에 매복해있던 우리 水軍에게 역습을 당해 패퇴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일을 두고 그를 귀신같은 장군, 즉 '神將(신장)'이라고 했다 하니 이야말로 天眼通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늘 그럴 수는 없겠지만 사람이 중요한 일을 앞두었을 때에는 위와 같은, 지극한 정성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爲政者(위정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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