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사에서 더글러스 맥아더만큼 유명한 군인도 드물 것이다. 미국軍 元帥(원수)이자, 태평양 전쟁의 영웅이라는 호칭이 단적으로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유명인들이 흔히 그렇듯 그는 부정적인 말도 많이 듣고 있다. 정치에 개입해 군인의 본분에서 이탈했다거나, 심한 영웅주의에 빠져있었다는 등의 평가가 그것이다.
前者(전자)의 경우, 6ㆍ25사변 당시 滿洲(만주) 폭격을 주장해 군인이 대통령의 권한에 속하는 국제정치 문제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後者(후자)의 경우, 필리핀에서 부하들을 일본군 점령하의 死地(사지)에 두고 혼자 탈출하면서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전쟁을 자기 혼자의 功(공)인 양 말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나는 정치, 더구나 군인 맥아더와 대통령 트루먼 간의 갈등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의 영웅주의가 실제 어느 정도였는지 그것이 왜 나쁜가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가 필리핀에서 일본軍 공군기가 機銃掃射(기총소사)를 퍼붓고 있을 때 그 彈雨(탄우) 속을 지도 한 장을 들고, 토지 조사하러 다니는 사람처럼 어슬렁어슬렁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녔다는 호걸다운 면모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었다.
한국인인 나는, 열 살 소년이던 6ㆍ25사변 당시부터 일흔 살이 넘은 이 나이까지 그에게 변함없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2백 여 척의 艦艇(함정)과 7만 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仁川(인천)에 상륙해 그 전쟁의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키고 이 나라를 赤化(적화)에서 구한 것부터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假定(가정)은 부질없는 짓이지만, 만약 당시 워싱턴의 朝野(조야)의 주장처럼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인천상륙작전을 백지화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多富洞(다부동) - 昌靈(창령) - 咸安(함안) - 鎭東(진동)으로 이어진 낙동강전선이 서울까지 4백 킬로미터를 山岳戰(산악전), 渡河戰(도하전), 市街戰(시가전)을 벌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北上(북상)해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우리 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갔겠는가 - 생각하면 할수록 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와 생각이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대학에서 文章論(문장론) 강의를 위해 그의 연설문들을 읽으면서 또 다른 면에서 다시 한 번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의 글은 다분히 멋을 내려는 의도가 보이고 또 나름의 멋이 엿보였다. 그는 웨스트포인트에서의 고별연설에서 ‘나는 임무(duty), 명예(honour), 조국(country)을 위해 싸웠다’는 말을 네 차례나 되풀이 했다. 또 ‘나는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도 군(軍·corp), 군, 군을 생각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가 1951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 되면서 미국 의회에서 한, ‘老兵(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고 한 연설도 名文(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연설문 중에서 우리 한민족과 관련된 한 文段(문단)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연설 후반에서,
'현재까지는, 세계의 모든 나라 중에서 오직 한국만이 공산주의와의 싸움에 그들의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저 장엄한 용기와 불굴의 정신은 형언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노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무릅쓰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라고 했다. 그의 이 말은 그 戰後(전후)의 세계 역사가 뒷받침해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에서 공산진영의 도발에 무너지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중국의 蔣介石(장개석) 정부가 毛澤東(모택동)의 공산당에 패해 臺灣(대만)으로 쫓겨났다. 越南(월남)은 프랑스와 미국이 나서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패망했다. 쿠바는 미국의 턱 앞에서 공산화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오직 대한민국만이 그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오늘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一世(일세)의 名將(명장)’ 맥아더의 한민족을 향한 讚辭(찬사)에 가슴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충일이 든, 6월을 맞아 그와 같은 우리의 호국용사들과 先烈(선열)들에게 큰 敬意(경의)와 함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