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학사를 바꾼 ‘푼돈’

소설가 金東仁이 自擔(자담)한 출판비 2백원이 한 나라의 문학사를 바꿨다

人文학자 마렌 그리제바흐의 價値觀(가치관)에 대한 이론, 즉 ‘가치의 여섯 範疇(범주)說(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는 가치에는 재화가치(財貨價値), 활력가치(活力價値), 쾌감가치(快感價値), 인식가치(認識價値), 윤리적 가치(倫理的 價値), 미학적 가치(美學的 價値)의 여섯 가지 범주가 있다고 했다.

재화가치란 자기앞수표, 보석과 같이, 바로 현금과 같은 가치를 가진 것을 말하고, 활력가치란 자동차, 휴대폰처럼 생활에 편리한 것, 쾌감가치는 술(酒), 오디오세트와 같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인식가치란 진리ㆍ진실을 말하고 윤리적 가치란 불우이웃 돕기와 같은 선(善)을, 미학적 가치란 그림ㆍ조각처럼 아름다움을 가진 것을 말한다. 수도승이나 금욕적 求道者(구도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돈도 써야 할 때는 쓰고 편의시설도 이용하고,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최근 현대인들의 가치 추구의 성향을 분석해보면,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예를 들면 ‘돈이 전부’라는 가치관에 따라 살다보니 그것이 지나쳐 强盜(강도), 보험살인과 같은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또 ‘짧은 세상, 인생이 별 거냐, 즐겁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에 치우치면 나중에는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에 빠져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지나치게 편하게, 편리하게만 살려고 하다보면 운동 부족, 비만(肥滿)으로 건강을 잃기도 한다.

사람이 반듯한 사회인이 되려면 위의 여섯 가지 가치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할 것이다. 당장 돈도 안 되고, 즐거움을 주지 않고, 편리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인식가치, 윤리적 가치, 미학적 가치도 참으로 값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地動說(지동설)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했고, 進化論(진화론)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또 슈바이처가 평생 아프리카의 환자들에게 헌신한 것처럼 ‘울지 마, 톤즈’에 소개됐던 故 이태석 神父(신부)의 인간 사랑도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미학적인 것으로,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 <미로의 비너스> 조각의 가치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個人事(개인사)를 들추어내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소설가 金東仁(김동인)의 生(생)을 보면 균형 있는 가치 추구가 중요하다는 말에 수긍이 갈 것이다. 1900년, 8代 째 내려오는 평안도 갑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때 父親(부친)이 세상을 뜨자 큰 재산을 상속받았다. 약관의 나이에 큰 돈을 가지게 된 그는 돈을 흥청망청 쓰며 酒池肉林(주지육림) 속에 豪遊(호유)의 나날을 보냈다.

백금 물부리를 물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시계를 차고 다닌 그는 취미가 麻雀(마작)과 競馬(경마), 양복과 구두 맞추기였다고 한다. 일본의 도쿄는 산보하듯 오가는 것은 물론, 담배 사러 2등석 기차를 타고 중국 하얼빈에 갔다 오고, 커피는 서울에서 나는 것이 맛이 있다며 평양서 서울까지 한 잔 마시러 갔다 오기를 예사로 했다고 한다.

스물 한 살 무렵의 그의 日常(일상)은 正午(정오) 쯤 일어나 요정으로 가서 술을 마시기 시작해 1차, 2차, 3차……간혹 4차까지 마시고 새벽 4시 쯤 집으로 돌아와 자고, 정오에는 다시 요릿집으로 향했다 한다. 기혼자이면서, 明月館(명원관)이라는 당시 최고의 요정 기생들과 몇 차례인지 모르게 바람을 피우고, 逍遙山(소요산)에 단풍놀이 갔다가 만난 열 여섯 살 난 기생과는 당시 특급이었던 패밀리 호텔에서 동거생활을 했다 한다.

아무리 遺産(유산)이 많았다지만 돈을 그렇게 물 쓰듯(用錢如水․용전여수) 했으니 20대에 거덜 나 버려 결국 궁핍 속에 살다 1951년, 쉰을 갓 넘은 나이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그가 돈을 잘 쓴 데가 있긴 있었다. 그는 1919년 도쿄에서 수학하고 있을때 文友(문우)들과 ‘創造(창조)’라는 문학동인회를 결성해 그 해 2월 동인지《創造》를 창간했다. 그 책에 실린 朱耀翰(주요한)의 詩 <불놀이>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시이자 자유시이다. 國版(국판) 81페이지의 그 책은 金東仁 혼자 2백 원이라는 출판비를 自擔(자담)해 냈는데 그 돈은 지금으로 치면 몇 십만 원쯤 될 것이다.

당시 그만한 돈을 호유 탕진할 때라면 한 자리 술값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기생들이 인력거를 타고 다닐 때니까 기생들 팁이 될까 말까한 액수였다. 문학이란 미학적 가치를 위해 쓴 그 ‘푼돈’이 전근대적인 것에서 근대적인 것으로, 한 나라의 문학사를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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