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없다’는 말을 제일 처음 한 사람

뛰어난 慧眼(혜안)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에 따라 눈의 밝기는 차이가 있는데 마음의 눈, 즉 정신의 눈의 視力(시력) 差(차)는 肉身(육신)의 그것보다 더 큰 것 같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이다. 주인공 오이디푸스 왕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는 大罪(대죄)를 저질러 神(신)의 저주를 받는다. 그리곤 나라의 흉년과 질병에 시달리게 만든 범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두 눈이 멀쩡한 왕은 범인이 누군지 몰랐다. 범인이 왕이라는 것을 안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장님 테이레시아스다.

이는 문학작품 上의 이야기이긴 하나,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멀리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에드거 앨런 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알코올과 아편 중독에 심한 정신착란 증세까지 있어 거의 폐인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놀랄만큼 밝은 눈으로 우주를 透視(투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밤하늘이 캄캄하게 어두운 이유가 별들이 보내온 빛이, 거리가 너무 멀어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에까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포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밤하늘이 캄캄한 이유는 오랫동안 천문학계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 천문학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허블과 같은 우주망원경을 동원하고 세계적인 碩學(석학)들이 오랜 세월 그것을 증명하고자 무수히 많은 노력을 쏟았다고 한다. 그 결과,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죽은 포가 한 말이 정확히 맞았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앞날을 보는 눈에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은 것 같다. 세계 역사상, 미래에 대한 투시력이 밝고 정확하기로 이름 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다. 그는 1778년 84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청년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일대 사건을 직접 목도(目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죽은 지 정확히 11년 후, 프랑스大혁명이라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눈이 상당히 밝은 분을 본 적이 있다. 그분은 나의 대학 시절 은사로 일제시대에 慶南(경남) 統營(통영)의 한 소학교 교사로 있을 때 당신 반의 어린이들에게 ‘백두산 뻗어 내려 반도 삼천리 -’라는 가사의 노래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로 인해 그는 ‘사상이 불온한 소행’으로 몰려 일본 경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자 北滿洲(북만주)로 피신했다. 그 분은 해방이 되기 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참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해양국 일본이 戰艦(전함)을 다 잃었으니, 시일이 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얼마 안 가 망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시달릴 것을 각오하고 本國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분의 내일을 보는 눈 역시 여간 밝지 않았나 싶다.
 
일제시대 우리 독립투사들의 慧眼(혜안)은 새삼 여기서 이야기 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 분들의 혜안 중 공통적인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일본은 망한다, 망하고 만다’고 說破(설파)한 것이다. 그 분들은 세계의 내일을 미리 내다 보았던 것 아닐까.

우리나라의 文人들 중에는 앞날을 내다보는 눈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사람은 소설가 春園(춘원) 李光洙(이광수)로,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소위 視覺型(시각형)의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세계 모든 민족의 문제는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民族自決主義(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자 우리에게도 해방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19년 일본 도쿄에서 우리 유학생들과 함께 ‘2·8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중국의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이 되어 憂國衷情(우국충정)이 넘치는 논설들을 썼다. 그러나 ‘민족자결’ 이야기가 유야무야 되고 일본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보고는 차츰 친일로 돌아서, 나중에는 創氏改名(창씨개명), 學兵勸誘(학병권유)에 앞장서는 등 민족과 조국을 배신하는 행위를 했다.

그와 대조적인 사람이 萬海(만해) 韓龍雲(한용운)이었다. 그도 일본의 한국 强占(강점)은 역사를 거스르는 일로, 일본은 언젠가는 패망할 것이라고 보았다. 역사의식이 확고했던 그는 당장의 고통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己未獨立宣言書(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일본 경찰에 체포돼 3년의 獄苦(옥고)를 치렀는데 그가 연행되면서 주변에 당부한 말은 ‘변호사 대지 마라, 私食(사식) 넣지 마라, 保釋(보석) 신청 하지 마라’는 세 마디였다 한다. 문필가로도 이름이 나 있는 그는 ‘일본’ 또는 ‘內地(내지)’라는 단어를 써야 할 때에는 언제나 그 자리를 空欄(공란)으로 비워 두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 말을 입에 담기 싫어서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일본이란 나라는 없다’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