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Nietzsche)―Ⅺ, 經天緯地(경천위지)의 천재 이승만(5)

FREEDOM 교양영어(76)

The Philosopher artist


Nietzsche is one of the supreme literary artists among philosophers. Many Germans regard him as the greatest of all writers of German prose. One reason why Nietzsche has been able to speak to so many creative artists is that he was himself something of an artist among philosophers. He wrote good poetry, composed music (which was perhaps not so good), and the most significant friendship in his life was with the composer Wagner. But more important than any of this, his literary style was one of extraordinary brilliance; and this was almost bound to be attractive to other writers. Most of his books are not written in the same sort of extended prose as other philosophy, with arguments and counter-arguments, laid out at length, but are presented in broken-up forms: aphorisms, or biblical verses, or separately numbered paragraphs.


His typical method of trying to get his readers to look at things in a new way is to present them not with a persuasive argument but with a memorable image―the arguments are there by implication, but have to be inferred from the metaphors. Primarily, this mode of presentation is designed to put forward not arguments but insights, which often come at the reader like flashes of lightning followed by thunderbolts. 〈Bryan Magee, The Story of philosophy〉



철학자 예술가


Nietzsche는 철학자들 가운데서 최고의 문학적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많은 독일인들은 그를 많은 독일 산문작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간주하고 있다. Nietzsche가 그토록 많은 창조적 예술가들에게 말이 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는 그 자신이 철학가들 중에서 예술가다운 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詩를 썼었고 음악을 작곡하였고 (아마 썩 훌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깊은 우정은 작곡가 Wagner와의 우정이었다. 이것 중 어느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문학적 스타일(문체)은 특별히 뛰어났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작가들에게 거의 반드시 매력적이었다. 그의 책의 대부분은 다른 철학처럼 주장과 반론이 있고 길게 펼치어 있는(laid out), 같은 종류의 연장된, 산문으로 쓰여졌지만 불연속적인 형식으로 제시 된다: 警句(경구) 혹은 성경 구절 혹은 번호가 분리해서 매겨진 절(형식으로 제시된다.)


독자로 하여금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려는 전형적인 방법은 그 사물을 설득적인 주장이 아니라 기억할 만한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이다―주장은 함축된 의미에 의해서 존재하지만 隱喩(은유)로부터 추론되어야 한다. 주로 이런 형식의 발표는 주장이 아니고 통찰을 제시하기(put forward)위해서 설계된 것이며 통찰은 종종 번개 뒤에 따라오는 섬광처럼 독자에게 다가 온다.



*해설:

이승만은 외교의 귀신일 뿐 아니라 위대한 전쟁지도자였다. 그는 6·25 사변 당시 중무장한 북한 공산반란군의 기습 침공으로 3일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며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조금의 흔들림 없이 국민을 이끌고 나라를 지켜낸 위대한 전쟁 지도자였다. 평범한 지도자였다면 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주도로 정부를 이전하라는 미국의 권고도 거절하고 일선 전쟁터와의 지근거리에서 軍民(군민)을 격려하며 전쟁을 지휘하였다.


그는 최빈국의 대통령이면서도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나 미군 장성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의연하였다. 그는 전쟁 중에 언론검열도 하지 않았다. 傾國(경국)의 위기에 처해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전쟁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였던 것이다. 그는 경천위지의 초인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군사동맹을 성사시켰다. 동맹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나라가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라는 Big Brother가 있어야 중국이나 소련이 감히 한국을 침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토의 욕심이 없는 선한 강대국인 미국과의 동맹이 자유민주주의 한국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통찰할 수 있는 국가지도자였다.


이승만은 지극히 청렴하고 지극히 검소한 대통령이었다. 종이 한 장도 아꼈고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았다. 한 푼의 공금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권력자들의 부정부패가 유전인자처럼 되어 있는 한국적인 문화풍토에서 어떻게 이런 인물이 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는 권력에도 욕심 부리지 않았다. 4·19 혁명 때 (그는 부정선거에 직접 관련되지 않았고, 야당 후보의 죽음으로 무투표 당선된 상태이기 때문에 부정선거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하고 그들의 정의감을 칭찬하였다. 그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하였다. 그는 최고의 권력에도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부패의 진흙탕 속에 살아가면서도 한 없이 깨끗하게 살다간 초인이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축복이 되는 대통령이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지금 북한같은 생지옥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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