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quod leaves Nantucket on a cold Christmas Day with a crew made up of men from many different countries and races. Soon the ship is in warmer waters, and Ahab makes his first appearance on deck, balancing gingerly on his false leg, which is made from a sperm whale’s jaw. He announces his desire to pursue and kill Moby Dick, the legendary great white whale who took his leg, because he sees this whale as the embodiment of evil. Ahab nails a gold doubloon to the mast and declares that it will be the prize for the first man to sight the whale. As the Pequod sails toward the southern tip of Africa, whales are sighted and unsuccessfully hunted. During the hunt, a group of men, none of whom anyone on the ship’s crew has seen before on the voyage, emerges from the hold. The men’s leader is an exotic-looking man named Fedallah. These men constitute Ahab’s private harpoon crew, smuggled aboard in defiance of Bildad and Peleg. Ahab hopes that their skills and Fedallah’s prophetic abilities will help him in his hunt for Moby Dick.
Pequod호는 많은 다양한 나라와 인종의 남자들로 구성된 선원들을 싣고 어느 추운 크리스마스 날에 Nantucket로부터 출항한다. 얼마 안가서 배는 따뜻한 바다에 도달하고 Ahab은 향유고래의 턱뼈로 만든 義足(의족)에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으며 갑판 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그의 다리를 빼앗아 간, 거대한 전설적인 흰 고래인 Moby Dick을 추적하여 죽이겠다는 욕망을 발표한다. 그는 이 고래를 악의 화신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Ahab은 마스트에 스페인 금화를 못으로 박고 그 금화는 Moby Dick 처음으로 먼저 발견한 사람에게 줄 상이라고 선포한다. Pequod호가 아프리카의 남단을 향해서 항해할 때에 고래들이 목격되었지만 사냥에 실패한다. 그 사냥 동안에 배의 선원들이 항해 중에 본 적이 없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선창으로부터 나타난다. 그 사내들의 우두머리는 Fedallah라는 이름을 가진 異國(이국)적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 남자들은 Bildad와 Peleg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Ahab이 비밀히 배에 태운 Ahab의 개인 작살수로 구성되어 있다. Ahab은 그들의 기술과 Fedallah의 예언능력이 Moby Dick을 사냥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해설:
Ishmael이 棺(관)으로 만든 구명대를 타고 죽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을 때 재생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카타르시스도, 구원도, 재생도 아니다. 일시적인 조화와 희망도 “둘째 날에 범선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나를 집어 올렸다. 그 배는 잃어버린 자식들(선원들)을 찾아 逆航(역항)하다가 또 하나의 고아만을 찾아낸 멀리 돌아가는 Rachel호였다.”라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말에 의해 霧散(무산)되어 버린다. 'Moby Dick'에 구원이 없는 것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우주의 모순 때문이며 삶과 죽음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Melville에게는 그리스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고통과 고난 뒤에 오는 재생과 보상의 약속은 없다. 고난의 항해 끝에 오는 약속의 항구도 없다. 존재의 고통스러운 모순들이 조화를 이루는 초월의 땅도 없다. 죽음을 통한 삶도 없다. 삶과 죽음만 있으며 개인에게는 그 둘 중 하나에 대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Melville에게 가장 가공스러운 현상은 잘못된 선택의 폭력적인 결과이다. Melville은 또한 많은 욕망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창조적이면서도 모순덩어리인 인간이 전개하는 부조리한 행위에서 희극적인 절망을 본다.
모순의 포로인 인간이 벌이는 극적인 행위도 全知的(전지적) 神에게는 微物(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Melville은 삶에 대한 목가적이고 에로틱한 애착과 동료 인간에 대한 이상적인 연대에 감동한다. 상호 애착만이 우주의 고아인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행복이다. Ishemael은 야만족인 Queequeg와도 친숙하게 지낼 만큼 조화로운 인물이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연대의식이 강한 인물이다. 그는 Queequeg의 관을 구명보트로 삼아서 죽음에서 살아난다.
그러나 Ishemael이 살아남은 것을 정화나 재생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일순간의 기쁨과 조화는 '둘째 날에 범선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나를 집어 올렸다. 그것은 항로에서 이탈해 실종된 선원들을 수색하다가 단지 또 하나의 고아를 발견한 Rachel호였다.' 라는 으슬으슬하고 우울한 절망의 말에 의해 사라져 버린다. Ishemael은 갈라진 틈을 통해서 우주를 들여다 본 것이다. 그의 시야에 나타나는 우주의 중심에는 사랑이 아니고 파괴만 존재한다. 그는 천상에도 지상에도 그 어디에도 그의 친족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은 모두 天涯(천애)의 고아인 것이다.
Ishemael에게는 고난 후에도 재생이나 보상을 약속하는 무지개는 없다. 인간존재의 고통스러운 모순을 조화로운 결말로 이끌며 구원을 가져오는 초월적인 질서나 존재가 없으며 혼돈만 있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서 부활하는 삶은 없다. 단지 삶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인간은 행복한 삶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Melville은 일순간의 오판과 잘못된 선택이 가져오는 가공스러운 결과에 전율한다. 그는 또한 존재론적으로 무자비한 모순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囚人(수인) 같은 존재이면서도 무한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가진 인간이 전개하는 부조리한 행위의 희극적인 양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Melville은 이상적인 동료인간에 대한 애착에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이것만이 인간이 바랄 수 있는 행복의 유일한 약속으로 간주한다. 인간은 죽음의 존재이고 우주의 고아이지만 연대의식을 통해서 Ishemael처럼 삶의 난파선에서 구조를 받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