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개인과 국가와 문명 발전의 원동력

FREEDOM 교양영어 (185): Wealth of Nations(Excerpt)

Some workmen, indeed, when they can earn in four days what will maintain them through the week, will be idle the other three. This, however, by no means the case with the greater part. Workmen, on the contrary, when they are liberally paid by the piece, are very apt to over-work themselves, and to ruin their health and constitution in a few years. A carpenter in London, and in some other places, is not supposed to last in his utmost vigor above eight years. Something of the same kind happens in many other trades, in which the workmen are paid by the piece; as they generally are in manufactures, and even in country labour, wherever wages are higher than ordinary. Almost every class of artificers is subject to some peculiar infirmity occasioned by excessive application to their peculiar species of work. We do not reckon our soldiers the most industrious set of people among us. Yet when soldiers have been employed in some particular sorts of work, and liberally paid by the piece, their officers have frequently been obliged to stipulate with the undertaker, that they should not be allowed to earn above a certain sum every day, according to the rate at which they were paid. Till this stipulation was made, mutual emulation and the desire of greater gain, frequently prompted them to over-work themselves, and to hurt their health by excessive labour. 


진실로 일부 근로자들은 일주일 생활비를 4일 일해서 벌어들일 수 있을 때는 나머지 3일은 일하지 않고 보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결코 그렇지 않다. 반대로 근로자들은 도급제(일한 분량에 따라 지불하는 것)로 자유롭게 임금을 받으면 매우 과로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수년 안에 그들의 건강과 몸을 망치기 쉽다. London이나 여타 지역의 목수는 그들의 최고 체력을 8년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에서 심지어 농촌노동에서도, 임금이 보통보다는 높은 곳은 어디에서든지, 이와 똑같은 일이 다른 많은 업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거의 모든 계급의 匠人(장인)들은 그들의 특수한 종류의 일에 과도하게 전념(application)함에 의해서 어떤 고유의 질병(infirmity)에 거의 반드시 걸리게 된다(be subject to). 우리는 우리들 가운데서 병사들이 가장 근면한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병사들이 특수 임무에 투입되어 일한 분량만큼 후하게 수당을 받으면 그들의 상관(officers)은 병사들이 받는 비율에 따라 매일 일정액 이상을 벌지 못하도록 하는 협정을 업자와 빈번하게 체결해야 할 것이다. 이 협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상호 경쟁심과 보다 많은 소득에 대한 욕망이 그들을 빈번하게 스스로 과로하도록 재촉하였고 그래서 과로에 의해서 그들의 건강을 해치게 하였다.

 


*해설: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나의 슬픔이 되는 그런 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항상 만족하고 凡事(범사)에 감사하며 살게끔 태어난다면? 질투도 불만도 증오도 없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그런 낙원이 존재할 수 있을까?


위 질문의 답은 '노(No)'이다. 최근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이 케냐와 독일에서 실시한 연구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케냐의 120개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503가구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가구당 평균 357달러를 6개월에 걸쳐 나누어 주었다. 이 금액은 케냐의 일반 농가가 가진 全재산의 약 두 배 이상에 달한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측정 방법을 동원해 마을 주민들의 행복감(well-being)을 조사하였다. 예상대로 돈을 받은 사람들은 이전보다 큰 만족을 느낀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만족감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타인이 자신보다 더 부유해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은, 자신이 남보다 부유해질 때 느끼는 만족감보다 더 낮았다. 즉 타인의 행운이 나의 불행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인의 삶의 만족도에 관한 연구도 케냐人들에 대한 연구와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타인의 운명이 나아지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자신의 운이 상대적으로 좋아지면 비교 대상을 자기보다 더 잘 사는 사람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은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다는 걸 이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케냐 사람이나 독일인이나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천금이 생겨도 만족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이런 천성적인 질투심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도록 몰아붙여 국가나 개인, 경제 등이 성장하는 것 같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역설적으로 국가나 그들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인 셈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