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 韓准燁(한준엽)은 1975년 TBC에 입사했다. 언론 통폐합 후, KBS 홍콩, 런던특파원을 역임했고, 정부에 들어가 주미대사관 공보공사 겸 한국문화원장을 지냈다. 서울법대와 대학원에서 헌법, 법철학을 전공했으며 영국 런던 정경대에서 정치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최근 ‘야자회’ 단톡방에 올린 그의 기행문이 많은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어 본인 허락하에 전재한다.)
여행을 떠날 때는 바깥을 보러 간다고 생각했다. 돌아올 때가 되니, 오래 바라본 것은 결국 내가 떠나온 곳이었다.
영국 섬을 거의 한 달 걸었다. 호수지방Lake 물과 산, 하워스Haworth의 황량한 무어moor, Highlands 지방 북서쪽 끝단, 스카이섬 Isle of Skye의 바람, 컬로든Culloden의 들판(스코틀랜드 북부 Inverness에 가까운 황야 ; 1746년 Charles Edward Stuart의 Jacobite군과 컴벌랜드 공작의 영국 정부군 사이의 전투로, 스코틀랜드인은 양쪽 모두에 있었다),
그리고 옛 Celt족의 혼 간직코자 England에 맞서 Clearances의 ‘Diaspora’ 역사 상기시키고 ‘Scottishness(이상타! Scotlad, Scots인데 형용사만 tt가 들어가네! Scottish, Scottishness 헉)’로 차별화 하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 표현이 맞을까?) 에든버러城 돌벽 지나 다시 ‘노제국’ 심장부 런던城으로 입성했다.
대서양 테네리페Teneriffe의 검은 화산지대와 Snowdonia-웨일스의 산과 호수도 그 사이에 있었다.
젊은 날 살았던 서비튼Surbiton과 뉴몰든Newmalden의 길(런던 남서부 킹스턴어폰뎀스 자치구에 속하며, 런던 중심부 워털루역까지 철도로 약 20분인 대표적 통근 주거지다. 영국 최대 규모의 한인 밀집지역 가운데 하나로, 한국계 영국인과 교민뿐 아니라 탈북민•조선족공동체도 함께 형성돼 있다. 한인사회가 크게 자리 잡은 배경에는 런던 접근성이 좋고, 과거 주영한국대사관 관련 인력과 교민들이 주변에 정착한 역사적 요인이 거론된다. 2023년에는 찰스 3세 국왕이 방문할 만큼, 뉴몰든은 이제 영국 속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대표적 공간이 되었다.)도 다시 걸었다.
하이스트리트 지나 역 앞에서 신문 사고, 도서관으로 향하던 옛 출근길 되짚었다. 나의 모교 LSE(※런던政經大)의 Houhgton Street에도 다시 섰다. 대영박물관에서는 오래 전 마르크스가 책 읽고 <자본론> 쓰던 Reading Room 그 의자 앞에도 섰다. 26년만의 귀환이었다.
그러나 옛날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어디에서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나도 참 많이 늙었고 영국도 늙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회고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가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늙음 속에서도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만들려 하는가. 그러다 질문은 자꾸 동쪽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노대국(老大國)의 여름
2026년 7월과 8월-영국의 여름은 뜨거웠다. 내가 지나온 들판과 무어에는 에이레의 시인 W. B. Yeats의 'The Lake Isle of Innisfree'에 나오는 ‘purple glow’라는 빛나는 헤더 군락의 자줏빛이 메마른 갈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저수지는 낮아지고 농부들은 기상청 통계 이래 저수율이 최저인 물을 걱정했다. 신문들은 폭염과 가뭄을 연일 1면에 올렸다. 한 때 찬찬히 숙독, 기삿감을 찾던 전통의 시사집지
"Red sky at night, Europe`s alight!" 밤하늘이 붉으면 목동이 기뻐한다는 옛말은 이제 ‘유럽이 불타고 있다’는 풍자가 되었다. <디 아이 페이퍼>의 1면은 더 직접적이었다.
“Summer 2026 will be UK`s hottest since records began."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
폭염은 더 이상 날씨 기사가 아니었다. 빵과 브로콜리와 스테이크 가격으로 옮겨가고, 보험료와 전력망과 의료와 농업으로 번져 갔다. 기후위기는 그렇게 추상명사에서 생활비가 된다. 그런데 내가 본 영국의 위기는 기후만이 아니었다. Brexit 이후의 피로, 이민 문제, NHS(※National Health Service)의 적체, 주택난, 지역 격차, 생산성 정체, 재정 압박이 서로 얽혀 있었다.제국의 기억을 가진 나라가 이제는 ‘어떻게 다시 작동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흥미로웠다. 대영제국을 만들었던 나라가 다시 수도관과 버스와 병원 이야기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보다 修繕
영국 정치의 한 흐름을 보면서 새 총리 앤디 버넘에게 눈길이 갔다. 그가 말하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라기보다 집과 교통, 의료, 교육, 지역경제 같은 생활의 문제다.
생각해보면 프랑스 정치에는 ‘廣場’의 전통이 있다. 불만이 임계점을 넘으면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다. 혁명과 봉기, 총파업과 대중시위가 정치사의 굵은 마디를 만들었다.
영국인은 조금 다르다. 버스가 늦고, 병원 예약이 밀리고, 수도꼭지는 몇 달째 새는데도 한동안 투덜거리며 견딘다. 그러다 어느 날 투표소에서 정부를 바꾼다.
물론 이것은 국민성을 단순화한 농담이다. 영국에도 격렬한 파업과 거리정치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 농담 속에 영국 정치의 한 기질은 들어 있다. 혁명보다 수선(修繕)을 믿는 정치. 거대한 국가를 논하기 전에 고장 난 일상을 고치는 것. 나는 그것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멀어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구호가 되고, 작은 불편을 오래 방치하면 그것은 마침내 체제에 대한 불신이 된다. 그것은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에서든 맨체스터에서든 사람들은 결국 비슷한 것을 묻는다.
내 아이가 살 집은 있는가. 아프면 제 때 치료받을 수 있는가. 열심히 일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가. 늙어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 국가는 결국 이런 질문 앞에서 평가받는다.
왕관의 무게
영국을 걸으면 왕실을 피할 수 없다. 궁전과 성당과 동상, 군기와 문장(紋章), 오래된 의식이 도처에 있다. 젊은 날의 나는 이런 전통에 매혹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영국은 내게 오래된 나라였다. 셰익스피어와 워즈워스, 의회와 대학, 왕실과 박물관, 오래된 돌담과 ‘나의 정원’이 있는 나라, 오래된 돌담Stone Wall과, 집 뒤편에 저마다 ‘나의 정원’ 하나씩 품고 사는 나라 말이다.
그 동경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다시 와 보니 전통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통에는 비용이 들고, 권위에는 설명할 책임이 따른다.
왕실도 예외가 아니다. 찰스 3세 이후 영국 왕정이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莊嚴한가”보다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영국이 오래된 것을 쉽게 버리지 않는 능력을 부러워한다. 낡은 건물은 헐어 버리지 않고 고쳐 쓰고, 왕실의 의례와 의회의 관습을 시대에 맞게 조금씩 수정하면서 이어 간다. 새 것을 만드는 능력만큼 오래된 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도 문명의 힘이다.
이 대목에서 또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왔다. 전쟁의 폐허에서 산업국가가 되었고, 권위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만들었으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압축 성장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헐어 버리기도 했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했던 시절의 흔적이라는 이유만으로….대한민국이 이제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새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뿐 아니라 자기 기억을 품위 있게 보존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세계의 끝에서 만난 한국
여행을 하다 보면 조국은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난다. 상점의 한국 화장품, 식당의 김치, 테네리페 남부 resort 저녁 해안에 울려퍼지던 Psy의 ‘강남스타일’~~젊은이들이 떼창하는 K-pop, 휴대전화와 자동차, 화면 속 한국 드라마.
내가 젊은 기자였을 때의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 그때 우리는 세계에 한국을 설명해야 했다. 워싱턴에서도 그 일을 했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산업화를 이루었는지, 왜 한국의 민주주의가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다.
이제는 세계가 먼저 한국을 찾아본다. 한 세대 만에 일어난 놀라운 역전이다. 그러나 자부심은 질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K-pop이 세계를 휩쓸고 반도체와 배터리와 조선업이 앞서간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출생아는 줄고 있다. 지역은 쇠퇴한다. 노인은 늘어난다. 젊은 세대는 주거와 일자리 앞에서 불안을 느끼고, 교육 경쟁은 여전히 사람을 소진시킨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거칠어지고 북한의 핵은 그대로다. 어제 오늘도 로켓맨 김정은의 핵장난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위로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AI를 잘 만드는 나라, AI와 잘 사는 나라
이번 여행에서 신문과 잡지 펼칠 때만다 AI가 따라왔다. <디 이코노미스트>는 표지에 “HOW AI IS BREAKING THE STATE”를 걸었고, <뉴 사이언티스트>는 “AI`S NEXT LEAP”이라 썼다.
AI가 현실세계를 직접 경험하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제 질문은 ‘AI가 올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왔다. 영국 기업의 AI 사용률도 2023년 약 12%에서 2026년 약 35%까지 높아졌다는 조사들이 나온다. 불과 몇 년 사이 기업 현장으로 AI가 급속히 스며들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역시 빠르다. 조사기관과 ‘AI 사용’의 정의에 따라 수치는 크게 달라 단순한 숫자 대 숫자의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지만, 대기업과 정보통신•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도입 속도가 매우 빠르다. 반면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면 격차가 훨씬 크다
바로 그 격차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AI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는 나라다. 반도체가 있고, 통신망이 있고, 높은 교육수준과 제조업 기반이 있다. 작은 국토와 빠른 의사결정 구조도 때로는 큰 강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경계하고 싶다. 'AI를 잘 만드는 나라'와 'AI와 함께 잘 사는 나라'는 같은 나라가 아닐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알고리즘을 가지고 기업의 AI 도입률이 아무리 높아도, 그 기술이 일자리 잃은 사람 버리고 부와 기회를 소수에게 집중시키며 아이들에게 스스로 읽고 쓰고 생각할 힘을 잃게 한다면 그것을 과연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AI 시대의 국력은 기술의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기술을 인간의 존엄과 자유, 교육과 일자리, 공동체의 삶 속에 얼마나 공정하고 슬기롭게 자리 잡게 하느냐까지가 국력이다. 대학이 질문을 가르치지 못하고, 언론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시민이, 특히 Alpha세대가 숏폼에 마취돼 긴 글 읽지 못한다면, 세계 최고의 AI를 가진 사회도 지적으로 가난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남의 이야기처럼 쓸 수가 없다. 한때 학생이었고, 기자였으며 국가의 대외홍보 일선에 있었고, 다시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직업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읽고, 묻고, 듣고, 확인하고, 설명하는 일이었다. AI가 무엇을 대신하더라도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야 할 것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질문하는 능력, 기자라는 오래된 병.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좀처럼 관광객이 되지 못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먼저 감탄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했고, 신문 가판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아침이면 신문을 펼쳤다. The Times, Guardian, Daily Mail, The Sun, Daily Telegraph, The I Paper, Private Eye, The Economist, New Statesman, New Scientist….
젊은 날 서비튼 역에서 신문 한 보따리 사 들고 커피숍에 앉아 형광펜 그어 가며 읽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었다. 기자는 세상을 믿으면서도 끝까지 의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정부 발표도 의심하고, 야당의 주장도 의심하고, 유행하는 여론도 의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 확신을 의심해야 한다.
나는 젊어서 영국을 동경했다. 이번에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눈감아서는 안된다. 영국은 위대한 문화적 자산과 제도를 가진 나라지만 동시에 늙고 있으며, Brexit의 후유증과 생산성 정체, 지역 격차와 이민 갈등이라는 무거운 짐도 안고 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애국은 결점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점을 보도고 버리지 않는 마음이어야 한다. 기자의 조국애도 그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시간
영국과 대한민국은 서로 반대 방향에서 같은 질문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은 너무 많은 과거를 가진 나라다. 대한민국은 너무 빠르게 미래로 달려온 나라다. 영국의 위험은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쇠퇴를 가리는 것이고, 한국의 위험은 미래를 향한 속도가 과거와 인간을 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두 나라는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다.
한국은 영국으로부터 제도와 기억의 지속성을 배울 수 있다. 영국은 한국으로부터 변화에 대한 속도와 에너지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상대가 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은 작은 영국이 될 필요가 없고, 영국 역시 한국처럼 달릴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 역사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고칠 것인가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다. 국가도 사람처럼 늙는다. 그러나 늙는 것과 쇠퇴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기억을 잃지 않는 사회는 늙어도 깊어진다. 반대로 아무리 젊고 빠른 나라라도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를 잊으면 일찍 늙는다.
Home Coming
이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영국을 다시 보고 싶었다. 워즈워스의 호수를 보고, 브론테의 무어를 걷고, 클렌코의 바람을 맞고 싶었다. 젊은 날의 런던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걷고 나서 보니 내가 찾아다닌 것은 장소만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나였고, 내가 살아온 시대였고, 내가 떠나온 나라였다.
巡禮者, nomad는 먼 곳까지 가지만 결국 자기에게 돌아온다. 호수지방의 물 보고 한강을 생각했고, 스코틀랜드의 헤더, 히스 덤불 moor 보며 우리 산야를 생각했다. 영국의 오래된 교회를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했고, 런던의 AI 기사 읽으며 서울의 젊은이들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Heathrow도 인천 공항도 아니다. 대한민국이다.
세계의 변방, 가난에서 출발했던 나라,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 불리던 고요한 나라가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분주하고 역동적인 나라, 변화의 맨 앞에서 숨 가쁘게 달리는 나라가 되었다. 전쟁의 폐허 딛고, 빈곤 넘어 마침내 여기까지 온 나라--나의 조국 대한민국!
때로 지나치게 서두르고, 서로에게 가혹하며, 아직 고쳐야 할 것이 많은 나라. 그러나 여전히 놀라운 에너지와 배움의 욕망, 가족을 위해 견뎌 온 사람들의 힘, 위기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가진 나라.
나는 그 나라로 돌아간다. 예전에는 세계를 보고 돌아와 ‘우리는 왜 저들처럼 하지 못하는가’를 물었다. 이제는 그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나라가 되고 싶은가. AI 강국인가. 경제 강국인가. 문화 강국인가. 물론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묻고 싶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좋은 나라인가.
국가의 힘은 얼마나 강한가에만 있지 않다. 그 힘으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제대로 돌보는가에도 있다. 정치도 결국 거기로 돌아가고 경제도, 기술도, 문화도 다 거기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언론도 그렇다.
귀국 가방 꾸리며 창밖을 본다. 영국의 여름은 여전히 뜨겁다. 스코틀랜드에서 보았던 헤더가 지금쯤 더 짙게 피어 있을 것이다. 그 꽃은 한 송이씩 보면 작다. 그러나 수천, 수만 송이가 황량한 무어를 덮으면 산 하나의 빛깔을 바꾸어 놓는다.
나라라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거대한 구호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삶이 모여 한 시대의 빛깔을 만든다.
나는 이제 그 사람들 속으로 돌아간다. 더 이상 젊은 특파원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쉽게 믿던 열정 넘치는 학생도 아니다. 그래도 아직 읽고 싶고, 묻고 싶고, 걷고 싶고, 쓰고 싶다.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그 긴 흐름 속에서 한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은 여전히 모른다. 아마 끝내 모를 것이다. 그래도 묻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기자였으므로, 아니, 아직 상금도 기자이므로.
영국 섬 한 바퀴 돌아 나는 다시 집으로 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길이 보인다. ‘Home Coming.'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길을 떠나는 일이다.
-2026년 8월, 영국 섬 순례를 마치며, Surbiton High Street Costa Cafe에서 靑嵐(청람※韓准燁의 아호)쓰다.












오랜만에 가슴에 와 닿는 찡한 감동의 글 감사합니다.
무언가 영감을 주는 귀한 글이라 느낌니다.건강하시고 또 좋은 글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