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통일로 가는 길목에 서서

자기 것을 자기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잃을 게 많은 사람부터 싸워야 합니다.
편집자注: 우리에게 친숙한 ‘민족’개념은 삼국통일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여행은 신라통일의 역사와 그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충북 진천, 옥천, 경북 경주, 충남 논산, 충남 부여 등에 위치한 삼국통일과 관련된 유적들을 2005년 11월11일부터 13일까지 여행했다.
 20편은 삼국통일기행의 마지막편이다. 11월 13일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위원으로부터 백제 멸망과 삼국통일에서 배워야 할 교훈에 대해 듣는 장면이다.
尙美會 - 삼국통일의 발자취를 찾아서


[백제 멸망과 삼국통일에서 배워야 할 교훈]

조갑제: 백제가 멸망한 뒤에 어떻게 됐냐 하면 의자왕하고 열네 명의 왕자들은 당나라로 붙잡혀 갔습니다. 당나라 고종은 의자왕을 용서합니다. 의자왕은 풀려난 후에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중국 西安(서안) 지역에서 죽었습니다.
의자왕의 아들 중에는 일본에 볼모로 간 왕자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扶餘豊(부여풍)입니다. 이 사람은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나자 5000여 명의 일본군대를 데리고 와서 부흥운동에 합세했습니다. 그러다 663년, 어제 설명 드린 벽촌강 전투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패합니다. 패배한 후에 고구려로 도망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뒤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의자왕의 태자였던 扶餘隆(부여융)은 어떻게 됐느냐. 이 사람은 그 뒤에 당나라의 꼭두각시가 돼버렸습니다. 백제가 망한 다음 백제 지역이 신라에 바로 편입된 것이 아닙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백제 지역에 熊津都督府(웅진도독부)를 만듭니다. 그 도독으로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임명합니다. 이런 방식은 당나라가 식민지를 분할·관리하는 통치 수법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신라에서는 상당히 찝찝하게 생각을 했죠. 백제 땅은 자신들이 가져야 하는데 당나라 관할이 되고 당나라 군대가 주둔을 하게 된 겁니다. 백제 부흥운동 또한 664년에 끝났습니다. 당나라는 백제 땅에서 부흥운동이 완전히 평정됐는데도 불구하고 신라에 땅을 내주기는커녕 신라 문무왕과 백제의 부여융을 불러서 앞으로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게 만듭니다. 이건 문무왕에게는 대단히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부여융은 의자왕의 아들이고 더구나 문무왕의 누님을 죽게 했다 해서 사비성이 함락될 때 문무왕이 부여융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너 때문에 내가 20년 동안 골치가 아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과 불가침 조약을 맺도록 한 겁니다. 하지만 당나라가 워낙 강하게 원하니까 어쩔 수 없이 664년 약속을 하게 됩니다.
667년 신라가 당에 대항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백제 땅을 차지하게 된 겁니다. 신라는 對唐(대당) 결전을 시작하면서 먼저 백제 땅을 점령합니다. 그때 백제 땅이 처음으로 신라 땅이 된 겁니다. 우리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면 660년 백제가 완전히 망하면서 그 땅이 신라 것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가 백제 지역을 점령하자 부여융은 견디지 못하고 당나라로 도망을 가버렸어요. 당나라는 신라에 의해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시킨 다음에도 부여융을 신라를 견제하는 데 써먹으려고 만주 지역에 帶方郡(대방군)이라는 것을 만들어 왕으로 앉힙니다. 부여융은 거기서 죽었습니다.
망한 백제 왕족의 후손들은 이렇게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姓氏는 이천 徐씨, 부여 徐씨가 됩니다. 부여 徐씨가 이천 徐씨에서 나왔죠. 당나라에서 의자왕에게 徐씨로 姓을 바꾸라고 해서 부여 徐씨가 생겼다는 그런 기록도 있는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부여 徐씨 집안에서 백제왕대사라는 제사를 지내죠. 그게 의자왕을 제사 지내는 겁니다.
정림사지를 마지막으로 해서 삼국통일 역사기행이 끝났습니다. 그거 보셨죠. ‘大唐平百濟碑銘(대당평백제비명)’이라고 써놓은 거 말입니다.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 백제탑 벽에다 자기의 공적을 새기고 돌아가 버렸는데 그걸 우리는 ‘平濟塔(평제탑)’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우다가 이제야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아주 굴욕적인 거죠.
이런 것은 전쟁에 진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를 참 잘 보여주는 겁니다. 거기 날짜를 보니까 말이죠,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이 전멸한 게 660년 7월 10일, 사비성이 함락된 것이 그 열흘 뒤입니다. 그리고 관광 해설사가 ‘사비성은 일주일 동안 불바다가 되고 백마강은 피바다가 됐다’고 설명한 그 상황의 흔적이 탑신에 시커먼 자국으로 남아있습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아주 아름다운 석탑입니다. 또 백제탑은 唯二(유이)한 거죠.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석탑, 단 두 개입니다. 신라의 탑은 통일된 이후에 만든 것들도 많습니다만 백제의 탑은 딱 두 개라고 하니까 저도 ‘아, 그렇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탑은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고 그 몸에다 역사를 새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보통 탑이 아니라 그야말로 역사의 榮辱(영욕)과 哀歡(애환)을 몸으로 겪은, 역사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찾자면 지금은 없지만 중앙청이 그렇죠. 중앙청을 없앤 게 김영삼 대통령의 무식함의 소치입니다. 현대사의 영욕을 다 지켜본 건물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경복궁 복원된 것과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물론 시원한게 보기 좋기는 합니다. 그러나 중앙청도 있고 경복궁이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여기서 일단 삼국통일 기행을 마치겠습니다.
여기에 부록으로 삼국통일을 이해하는 데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제가 나눠드린 책 중에서 ‘匈奴王國(흉노왕국) 신라’라는 부분을 보시면 좋을 겁니다. 天馬塚(천마총)을 보셨으면 제가 설명 드리기 더 좋을 텐데 이번에는 천마총을 못보셨으니까요. 천마총에 들어가 보면 금관이나 그 유물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라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6세기 들어와서입니다.
그럼 그 전에는 어디의 영향을 받았느냐. 북방 유목민족들, 스키타이族, 그 다음에 로마와 교류한 흔적 등이 나타납니다. 로마에서 수입한 유리잔이 대표적입니다. 거기서 발견된 유리잔은 생긴 것 자체가 그리스 로마에서 디자인한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극동의 제일 구석에 있던 신라가 4세기, 5세기에 북방의 상인들을 통해서 지금의 시리아, 불가리아에 있던 서로마와 무역을 했다는 겁니다.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鷄林路(계림로) 고분에서 출토한 유물들 중에 유리잔도 있고 서로마에서 수입한 보검, 칼 등이 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 신라의 지배민족은 중국의 영향을 받기 전에 서방과 먼저 교류해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망하고 중국에서도 왕조가 바뀌면서 교역 루트에도 변화가 와서 교류가 끊어진 거 같아요. 그 뒤에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중국 문화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즉, 원래 신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정신적인 가치관-샤머니즘, 토착적인 신앙 등-때문에 불교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국 문화가 들어오기 전에 신라가 고유한 정신적인 문화가 있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중국의 농경문화와는 다른, 북방의 기마민족 등 다분히 서방적인 것과 연결이 돼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異次頓(이차돈)도 순교를 했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라가 통일을 할 때도 중국 대하기를 상전처럼 대한 게 아니라 ‘우리도 우리 나름의 것이 있다. 너희가 아무리 큰 나라라도 밑에 가서 종노릇은 못 하겠다’ 하면서 對唐결전을 결심한 것과 연결이 된다 이겁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신라의 지배민족, 즉 金씨가 흉노와 관계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제가 나눠드린 것을 읽어보시면 거기 모두 정리가 돼 있습니다. 오늘 구경한 것도 정순태 편집위원이 國寶(국보)기행을 통해서 자세하게 적어놨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오늘 설명들은 것을 참고하시면 더 확실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새벽에 도로를 보면 ‘야, 한국이 정말 力動(역동)적인 나라구나’하는 것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신나기도 합니다. 도로라는 게 인체에 비교하면 혈관이거든요. 도로에 이렇게 많은 차가 왔다갔다 하면서 생산도 하고 놀러가고 하는, 이게 사람들 사는 모습입니다. 북한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개성에서 평양까지 가면서 차를 네 대 봤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한에는 식량을 줘도 이것을 지방에 나눠줄 수단이 없습니다. 수송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움직이지 않는 나라입니다. 석유소비량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석유 소비량이 세계 몇 위인지 아십니까. 작년까지는 세계 8위였고 올해는 아마 7위 정도 될 겁니다. 그 양은 약 8억 배럴 정도 됩니다. 북한의 연간 석유 소비량은 남한의 3일치 석유소비량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죽은 사회라는 거죠.
우리나라는 이렇게 석유를 많이 소비합니다. 올해 유가가 배럴당 40달러였다면 약 320억 달러를 석유수입에 쓴 겁니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이 약 2600억 달러, 수입이 약 2500억 달러입니다. 그중 320억 달러가 석유수입에 들어갔습니다. 옛날보다는 경제규모에 비해서 그 비중이 많이 줄어서 그런지 기름 값이 올라도 기름 적게 쓰자는 말을 별로 안 하는 것 같습니다. 1970년대에는 수출해서 번 돈의 3분의 1을 석유수입에 썼거든요.
이 도로가 닦여진다는 게 인간의 문명을 바꾼다는 걸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 때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 기억나십니까.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어떻게 시작했느냐. 각 마을에 시멘트와 철근을 갖다 주는 게 새마을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걸로 뭘 만들었느냐.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農路(농로)를 확장한다’이랬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당까지 트럭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길을 낼 때 보면 꼬불꼬불한 길을 곧게 내면서 자기 담장도 날아가고 하는 집들이 많았습니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랬으면 정부에서 다 보상을 해줬을 텐데 그때는 각자가 길이 될 땅을 마을에 기부하는 식으로 해서 길을 넓혔습니다.
그 다음에는 초가지붕을 현대식으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옛날 농촌에 사셨던 분들 기억나시겠지만 1년에 한 번씩 초가지붕 가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나중에는 지붕을 가는 기술자들도 점점 부족해졌습니다. 그래서 지붕을 슬레이트로 갈면서 초가지붕을 없앴습니다.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이 성공한 것은 여성 새마을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새마을 지도자의 약 40%가 여성이었습니다. ‘왜 여성들이 새마을 지도자가 됐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농촌이 근대화되지 않아서 고생을 제일 많이 한 당사자가 여성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 지도자들이 일어나서 새마을 운동을 벌였다는 겁니다.
오늘날 여성 에너지의 대폭발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출발점은 여성 새마을 지도자들입니다. 1960년대에는 여성들이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1970년대에는 신발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한때 기사를 잘못 써서 신문사에서 쫓겨난 다음에 국제상사 신발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국제상사 2000여 명 직원 중에서 70%가 女工(여공)이었고 그 여공 중에서 70%가 열일곱 살 이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1974년부터 우리나라가 중동에 진출을 했습니다. 1970년대 하면 사람들이 유신시대라고 기억합니다. 최근 정치하는 사람들은 1970년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은 암울한 시대라고 합니다. 아니, 1970년대가 암울했습니까. 물론 저도 그때 실직자가 되기도 하고 정보부에 끌려가서 조사도 받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만 보면 고생했다고 하겠지만 대한민국 전체가 그런 경험을 한 건 아닙니다.
70년대 우리 근로자들이 중동으로 진출해서 벌어들인 달러로 석유를 사오면 딱 맞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오일쇼크(Oil Shock)를 제일 잘 극복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전부 산업투자를 축소할 때 우리나라는 중화학 공업 육성이라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습니다. 1970년대 외국에서는 다 투자를 줄이는반면 우리는 중화학 공업에 투자를 한 덕분에 최신 설비도 싸게 샀습니다. 그때 만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오늘날 경제의 밑바탕이 돼 있지 않습니까. 1970년대는, 새마을 운동, 중화학 공업 건설, 중동진출, 이 세 가지만 생각해도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꿔놓은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겁니다.
남북 대결에서 우리가 군사비를 더 많이 쓰게 되는 게 1976년부터입니다. 남북체제대결에서 우리가 이기게 되는 결정적 시기인데 이 시기에 자기가 당한 게 있다고 암울한 시기라고 부르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자기 집에 전기 안 들어온다고 세상이 암흑천지입니까. 그런 식으로 역사를 보는 세력들이 학자라든지 야당이라면 큰 문제가 아닌데 오늘날 집권세력이 돼 있으니까 문제죠. 하여튼 1970년대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공업, 기업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뛸 정도로 발전하고 있고 선진화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구석에서는 赤化(적화)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선진화라는 이야기와 적화라는 이야기가 같은 나라에서 나오는 걸 보면 세계에서 제일 희한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아니, 6·25가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TV 토론을 한다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텔레비전 방송에서 맥아더 때문에 통일이 안 되서 원통하다는 사람과 정상적인 사람이 토론하는 걸 가만히 보면 ‘저런 토론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6·25가 北侵(북침)이라는 사람과 南侵(남침)이라는 사람이 토론을 해야 남침인지 북침인지 알 수 있는 겁니까. 이건 진돗개를 보고 개라는 사람과 고양이라는 사람이 토론을 하는 겁니다. 그런 상황을 공중파 방송에서 중계를 해주고 있는 꼴입니다.
아까 서정자 여사님께서 점심시간에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쪽에서 조명탄을 터뜨리면서 내려오는 걸 직접 보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침을 목격한 사람들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북침했다고 주장하는 이 미치광이들이 지금 집권 세력 안에 들어가 있어요.
이걸 정확하게 말하면 말이죠, 이런 표현을 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지금 노무현 정권은 제2의 南勞黨(남로당) 정권입니다. 왜 남로당 정권이냐. 핵심세력의 상당수의 부모들이나 처가 어른들이 남로당 활동을 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한민국에 대대로 원한이 맺힌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어가야 할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분열정권이다. 이승만은 친일파를 중용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않고 ‘모택동을 존경한다’ 뭐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이미 남로당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南勞黨(남로당)과 北勞黨(북로당)이 연방제를 하는 게 맞죠. 무슨 말씀을 드리는 지 아시겠습니까.
앞으로는 연방제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요즘 2007년 대통령 선거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요즘 여론 조사를 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20%대까지 내려갔는데 그 이하로는 잘 안내려 갈 겁니다. 한국에서 여론 조사를 해보면 확실한 親김정일 세력이 10%, 인구로 하면 약 500만 명입니다. 거기에 다른 10%가 적극적으로 附和雷同(부화뇌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수가 20%니까 1000만 명입니다. 이들은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정보도 있고 돈도 있고 공권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4800만 명 중에서 親北反逆(친북반역)세력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 1000만 명이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적과의 동침 중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지는 반면 親北反美(친북반미) 여론은 지금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디어 절반을 넘었습니다. 54%라고 합니다. 미국이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을 공격할 때 한국은 북한과 손을 잡고 미국과 싸워야 한다는 여론이 60%를 넘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왜 나오느냐. 지난 7년 동안 정권과 공중파 방송이 국민들을 상대로 親北反美여론을 확산시킨 결과입니다. 여론이 이러니까 정치인들도 다들 親北反美하면 표가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예전에는 親北反美를 주장하면 감옥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표가 된다고 보는 겁니다. 정치인은 표를 따라가게 돼 있습니다. ‘이제는 親北反美쪽으로 정책을 만들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지금 노무현 정권은 뭘 기대하고 있느냐 하면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정일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강정구 교수도 구속하지 마라, 북한에 250만㎾ 송전해주겠다, 앞으로 빚을 얻어서라도 대북협력기금을 늘여 연간 몇 조원씩 퍼다 주겠다’ 하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건 김정일 보라고 하는 행동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김정일에게 성의를 보이면 내년 쯤에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 거기서 뭘 합의할 것이냐. ‘이제부터는 6·15선언을 실천하기로 한다’ 이렇게 나올 겁니다. 6·15선언에는 대남적화통일을 유리하게 하는 조건이 다 들어 있습니다. 6·15선언이라는 게 김대중씨가 김정일에게 5억 달러를 갖다 바치면서 약점이 잡힌 상태에서 회담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합의문은 전부 김정일의 對南赤化(대남적화) 통일을 도와주는 것들입니다. 그 내용을 해석하면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되고 우리 헌법을 개정해서 영토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이런 것들입니다.
자,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이 만나서 ‘6·15선언 실천합시다’하고 이야기하면 근사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6·15선언 실천은 어떻게 하느냐. 먼저 ‘연방제와 연합제를 통일하기 위해 각자의 체제를 정비하자’ 이렇게 나올 겁니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과 헌법을 바꾸겠다고 할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 맞춰 남한도 헌법을 바꿔야 합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바뀐 헌법에 따라야 합니다만 북한의 노동당 규약과 헌법이 바뀌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 모두 김정일의 말 한 마디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쓰레기와 남한의 다이아몬드를 맞바꾸는 게 되는 겁니다. 말도 안되는 거죠.
그러나 북한이 그런 제안을 하면 공중파 방송들부터 바로 선전에 나설 겁니다. ‘북한이 엄청나게 변했다. 헌법과 노동당 규약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도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방송에서 난리를 피울 겁니다. 여기에 맞춰 민노당, 한총련, 전교조 등 잘 조직된 각종 좌파 세력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서 공중파 방송의 응원을 등에 업고 활동하면 과연 한나라당이 개헌 저지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지킬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짓으로 봐서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改憲(개헌)이 된다는 겁니다.
그 개헌은 國體(국체)변경입니다. 즉, 연방제로 가는 개헌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연방제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우리가 연방제라고 하는 것의 핵심은 이렇게 알면 됩니다. 연방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됩니다. 쉽게 설명하면 북한이 말하는 연방제는 이렇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體制(체제)를 그대로 두고, 북한도 자기네 體制(체제)를 그대로 두고 통일하자는 겁니다. 그 말에 모순이 있습니다. 체제가 다른데 어떻게 통일할 수 있느냐 하는 거죠.
지금 한반도는 민족이 달라서 분단된 것이 아닙니다. 체제가 달라서 분단된 겁니다. 그런데 체제가 다른 상황을 놔두고 통일을 한다는 게 모순 아니겠습니까. 북한은 양쪽 체제는 그대로 두고 ‘통일한 척하자’는 말입니다. ‘통일한 척하자’는 말의 의미는 뭐냐. 결론적으로 남한에서 주한미군 철수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공산당의 활동을 합법화, 자유화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김정일이 남한에서 절반정도의 표를 얻을 자신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북한에도 김정일 표가 2000만 명이 있으니까 이 둘을 합하게 되면 실제 김정일을 지지하는 숫자가 반대하는 숫자보다 월등히 많아진다는 겁니다. 남북한 인구 7000만 명 중에서 김정일 지지세력 2 對 반대세력 1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북한에서 인구비례로 총선거하자는 제안을 할 것이라고 김일성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구비례로 총선거해서 통일 대통령을 뽑아보자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2:1로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미 동맹은 깨지고 주한미군은 철수하게 될 겁니다. 지금 상황은 동맹이 깨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이 깨지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사태가 일어날 경우에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냐. 한국의 보수 세력과 한나라당이 이것을 막지 못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한반도의 챔피언은 김정일이 된다는 겁니다.
김정일이 핵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初志一貫(초지일관) 대결하면서 드디어 한미 동맹을 해체시켰다 그러면 누가 봐도 한반도에서의 정치적인 주도권은 김정일이 잡았다고 볼 것입니다. 왜냐. 김정일은 북한을 철권통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절반 정도를 자기편으로 만든 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이 되면 남한의 보수 세력은 완전히 자신을 잃을 겁니다. 자신이 있으면 그전에 한미동맹이 해체되는 상황을 막았겠죠. 한미동맹을 해체하는 것을 보수 세력이 두 눈 뜨고 남의 일처럼 가만히 구경했다고 하면 그건 벌써 한국의 보수층에는 희망이 없다는 거죠.
그 뒤에 한국의 보수층은 어떻게 되느냐. ‘앞으로 김정일 세상이 올 텐데 어떻게 나도 저 밑에 붙어 살 것인가’ 눈치를 보기 시작하던지 돈이 있는 사람은 이민을 가던지 하겠죠. 그런 분위기가 군대에까지 퍼지면 군대도 변질될지 모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면서 남한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국군이 북한군과 대결하면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1953년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북한의 전력이 국군과 주한미군의 전력을 합친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주한미군의 전력을 빼버리면 그 균형이 확 기울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일은 전쟁을 해도 이길 자신이 있고 전쟁을 안 해도 남한에 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일이 군사력과 남한에 있는 친북좌익 세력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가지고 보수 세력을 코너에 모는 것은 아주 쉬울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그럼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사람을 속이는 게 있어요. ‘主權(주권)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하니까 진짜 우리나라 정치를 국민들이 한다고 착각합니다. 정치를 국민들이 합니까. 정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하는 게 현실이죠. 국민들이 정치를 할 때는 투표할 때 한 번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투표할 때 어느 정권을 선택하느냐 그 선택만 합니다. 뽑아놓으면 그 사람들이 사기를 치던 부정을 하던 임기 동안에는 어떻게 말릴 방법이 실질적으로는 없습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하는 행동이 전부 헌법 위반인데도 말릴 방법이 없잖습니까. 이걸 말리려고 탄핵을 했을 때도 방송이 들고 일어나서 탄핵을 비판하니까 국민들이 전부 속았지 않습니까.
최근 통계를 보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 국민들을 속이려면 간단해요. 방송과 정권이 짜고 일주일만 엉터리 정보를 준 다음에 여론조사를 하면 정권의 의견에 지지하는 사람이 50%가 넘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대북송전 250만㎾를 공짜로 대북송전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돈이 얼마나 듭니까. 10년이면 25조 원이 듭니다. 25조 원이면 연간 교육예산보다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해야 한다는 사람이 60%가 넘는다는 겁니다. 아니, 자기 호주머니에서 세금이 나가서 김정일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런 걸 찬성하는 사람이 국민의 60%가 되면 이런 국민들이 과연 적화통일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느냐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이상은 제가 가장 어둡게 본 겁니다.
물론 긍정적인 모습도 있습니다. 요새 親北左翼(친북좌익)들이 하도 엉터리 같은 행동을 하니까 국민들이 ‘아, 이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큰 흐름(勢)이 되려면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유일하게 그런 큰 조직을 가진 게 한나라당인데 이 한나라당도 박근혜씨가 대표가 되고 나서는 김정일 비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250만㎾ 대북송전 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반대를 한 적이 없습니다. 우파 단체라든지 신문이라든지 이런 곳에서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 목소리가 작습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목소리를 내야 되는데도 안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나라당은 지금 반 이상은 좌익 쪽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대북정책에 대한 견제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뭐, 강정구 교수 사건 때 박근혜 대표가 청와대를 향해서 ‘正體性(정체성)을 밝혀라’ 한 마디를 하더니 그 후부터 지금까지 아무 것도 없잖아요. 정체성을 밝히라고 했을 때 청와대에서 답변이 안 나오면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서로 무시해버리고 그냥 말 한 마디로 끝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한나라당의 정치는 대변인과 대표, 둘이서만 정치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참 난감한 문제입니다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뭐냐하면 국민들이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싸우기 위해서는 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요새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만 싸우는 단체가 생기려면 우리 국민들이 ‘아, 이러면 망하겠구나’ 하는 느낌을 빨리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벼랑에 한 번 서봐야 합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뒤로 가면 추락이다, 이젠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는 이런 인식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개구리를 삶을 때 서서히 물을 데우면 나중에 삶혀 죽습니다. 서서히 뜨거워지니까 죽을 줄도 모르고 가만히 있다 죽는다는 겁니다. 赤化(적화)도 그렇게 진행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적화 진행이 대략 30도 정도 된 거 같습니다. 이게 60도나 70도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죽습니다. 30도가 될 때까지 국민들 대다수가 ‘아, 이건 내 문제도 아니고 난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겠다’ 이러다보니까 악랄하게 잘 조직된 小數가 대한민국을 30도 정도 기울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70도 정도 기울게 되면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하여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게 어디까지 기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싸우기는 싸워야 되는데 어떻게 싸워야 하느냐를 가지고 저와 다른 여러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2007년 선거가 있느냐 없느냐, 선거가 있다 하더라도 우파 단일화가 되느냐, 애국세력, 자유진영에서 단일후보가 나오느냐 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2007년 선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는 게 좋을 겁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충청도 사람들입니다. 2007년도 대선은 충청도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 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이게 이상합니다. 요새 이념문제, 젊은 층 문제가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해도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면 표의 70, 80%가 지역성향으로 결정됩니다. 우리가 2002년 촛불시위를 보고는 젊은 사람들은 전부 노무현을 찍었을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결정적인 원인은 호남 사람들과 충청도 사람들이 손을 잡은 겁니다. 그러니까 지난 두 번의 좌파 정권은 호남 정권과 충청도 표의 연합으로 가능했던 겁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게 DJP연합, 1997년에는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입니다. 연합이 아니라 야합이죠. 그리고 2002년 선거에서는 충청도로 수도를 옮긴다는 것, 행정수도라고 거짓말해서 수도 옮긴다는 공약을 내세워 집권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뭐가 있었느냐. 우파 세력의 분열입니다. 1997년에는 이인제가 한나라당을 뛰쳐나오고 2002년에는 정몽준이 있었습니다. 정몽준이라는 사람은 우파 아닙니까. 기업인 출신이니까요. 그런데 좌파와 손을 잡고 후보 단일화를 합니다. 이회창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끌어안아야 할 정몽준과 손을 잡을 생각도 안했습니다. 이런 행동들로 충청도 표를 놓쳤습니다.
충청도는 지금 어떻게 돼 있느냐. 자민련과 심대평 충남지사가 만든 국민중심당이라는 당이 있습니다. 곧 충청도를 대표하는 정당이 하나 나올 겁니다. 국민중심당의 강령을 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안보를 중시하는 강령을 집어 넣어놨습니다. 그것만 보면 조금 안심이 되는데 또 모르죠. 선거 때가 되면 어느 쪽으로 갈지.
그래서 충청도 분들의 애국적인 결단, 이게 다음 2007년 선거가 이뤄진다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자민련이나 충청도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도 없고 대안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남북한이 통일 의지가 누가 더 강한가를 가지고 대결하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줄기차게 적화통일의지를 가지고 남한을 밀어붙이고 있는 반면 남한에서는 자유통일을 하자는 사람도 없고 흡수통일을 하자는 소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일의지에서는 남한이 지고 있습니다.
삼국통일에서 신라가 이긴 건 지도부가 大耶成(대야성)의 패전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실력을 갈고 생존의 몸부림을 치다보니까 삼국통일이라는 果外(과외)의 소득을 얻게 됐던 겁니다. 이처럼 북한도 살아남기 위해서 핵무기도 개발하고 국제사회에게 앵벌이도 하고 정상회담을 가지고 5억 달러 받는 장사도 하는, 이렇게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어느새 남한에 자기편이 생긴 겁니다. 남로당 정권이 들어선 겁니다. 과외 소득이라는 겁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7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북한도 망할 지경까지 몰렸던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게 진짜 신라 같은 북한, 백제 같은 남한의 形局(형국)이 돼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항상 양쪽으로 보자는 것은 대한민국은 절망과 희망, 적화와 선진화가 공존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두달 사이에 우리 국민들의 覺醒(각성)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강정구 교수 사건과 맥아더 동상 사건, 이 두 사건 때문에 보통 얌전한 사람들도 ‘이건 이래서는 안 되겠다. 뭔가 해야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이것을 조직화해서 행동으로 만들 수 있는 정당이 한나라당인데 지금 저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한나라당 비판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은 체제를 지키겠다고 선언한 정당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삼국통일 이야기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그때와 비슷한 시기에 지금 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유 통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의 우파세력이 잘못하는 게 있어요. ‘통일하면 뭐 잘 살게 되느냐, 지금대로 사는 게 낫지’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좌파들에게 우리가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죠. ‘우리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기회가 왔을 때 통일을 해야된다. 이게 민족애다’ 말이지, 이런 것 없이 ‘통일비용 많이 드니까 통일하지 말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판판이 좌익들의 공세에 당하게 돼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다소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쟁을 각오하더라도 통일을 해야 합니다. 통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좌파와 대결할 때 통일의지를 뺏겨버리면 다 뺏기는 겁니다. 민족이라는 말을 좌익들이 쓰니까 우파에 있는 사람들이 민족주의는 고리타분하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좌익들에게 당하게 됩니다. 민족주의는 고리타분한 게 아닙니다. 민족주의는 좋은 겁니다. 북한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가짜고 우리가 말하는 게 진짜 민족주의죠. 해방 후에 자유진영은 민족진영이라고 그랬고 북한 편을 든 사람들은 좌익 진영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민족이라는 말도 우리가 도로 찾아와야 됩니다. 우리가 좌익으로부터 찾아와야 할 게 많아요.
이제는 자기 나라의 운명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정주 시인이 쓴 신라에 대한 시, 또 그분이 생각하는 신라 사람들은 '이 국토의 주인은 우리다'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신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하고 달라서 ‘이 국토의 주인은 우리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특히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한반도, 대한민국의 주인은 우리’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에 따른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의무를 다해야 하는 짐을 지게 됩니다. 그냥 남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백성입니다. 백성과 국민의 차이가 있습니다. 국민은 싸우는 사람이고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고 주권자인데 백성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서울 강남에 사는, 체제가 무너지면 잃을 게 가장 많다는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뭘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는지, 시청 앞에서 집회할 때 나온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 일을 안 한다고 하면 김정일에 자기 것을 갖다 바치는 것이죠.
잃을 게 제일 많은 사람들부터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누가 대신 지켜줍니까. 과거에는 대신 싸워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경찰, 검찰, 군대가 대신 싸워줬지만 그 사람들이 이제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지켜야 되는데도 그렇게 안 하고 있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가 지키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가 안 지키는 데 누가 지켜줍니까. 그러니까 잃을 게 많은 사람부터 싸워야 합니다. 원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는 싸워서 쟁취한 겁니다. 이렇게 공짜로 얻는 게 아닙니다. 토마스 제퍼슨의 이야기했던 대로 민주주의라는 것은 독재자와 애국자의 피로 자라는 나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삼국통일 기행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蛇足(사족)처럼 우리 민족사에서 세 번째 통일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상미회 회원들만이라도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교훈을 배워서 남북통일로 가는 과정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게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십시오. 특히 아들딸들에게 이야기 해주십시오.
우리 주변부터 챙겨야 합니다. 자기 아들은 한총련으로 만들어 놓고 세상을 개탄하면 뭐합니까. 언론도 부장이라는 사람들이 자기 부하 직원들은 전부 친북좌파적인 기자들로 채워 놓고는 그 위에 얹혀가지고 후배 기자들이 이상한 기사 써오면 고치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부장들 때문에 지금 한국의 언론이 이렇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부하가 있는 사람은 부하를 챙기고 가족이 있는 사람은 가족을 챙기고 선배는 후배를 챙기고 이렇게 자기 주변부터 챙겨야지 남을 미워하고 탓할 건 없는 겁니다. 이야기가 길어서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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