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스톤 가는 길

인생과 여행(2)/밤이 되니 여기저기서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데 꼭 포격전이 오가는 戰線 한가운데를 달리는 것 같았다.
1986년 2월호 月刊朝鮮에 나는 '한국내 美CIA'라는 기사를 썼다. 미국 대사관 안에 있는 CIA 서울지부의 내막을 추적한 글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막후에서 비밀스러운 역할을 했던 역대 지부장과 조직에 대해서 쓴 최초의 보고서였다. 미국 대사관이 조선일보가 아니라 張世東 안기부장에게 항의를 했고 나는 안기부 수사국에 연행되어 이틀간 조사를 받은 뒤 회사에 사표를 내야 했다. 4개월 놀다가 다시 복직했다. 이로써 나는 朴, 全 정권 때 세 번 목이 잘렸다가 살아난 기자가 되었다.
1987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한 해였다. 6월 사태, 6.29 선언, 개헌, 노사분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12월 大選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釜馬사태와 10.26 사건을 다룬 '有故'(한길사)와 '12.12 사건-鄭昇和는 말한다'(까치)였다. '有故'가 일본에서 '한국을 震感시킨 11일간'(JICC)이란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다. 1988년 초, 출판사의 초청으로 일본에 간 김에 필리핀까지 여행했다. 필리핀은 그 2년 전 마르코스를 '피플 파워'로써 몰아낸 다음 아키노 여사가 대통령으로 재직중이었다. 마르코스의 집무실과 부인 이멜다 여사의 신발장은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호사와 빈곤이 공존하는 필리핀이 파키스탄과 함께 1960년대 초반엔 우리가 따라잡고자 한 모범국이었다.

1989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다른 회사 기자들과 함께 40일간 미국을 여행했다. 10여개 주에 스물 몇 개의 도시를 돌아다녔다. 나이아가라 폭포, 그랜드 캐년, 옐로우스톤 파크, 요세미티, 캘리포니아 서해안인 빅 서 등 미국을 대표하는 경관들을 다 구경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교포를 위한 한국어 방송국 '라디오 코리아'를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가수 이장희 씨는 극성 여행가였다. 이장희 씨와 그의 친구 두 사람,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캠핑 카를 몰고 북쪽으로 약 1500km 떨어진 옐로우스톤 파크를 향해 출발한 것은 9월 하순이었다. 이장희씨와 그의 친구 둘이서 번갈아 운전을 맡았다.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서 道路 지도책을 펴놓고 여행에 따른 이런저런 정보를 브리핑해주는 역할이었다. 폭스바겐사에서 만든 이 캠핑카에는 주방시설과 4인용 2층 침상까지 마련돼 있었다. 운전대를 넘겨준 사람은 침대로도 사용하는 뒷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어쓰고 잠을 자곤 하였다.

우리 일행은 네바다 남부 사막을 가로 질러 한 다섯 시간만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아리조나→유타주로 접어들었다. 사막과 황무지를 달리는데 천둥번개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니 여기저기서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데 꼭 포격전이 오가는 戰線 한가운데를 달리는 것 같았다. 암흑을 가르며 하늘에다가 하얀 선을 쭈빗쭈빗 그리는 번갯불은 우리 캠핑카에겐 길을 밝히는 조명탄이기도 하였다. 직선으로 쭉 뻗은 國道에는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가끔 바다속의 孤島(고도)와 같은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운전의 명수이기도 한 이장희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일종의 야간비행을 즐겼다. 고향 이야기, 연애 이야기, 정치 이야기, 노래 이야기 등등 번갯불 피워놓고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유타주의 솔트 레이크 시티를 약 100km 앞둔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모텔에 들었다. 그때가 밤 12시쯤, 캠핑카를 마당에 세워놓고 차속에서 하얀 밥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누가 한국사람 아니라고 할까봐?!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또 줄기차게 달려 오전 9시쯤, 라스베이거스를 떠난 이후 최대의 도시인 솔트 레이크 시티에 도착하였다. 힐튼호텔 카페에서 우아한 아침을 먹고 몰몬교 총본산 교회를 구경한 뒤 다시 출발했다. 유타주-아이다호-와이오밍주로 北上하여 우리는 마침내 저기압대를 따라내고 청명한 하늘 아래로 빠져나왔다. 옐로우스톤 파크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쯤이었다. 강가 숲속에 차를 세우고 저녁을 해먹는데 송아지만한 산양떼가 강물을 따라 첨벙첨벙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옐로우스톤 파크는 미국의 국립공원 제 1호이다. 미국에 도착하니 '옐로우스톤 파크를 맨 나중에 구경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옐로우스톤 파크를 먼저 보면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년이 시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말이 공원이지 그 면적이 경상남도보다 더 넓은 옐로우스톤 파크는 미국 自然美의 종합판이다.
나이아가라만큼 크지는 않지만 엄청난 폭포가 있고, 그랜드 캐년만큼 크지는 않지만 더 정교한 계곡이 있으며, 해발 3000m를 웃도는 山頂에 드넓은 호수가 있고, 여러 군데서 온천수가 솟아나고 화산 분화구 비슷한 곳 여기 저기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게 꼭 外界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몇 년 전에 큰불이 나 숲의 45%를 태웠다. 숯덩어리가 된 새까만 숲이 수십km를 뻗어 있었다.

장난기와 호기심과 모험심이 남다른 이장희 씨는 옐로우스톤 파크에 온 것이 두번째라고 했다. 그는 아주 으시대면서 별들만 반짝이는 캄캄한 밤중에 우리 일행을 모처로 안내하였다. 타월을 하나씩 들고 냇가의 샛길을 따라 걸어서 도착한 곳은 노천 온천이었다. 우리는 어둠에 감사하면서 옷을 홀랑 벗고, 섭씨 40도는 될 것 같은 냇물로 들어갔다. 찬물과 온천물이 뒤섞여 이쪽으로 옮기면 온탕, 저기로 움직이면 냉탕이었다. 우리 네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주먹만한 별들이 툭 치면 와르르 떨어질 것처럼 박혀 있었다. 우리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고향을 생각하며 불렀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근사한 목욕을 하고 나오는데 캠핑 차 앞에서 공원 경찰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설명했다. 몇 달 전에 이 부근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고. 야간 入浴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경고 푯말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더니 외국인인 두 사람을 빼고 즉석에서 벌금을 물리고 돈을 받아갔다.


(계속)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