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시코츠코 호수 紀行

이 호수와 마루코마 여관에 대한 여행자들의 평은 대체로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다"는 쪽이었다.
지난 주 일본 북해도를 여행하면서 시코츠코 호수를 제대로 구경했다. 新치도세 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다. 도야 호수와 함께 이 호수 주변은 일본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야 호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만 시코츠코 호수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3년 전 고품격 여행사인 尙美會가 이 호수변의 한 여관형 호텔을 발견했다. 마루코마(丸駒) 여관이다. 시코츠코 입구의 작은 여관들을 제외하면 마루코마가 이 넓은 호수변의 유일한 호텔이다. 약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졌다. 일본 공무원들은 시코츠코 호수를 자연상태에서 보존하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다. 기득권을 인정하여 이 여관만 인정하고 다른 경쟁업소를 不許한 것이다.

방이 50여개인 이 여관에는 1990년에 스웨덴의 칼 쿠스타프 16세가 묵고 간 적이 있고 일본의 황족들이 특히 좋아한다. 이 여관으로 들어오는 눈 덮인 길 옆은 자작나무 숲이다. 하얀 나무가 하얀 눈밭에 서 있으니 더욱 고귀하게 보인다. 북방민족은 자작나무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숭배했다. 이 호수와 마루코마 여관에 대한 여행자들의 평은 대체로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다"는 쪽이었다. 이 여관에 들면 이 넓은 호수가 '내 것'이란 느낌이 든다.

시코츠코 호수는 표면적이 78.4 평방킬로미터이고 주변을 한 바퀴 돌면 40킬로미터. 사각형 호수의 주변은 눈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화산 폭발로 생긴 전형적인 칼데라 호수이고 外輪山이다. 최대 수심은 363미터로서 일본에서 두번째이다. 평균 수심이 265미터이다. 서해보다 깊다. 나라 근방에 있는 비와코라는 호수가 일본에서 가장 크다. 바다처럼 수평선도 보인다. 면적으론 시코츠코의 9배나 되는 비와코 호수에 담긴 물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양이 시코츠코 호수에 담겨 있다.

시코츠코의 담수량은 약210억톤이다. 한국에서 가장 담수량이 많은 호수는 소양호와 충주호이다. 둘 다 27억톤 정도이다. 시코츠코는 소양호와 충주호의 담수량을 합친 것의 네 배란 이야기이다. 일본인 한 사람 당 200톤의 물이다.

시코츠코는 얼지 않는다. 얼지 않는 호수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

마루코마 여관의 노천탕은 인공을 가하지 않는 천연상태이다. 호수면과 비슷하여 호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다. 밤이 되니 반달과 주먹 만한 별들이 근사한 照明을 해주었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니 알몸으로 우주와 마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보는 저 별빛은 수만년, 수백만 년 전에 출발하여 지구에 도달한 것이다. 130억년 전에 빅뱅으로 탄생하여 아직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 그 우주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난 인간, 그 일원인 내가 지금 이렇게 우주속에서 살아 있다. 아침의 日出은 호수면을 붉게 물들인다. 공간이 넓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보다 갇힌 공간인 호수에서 떠오르는 해는 더 매력적이다. 욕탕에서 벌거벗은 몸이 햇볕을 받아 금방 달아오른다. 태양을 도는 지구의 각도가 0.1도만 달라져도 재앙이 오고 인류는 멸종할지 모른다. 우주속의 인간 존재는 기적이다. 그러니 창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 광활한 우주속에서 고등동물은 인간밖에 없을 확률이 높아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태어나선 하루를 살아도 절대로 불평해선 안된다'는 말을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이 맞지 않은가? 좋은 여행은 가끔 인간을 철학적으로 만든다.

근사한 '평화의 댐' 관광


국내 최고 높이 125m의 거대한 댐이 단풍으로 물든 한국판 그랜드 캐년을 가로막고 있었다.


강연을 하기 위해 지방을 찾는 회수가 늘었다. 나로선 목표지를 오고가면서 國土를 감상하는 기회이다. 최근 석 달 사이 충북 단양, 강원 속초, 경북 청송, 강원 양구군을 다녀왔다. 지방으로 나가면 대한민국의 저력과 발전상을 더 실감할 수 있다. 우선 도로망이 대단하다. 고속도로도 직선으로 뻗어 있는 구간이 길고 터널도 많은 데 4, 5km짜리도 있다. 한적한 고속화 도로를 달리다가 보면 굳이 이렇게 투자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사이 농촌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중이다. 아기울음과 어린이들의 노는 소리도 끊어진 지 오래이다. 모처럼 아기가 태어난 마을은 경사난 듯하다고 한다. 작은 교회에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긴 채 나타나면 교인들이 몰려들어 아기 구경으로 법석이란 것이다. 농촌에선 아기들이 그야말로 희귀동물이 되었다.

농촌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가구당 1.3~1.5대이다. 자가용이 없으면 농촌생활은 불가능하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데 걸어서 가야 하니까.
농촌마다 인구가 줄어도 공무원수는 줄지 않는다. 인구가 약 2만 명으로 울릉도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작은 楊口郡의 군청공무원은 약 400명, 경찰서 직원들은 약 200명이다. 농촌일수록 행정서비스가 좋다.

농촌마다 회관이 많고 시설도 좋다. 郡단위로 주민들을 상대로 '郡民대학' 같은 것을 열고 서울에서 좋은 강사들을 초빙하여 듣는다. 여기 모인 분들의 옷차림, 질문수준, 청강태도는 서울과 다름 없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며칠 전 楊口에 가서 민족통일협의회 주최의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오는 길에 평화의 댐에 들렀다.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있는 북한강 상류 계곡을 막은 이 댐은 보는 이의 숨이 막힐 정도로 거대하다. 댐의 높이가 125m로서 국내에서 가장 높다. 댐의 길이는 601m. 최고 저수량은 26억3000만t이다. 이 평화의 댐 상류 36km 지점에 북한이 지은 금강산댐(임남댐)의 최고 저수량은 26억2000만t이다. 북한의 금강산댐이 무너지더라도 평화의 댐만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평화의 댐은 사연이 길다. 全斗煥 정권이 북한 금강산댐 水攻위협을 과장했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평화의 댐 현장에서 알아본 바로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 全斗煥 정권은 할 일을 했다. 金大中 정부가 2002년 평화의 댐 확장, 증설 공사를 시작함으로써 그 점을 인정했다.

1986년 10월21일 북한은 금강산발전소 착공을 발표했다. 한 달 뒤 全斗煥 정부는 북한의 水攻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평화의 댐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1987년2월28일 1단계 공사를 시작하여 1989년 5월27일 높이 80m의 댐을 완공했다. 북한은 1992년 1월26일에 상류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고, 1999년에 본댐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북한은 임남댐(금강산댐) 1단계 공사를 2000년 10월에 완공했다. 댐의 높이 88m였다.

북한측은 본댐 공사를 계속했는데 우리 정보기관은 공사가 아주 부실하여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2002년 1월엔 댐에서 훼손부위가 발견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9월3일 평화의 댐을 확장하기로 하고 2단계 공사에 착수했다. 북한측 임남댐은 2003년 12월에 완공되었다. 댐 높이는 121.5m이다. 평화의 댐 2차 공사는 올해 6월15일에 준공되었다. 이젠 금강산댐이 무너져도 우리는 발을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평화의 댐 공사에 지금까지 약 4000억원이 들었다. 역시 국방엔 돈이 들어간다.

이런 경과를 보면 全斗煥 정부가 북한의 水攻위협을 과장하여 짓지 않아도 될 평화의 댐을 지었다는 모함은 헛소리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초기 대응이 부족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 댐의 높이를 45m나 더 높여야 했을 정도이다. 요사이도 좌익들과 일부 어용언론은 全斗煥 정부가 금강산댐이 터지면 여의도의 63빌딩이 물에 잠긴다는 과장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평화의 댐을 짓지 말았어야 했을 댐으로 비하하곤 한다. 사소한 문제점을 트집잡아 본질을 부정하려는 선동이다.

평화의 댐은 콘크리트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크기는 피라미드 두 개를 붙여놓은 규모이다. 협곡을 차단한 댐이라서 더 장대하게 보인다. 주변의 산들은 단풍으로 물들었고 깊은 계곡의 맑은 물은 '아, 이곳이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구나'하는 탄성이 나오게 했다. 서울에서 평화의 댐까지는 약3시간 30분 걸린다. 하루를 시간 내어서 이곳에 도착한 뒤 주위를 느긋하게 즐기다가 돌아가면 좋은 안보관광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깊은 산골이다. 도로는 잘 닦여 있다. 지난 10월 초의 폭우로 산사태가 난 곳이 몇 군데 있으나 막힌 곳은 없었다.

이 깊은 산과 계곡이 품은 물이 춘천방향으로 흘러내리면서 화천댐, 소양강 댐, 청평 댐, 팔당 댐을 거쳐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으로 커지는 것이다. 이 산악지대는 한강의 水源이자 2000만 수도권의 배후지이다. 이 산들이 없으면 2000만 명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물은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夕陽 때 화천군의 해산(日山)전망대에 서 보았다. 해산은 1190m 산이다. 주위의 깊은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들렸다. 滿山紅葉(만산홍엽)이었다. 화천군에서 관리하는 전망대는 쓰레기 투기장으로 변해 있었다.

양구에서 화천을 거쳐 춘천-서울로 돌아올 땐 밤이었다. 여러 호반을 지나왔다. 전깃불에 비친 호수의 물빛은 항구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렇게 근사한 대한민국을 공짜로 먹어치우려는 자들이 청와대와 주석궁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평화의 댐 사무소는 033-480-1532, http://pyeonghwa.kwater.or.k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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