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사람들은 城을 쌓았다. 성을 보면 자연스럽게 전쟁을, 또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남한산성은 인조의 三田渡恥辱을, 행주산성은 행주치마를 두른 아낙들의 애국심을, 서양의 성은 철제갑옷의 기사를, 일본의 성은 긴 칼을 휘두르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일본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城구경이다. ‘아름다운 석축(石垣)위에 하늘 높이 솟은 天守閣’이라는 성에 대한 지방도시의 홍보자료를 쉽게 대하게 된다. 히메지죠(姬路城)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성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가장 일본을 잘 나타내는 일본만의 건축이다. 성을 통하여 우리는 일본의 戰國時代와 에도(江戶)시대의 역사, 사회, 문화와 건축을 관찰할 수 있다.
城은 山城, 丘城, 平山城, 平城, 海城, 그리고 水城으로 구분된다. 이렇게 漢字로 나열하고 보면 자연스럽게 각각의 성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역시 表意文字의 힘이 아닌가 느껴진다. 城을 해자하면 ‘土+成’ 즉 ‘흙으로 이루어진다’가 된다. 토벽을 만들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영지를 지키는 시설이다.
축성은 나와바리(繩張)로부터 시작된다. 끈을 둘러쳐서 城地의 경계를 정하고 건물의 배치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향력의 범위’를 뜻하는 낱말로 흔히 사용하는 일본어이다. 나와바리의 기본은 전투시 사령부가 되는 혼마루(本丸)를 중심으로, 城主의 거관이 있는 니노마루(二之丸), 家臣들의 거주지가 마련되어 있는 산노마루(三之丸)등 성곽의 구획이며, 해자, 출입구, 통로 등이 그에 포함된다. 성곽구획의 모양에 따라 동심형의 륜곽식(輪廓式), 연속배치의 연곽식(連廓式), 계단모양의 제곽식(梯廓式), 나선형의 나선식(螺旋式)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성이라고 하면 天守閣과 석축(이시가키=石垣)을 떠 올린다. 천수는 城의 중심부에 지어진 제일 높은 건물로 성의 상징이며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天守는 天主, 殿主, 또는 殿守 라고도 하였으며 성주의 주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어로는 모두 ‘텐슈’라고 같은 발음으로 읽힌다. 당초에는 군사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근세에 와서는 권력과시의 상징물이 되었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가 천하통일 사업의 일환으로 오미(近江)의 아쯔찌(安土)성에 5層7階의 천수를 만든 후 그것이 천수건축의 표본이 되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웅대하고 화려함은 소설 대망(원제:德川家康)에서 작가가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천수도 형태에 따라 단독건물인 독립식 천수, 대천수와 소천수 또는 부속건물과 연결시킨 연결복합식 천수, 대천수와 여러 개의 소천수를 복도(渡櫓)로 묶은 형태의 연립식 천수로 구분된다.
천수각이 없으면서도 성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석축(石垣)이다. 방어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던 석축은 차차 견고하고 영구적인 근세성곽으로 발전되었다. 석축의 구배는 지반에 따라 결정되며 어느 정도의 높이와 곡선이 필요하다. 이상적인 구배는 合竹扇을 폈을 때의 외곽선 모양으로, 밑부분이 완만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급해지는 것이다. 자연히 공격하기 어렵고 방어하기 쉬운 아름다운 곡선의 석축이 만들어진다. 이를 ‘선(扇)의 구배’라고 말하며 구마모또(熊本)성이 대표적이다. 임진왜란시 우리를 괴롭혔던 왜군의 선봉장군과 이렇게 아름다운 성을 만들어 낸 匠人이 가또기요마사(加藤淸正)라는 하나의 얼굴로는 도저히 겹쳐지지 않는 것은 우리들만의 감정인지도 모른다. 석축기술의 발달은 일본의 토목기술의 획기적인 발달을 가져왔으며 또한 석축위에 천수각을 비롯한 많은 건물을 건설함으로서 건축기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戰國末부터 시작된 鐵砲의 사용은 활이나 창, 칼 뿐 이었던 전투방식은 물론 방어시설이었던 城과 성안의 건물의 구조와 재료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목조로 된 건물은 벽을 두껍게 하여 구조를 강화하고, 耐火를 위하여 공간은 모래와 자갈로 채우고 외부를 회반죽으로 마감하였다. 건물의 外側은 폐쇄적으로 銃口만을 설치하고, 中庭에 면한 內側은 창을 크게 내는 등 기능과 연계하여 外裝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볼 수 있다. 외벽을 모두 흰 회반죽으로 마감했을 때 아름다운 백악의 天守가 출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중앙의 대천수와 3개의 소천수가 함께 어우러진 대표적인 백악의 천수인 히메지城이 완성되었고, 춤추는 새와 같은 순수하고 화려한 자태가 백로처럼 아름답다하여 시라사기죠(白鷺城)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일본 천하통일 후 도쿠가와바꾸후(德川幕府)에 의한 ‘一國一城令’에 따라 성의 통폐합이 이루어졌고, 幕末에는 200개 이상의 성과 70개 이상의 천수가 남아 있었다. 메이지유신이 성공하자 ‘과거 봉건시대의 쓸모 없는 유물이며 구체제의 상징’이라고 매도되면서 많은 천수각이 파괴되었다. 메이지 유신의 발생지인 야마구치(山口)현의 하기(萩)시에 있는 하기성의 천수각도 메이지 유신의 핵심 주역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현재는 전국시대의 목조천수가 남아 있는 곳은 전국에 12개에 불과하며, 마루오카(丸岡)성을 제외하면 모두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의 것이다. 1931년 시민의 헌금으로 부흥천수 제1호인 오사카 성의 천수각이 콘크리트조로 복원됨과 더불어 각지에서 천수각 복원의 붐이 일어났다. 이후 목조가 아닌 콘크리트조로 복원된 천수각은 그 수가 40에 달하고 있다. 尙美會 여행을 통해서 찾게 되는 일본의 城들은 가급적 복원된 城보다는 오리지널城(木造天守閣)을 찾고 있다.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파괴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고 단절시키려는 무모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여기서도 읽을 수 있다.
(尙美會 이사)
고품격 여행의 본산 尙美會: 02-734-1245
일본 城 이야기
- 夫大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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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12, 17: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