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일주일간 머물다가 어제 저녁 김포공항에 도착, 서울시내로 들어왔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서울과 도쿄의 隔差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격차감은 서울에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무디어진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도쿄의 시각으로 비교하게 되지만 곧 서울의 시각, 즉 비교대상이 없는 내부적 시각으로 돌아간다.
우선, 서울의 거의 모든 건물들이 도쿄에 비하여 작고, 허술하고, 美的인 면에서 떨어진다.
도쿄에선 지난 10년간 都心 재개발과 대규모 건축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롯퐁기 힐, 미드 타운 등 세계적인 高層복합건물들이 수십 개 들어섰다. 롯퐁기 힐은 54층의 主건물을 중심으로 하여, 쇼핑센터, 공원, 호텔, 아파트, 방송국, 미술관, 전망대 등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상주 인원이 수만 명일 것이다. 신도시 하나를 수직으로 올리는 개념이다.
작년 촛불亂動이 한창이던 5월말 한때 보수신문이라고 일컬어지는 편에서도 불법시위대를 편들고 정부를 비판하는가 하면 경찰의 온건한 진압까지 강경진압이라는 식으로 이상하게 나온 적이 있었다. 李明博 정부가 계속하여 사과하고 한나라당까지 경찰의 진압을 나무라고 깽판꾼들을 편드는데다가 난동세력이 집중적으로 보수신문 기자들을 괴롭히고 광고주들을 협박하고 전화를 걸어 겁을 주니 武力을 가진 것도 아닌 신문이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自殺 이후에 벌어지고 있다. 언론은 맨첨 이 기사를 '사망'-'자살'이라고 보도하다가 '서거'로 바꿨다. 곧 인터넷에 '추모란'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애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형용사가 동원되었다. 보수신문들을 포함한 언론은 곧 感傷무드로 전환하였다. 보도문장에서조차 언론의 생명인 정확성, 객관성, 공평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와 여당도 이런 물결에 가세하였다. 법무장관이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종결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정부가, 가족을 설득, 국민장으로 치르도록 노력중이란 기사도 나왔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왕성하게 인터넷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보도문에선 死因도 밝히지 않는 '서거'라는 표현은 적당치 않으니 '자살'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더니 일부 기자라는 이들까지도 욕설대장들인 극렬 네티즌들과 합세하여, 내가 과격한 표현을 했다고 비방하기 시작하였다.
joins.com에서 나의 글을 옮겨 실었는데, 의외로 내 편을 드는 이들이 많았다. 내 편을 드는 글은 논리적이고 나를 비판하는 글은 거의가 욕설이었다. 유효한 글을 기준으로 하면 내 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런 건전한 국민들의 의견은 놀랍게도 보수신문에서조차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지금 신문과 방송의 국민장 관련 보도의 자세는 언론의 그것이 아니다. 정확성, 중립성, 공평성, 공익성, 그리고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자주 비판하는 선정적 자세이다.
우선 국민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인터넷상에서 많이 올라와도 언론은 이를 무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自殺에 대하여도 비판적인 의견이 많은데 언론은 이를 무시한다.
보수인사들의 온건한 異見 제시를 과격한 의견으로 과장하여 공격한다.
이런 보도태도는 애도를 강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보수신문들도 가세하였다.
어제 국민행동본부는 아주 사려 깊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두곳의 신문에서 이 성명서를 광고로 받아주지 않았다. 광고의 책임은 광고주가 지는 것이지 신문이 질 일이 없다. 따라서 광고에 대한 검열은 그 내용이 법률에 위반되거나 미풍양속을 해칠 경우에 한한다.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부분에까지 일부 보수신문이 검열권을 행사하는 것은 언론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명백히 반하는 자기부정적 행동이다.
보수신문들은 깽판세력들의 물리적 공격으로부터 공권력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란 확신을 하지 못한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 그런 공포분위기에 휩쓸리면 언론은 견딜 수 없다. 보수신문들이 이렇게 겁을 먹도록 한 것은 李明博 정부의 책임이다.
이런 개념의 도심 재개발이 성공하는 바람에 舊式(우리나라식이기도 하다)의 신도시 개발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방송국이 이런 재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롯퐁기 힐에는 아사히 TV, 오다이바에는 후지 TV, 아카사카에는 TBS 등등. 신주쿠에 세워진 도교都廳舍도 40층이 넘는 어마어마한 건물이다.
세계에서 국내외의 투자액 및 예금액이 가장 많은 나라가 일본이다. 그 일본의 財力이 불황기에 도시 재개발에 투입되었다. 돈의 실력에다가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과 철저함과 청결함, 그리고 디자인 실력이 가세하니 도쿄가 ‘크고도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도쿠가와 幕府 시절에 이미 인구 100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컸던 도시가 도쿄이다. 2차 대전이 났을 때는 런던, 도쿄, 뉴욕이 세계 3대 도시였다. 지금 도쿄都는 인구가 1300만 명이지만, 인근 요코하마, 가와사키 지역까지 포함한 됴쿄권에는 3500만 명이 산다. 인구 및 생산력에서 세계 최대의 도시권이다.
한국도 수평적인 신도시 개발을 再考하고 도쿄식의 都心복합고층건물에 의한 수직적 재개발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고층복합건물을 하나의 신도시로 보는 개념을 도입하여 개발하면, 교통량, 오염물질 배출량이 줄어든다. 수평적으로 개발하여 자연에 영향을 주는 것보다는 고층화가 오히려 親환경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確證的이다.
도쿄의 고층복합건물들은 모두가 아름답다. 이런 건물이 흉물이 되면 도시의 재앙인데, 디자인에 총력을 다하니 건물을 보고 이용하는 것이 큰 도시에 사는 즐거움이 된다.
롯퐁기 힐과 가까운 곳에 세워진 미드 타운은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씨가 설계하였다. 그는 시고쿠 연안의 작은 섬 나오시마에 地中 미술관을 지은 사람이다. 이 미술관에 가보면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을 때가 있다. 디자인이 경쟁력이다.
서울의 도로는 도쿄에 비하여 울퉁불퉁하다. 특히 步道가 심하다. 도쿄의 步道는 신문로 세안빌딩 앞의 步道와 같다. 세안빌딩은 재일교포 기업인이 일본식 기준으로 지은,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단단한 건물일 것이다. 여자들의 하이힐이 울퉁불퉁한 步道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나는 도시에서 내세우는 ‘디자인 서울’은 공허하다.
도쿄의 지하도, 지하철, 도로는 깨끗하다. 서울은 더럽다. 특히 週末에는 청소부가 쉬는지 더 더러워진다.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건물은 새로 지은 건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러워진다. 도쿄에선 오래 된 건물일수록 빛이 난다. 하도 닦고 갈았는지...
종로의 步道는 노점상 차지이다. 세금 내는 행인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노점상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할 판이다.
불법주차도 마찬가지이다. 거리는 하나의 교육장이다. 이런 무질서와 불법을 일상적으로 보고 자란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킬 리 없다.
도쿄는 계속하여 자신을 개혁함으로써 세계 1등 도시의 위치를 유지해가는데 서울은 방콕을 닮아간다.
도쿄는 조용하고 서울은 시끄럽다. 지하철 안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시위대까지도. 天惠의 조건은 서울이 더 좋은데, 사람이 따르지 못한 탓이다.
도쿄와 서울의 격차가 좁혀져도 따라잡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더 커지고 있으니 문제이다. 서울이 도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一流국가를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분발을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