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방송위원은 15일 방송된 <조갑제의 통일전략>을 통해 최근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파동’을 소개하면서 “민주사회와 독재사회의 차이는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다음 가는 권력을 가진 국무총리라 할지라도 언론과 국민이 비판하면 물러날 수 있다는 것.
| [趙甲濟의 對北방송 오디오] |
그는 “민주국가란 국민들이 지도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는 나라”라고 설명하면서, 민주국가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감시를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 방송위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한 기자가 말대꾸를 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독재’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만약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해 누가 말대꾸나 비판을 했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3대에 달하는 온 가족을 수용소로 보내졌을 북한의 ‘독재’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
계속해서 조 방송위원은 “민주사회는 권력과 언론, 국민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잘못된 길을 갈 수 없도록 충고하는 말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서, 북한에는 그런 기능이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남한과 권력자를 비판했다가는 수용소에 수감되어 살아나올 수 없는 북한의 차이가 오늘날 남북한의 현격한 생활·자유의 차이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대북방송원고 전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갑제 기자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지금 서울에서는 봄이 완연합니다. 이 방송을 녹음하고 있는 서울 강남 태헤란로의 빌딩 바깥으로도 아지랑이가 피어 올라서 뿌옇게 보이고 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뉴스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3·1절에 부산에서 기업인들과 골프를 쳤다고 하는 뉴스입니다. 3·1절에 더구나 독립운동 기념일에, 국가 사정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무총리가 골프를 칠 수 있느냐, 그것도 문제가 있는 기업인들과 함께 칠 수가 있느냐, 라고 언론이 집중공격을 하는 바람에 이해찬 총리가 물러나겠다라고 하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고 민주국가는 국민들이 지도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 언론이 앞장을 서서 권력을 가진 사람,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 사람들의 非行(비행)을 찾아다니면서 폭로하는 것이 직업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국가에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이 아니고 그만큼 감시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박정희 대통령을 주제로 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북한과 비교하기도 하고 한국 현대사를 설명하기도 해 왔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을 취재하면 취재할수록 이 분의 성격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습니다.
박정희라는 사람은 독재자라는 평을 듣고 때로는 철군통치자라는 무서운 평을 듣고 북한에서는 무지막지한 학살자라고 이야기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은 인간 박정희는 참으로 겸손하고 부끄러움을 타고 검소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와 관련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하는 편지를 썼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편지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볼 수가 있고 그 편지를 제가 얻어서 참고로 하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한 번도 대통령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박정희 拜(배), 그러니까 '박정희 올림' 이런 뜻으로 편지를 끝내곤 했습니다.
1978년에 박 대통령은 버스 안내양들한테 겨울이니까 방한복을 한 벌씩 선물로 준 적이 있습니다. 이 방한복을 만들어준 기업체 사장한테 보낸 편지를 제가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대우 무역회사 권태웅 사장이란 분한테 보낸 편지입니다.
<작년 연말과 금년 구정에 서울과 전국에서 근무하는 버스 안내양들을 위하여 따뜻하고 품위 있는 방한 코트와 바지를 제조하여 주시고 특히 바지는 귀사에서 무료로 선사까지 하여 감사하기가 말할 수 없는 바입니다.
어린 나이에 가정형편이 허용되지 않아 상급학교에 진학도 못하고 직업전선에 나와서 고된 일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소녀들에게 조그마한 선물 하나씩을 보내어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할까 하는 뜻에서 귀사에게 부탁을 하였던 것인데 귀하께서 그 취지를 알아주시고 성심껏 협조하여 주신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 물품을 받은 안내양들도 이것을 알게 되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더욱 성실한 마음 가짐으로 자기들의 맡은 일에 성심성의껏 열심히 일을 하리라고 믿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귀사의 더욱 번성하심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1978년 2월 2일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은 특히 아랫사람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한 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친하지 않는 아랫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을 놓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박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 이발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 전용 이발사가 아니고 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직원 전체가 다 이용하는 이발사였습니다. 이 이발사 말을 들어보면 박 대통령은 언제 이발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가 회의 때문에 늦어지면 직접 이발사를 찾아와서 한 십 분 뒤에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아주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양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박 대통령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박 대통령과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더 좋은 평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하인에게 영웅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즉 아무리 영웅다운 사람이라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존경을 받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예외적인 인물입니다. 그 이유는 박 대통령이 인간을 대할 때 겸손하게, 솔직하게, 따뜻하게 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 언론계에서는 대통령의 ‘박치기 사건’ 이란 게 있습니다. 대통령이 기자를 머리로 받은 사건인데 그 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재미있는 비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박 대통령과 김일성·김정일을 한번 비교해 놓고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면 재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시기는 1979년 3월 21일이었습니다. 청와대 경내에 常春齋(상춘재) 건물이라는 것이 만들어져서 대통령이 청와대의 출입기자를 위한 만찬회를 열었습니다. 청와대를 출입하다가 內勤(내근) 기자로 돌아간 기자들도 초대되었습니다. 오후 다섯 시 반쯤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씨와 함께 들어온 대통령은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에 앉았습니다. 이날 식탁 위에는 김포에서 가져온 막걸리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 맥주를 탔기 때문에 한 두 사발만 들이켜도 금방 술기운이 오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대통령이 오기 전에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방안이 연기로 가득 했습니다. 대통령은 거기에 개의치 않고 말하기를 '나는 요사이 담배를 끊어 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서너 갑을 피웠는데 이제는 두 대를 피우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대통령은 또 '나는 담배를 많이 피울 때도 집에 오면 절대로 피우지 않습니다. 금연을 시작한 뒤에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탤런트들이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장면을 보면 또 유혹이 생겨서 골치가 아픕니다'라고 이렇게 금연의 어려움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주로 정치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특히 당시 김영삼 의원이 정부를 비판하고 신민당 총재로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야기하기를, '김영삼이가 지금 이란의 호메이니처럼 될 것으로 보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얼마 전 다녀간 홀부르크도(홀부르크란 사람은 美국무부 차관보입니다) 한국의 정치는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고 자기로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심지어 공산정권만 아니면 한국에서 무슨 정권이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하더군요' 했어요.
이렇게 박 대통령은 말을 꺼낸 뒤에 김영삼 의원이 자신이 국회의장으로 지명한 백두진 씨의 취임에 반대운동을 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 화를 냈습니다.
'백의장이 유정회 의원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유정회 의원을 뽑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만큼 나에 대한 반대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김영삼이가 유신체제를 뒤엎겠다고 나선다면 우리는 '예, 예'하고 손 놓고 있겠습니까? 김영삼이가 지금까지 법을 위반한 것이 일곱 건이나 되는데 신민당 전당대회 전에는 절대로 잡아넣지 않을 겁니다. 김영삼이가 신민당 총재로 당선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물러난 뒤에 김영삼이던 누구든 집권해서 국민이 행복하게 된다면 그때는 언론이 밀어줘도 좋아요. 언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충정에서라면 얼마든지 나를 비판해도 좋습니다.'
당시 백두진 파동에서 야당 편을 가장 강하게 들었던 신문사가 동아일보였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는 姜聲才(강성재)라는 기자였는데 이 사람은 대통령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방패 삼아서. 근데 드디어 박 대통령이 소리를 쳤습니다.
“동아일보 강기자, 강기자 어디 있어?”
강성재 기자가 대답했습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말하기를 “내가 물러가고 김영삼과 잡으면 동아일보가 행복하게 될 것 같애? 동아일보가 그러면 안 돼.”했어요. 강성재 기자는 대통령의 꾸중을 듣고 있다가는 대통령의 비난을 기자가 수긍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서 이렇게 반론을 제기합니다.
'언론 자유가 있어야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굵어 줄 수 있고 아픈 곳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권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동아일보가 야당 이야기를 많이 쓴 것도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쓴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가 나라가 잘 되라는 뜻에서 한 만큼 이점 각하께서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당시 강성재 기자는 40대 초반이었습니다. 40대 초반 기자가 대통령에 대해서 말대꾸를 한 셈이니까 분위기가 좀 딱딱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기자가 화제를 재빨리 돌렸습니다.
“각하, 이제 치안도 정착되었으니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박 대통령은 조금 전에 강 기자에게 핀잔을 주었던 것을 금방 잊어 먹고는 이렇게 농담처럼 대답을 했습니다.
“통행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좋아요. 내일부터 밤 10시로 앞당기지. 뭐”
그래서 좌중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대통령은 술기가 오르더니 자신이 말을 너무 헤프게 했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이건 모두 오프 더 레코드야” 옆자리에 있는 박근혜 씨를 향해 사인을 보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라는 말은 기자들에게 한 말을 기자들이 기사로 쓰지 않는 약속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과 기자들과의 만찬은 저녁 7시 30분쯤 끝났습니다. 대통령이 먼저 정원으로 나가서 기자들을 배웅할 자세를 잡자 기자들이 일렬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평소 대통령은 취해 있다가도 일어날 때는 금방 당당한 자세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날은 좀 많이 마셨는지 몸이 흔들렸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과 악수할 차례가 강성재 동아일보 기자에게 오자 당시 청와대 대변인 임방현 씨가 '동아일보 강성재 기자입니다'하고 새삼 소개를 했습니다. 그 순간 몸이 다소 흔들리던 대통령은 중심을 잡고서 “뭐, 강기자라고?” 하더니 자신의 머리로 강성재 기자의 이마를 들이 받았습니다. 물론 살짝 받은 거죠. 강성재 기자가 어리둥절하게 서 있으니까 박 대통령은 자신의 머리를 만지면서 '얼얼한데'라고 했습니다. 대변인과 딸이 다가와서 대통령을 양쪽에서 부축하여 청와대 본관 쪽으로 모셔 갔습니다.
그 직후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강성재 기자는 청와대 출입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대통령이 화가 나서 머리를 박았으니까요. 그러나 그 열흘 후 청와대 기자단은 다른 일로 상춘재 아래 잔디밭에서 대통령을 다시 만나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물 한 명의 출입 기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자 박 대통령이 정색을 하고 아주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듣자하니 지난번에 내가 동아일보 강성재 기자에게 큰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 자리를 빌어서 강 기자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성재 기자는 그 정도로 가지고 공개 사과까지 하다니 하는 생각으로 좌불안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처럼 아랫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철저했습니다. 술 많이 마시고 돌아와서 아들 지만군의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면 아들을 불러서 어제 밤에는 미안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이 박 대통령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독재 시절에도 기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독재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지 않느냐 이렇게 회고됩니다. 만약 북한 동포 여러분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해서 강성재 기자처럼 말대꾸를 한다든지 비판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당장 본인뿐만 아니라 아들, 아버지, 할아버지 3대를 국가안전보위부 직원들이 와서 트럭에 실어서 수용소에 보내지 않습니까?
민주사회와 독재사회의 차이는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를 국민들이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권력자를 국민들이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사회는 권력자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즉 국무총리란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의 다음 가는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골프를 쳤다고 해서 언론이 비판하니까 물러나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권력과 언론과 국민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잘못된 길을 갈 수 없도록 충고하고 말리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죠.
북한에서는 그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이 잘못 해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그 결과는 정책의 실패로 이어지고 정책의 실패는 여러분들이 못살게 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습니다. 즉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대한민국과 권력자를 비판했다가는 수용소로 가서 살아나올 수 없는 북한의 차이, 그것이 오늘날 남북한의 이런 현격한 생활의 차이, 자유의 차이, 노예적인 생활과 자유민의 생활로 귀결이 됐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좋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해서 여러분들과 만나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 14일에 방송된 조갑제 기자의 방송 원고 전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