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스탈린의 꼭두각시였다”

이런 김일성의 바보짓으로 해서 한국, 미국, 중국인들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당했습니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꼭두각시였다”

조갑제 방송위원은 24일 방송된 <조갑제의 통일전략>을 통해 6.25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을 설득해 일어났지만 결국은 소련에게 이용당한 전쟁이며, 김일성의 어리석음으로 한국, 미국, 중국인들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탈린은 한국 전쟁에서 북한군의 승리를 원했다기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을 희생시키는 것이 소련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

趙 방송위원은 ‘김일성이야말로 외세의 꼭두각시가 되어 동족의 피를 판 매국노’라고 피력하면서 “이런 자가 일으킨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미화하고 그의 원죄를 이어받은 김정일과 손잡고 부시에 대항하자는 민족공조를 외치는 자들이 있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6.25전쟁의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이 필요하지만, 6.25 때 납치된 납북자들과 국군포로, 분단 이후 납북된 모든 사람들을 돌려주는 전제조건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것을 “김정일이 과연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 전제조건이 실현되지 않는 이상 남북한의 긴장상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대북방송원고 전문]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여름입니다. 건강에 모쪼록 조심하십시오. 아마 장마도 올 것이고 폭풍도 올 것이고 태풍도 올 것입니다만 또다시 우리는 희망을 갖고 가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계절처럼 나라의 운명도 때가 되면 반드시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난 5월에는 서울에서 아주 의미있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요코다 메구미라는 여중생이 니가타현에서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이 여성은 자라서 남한에서 납치되어 온 김영남 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 사실이 ‘월간조선’이라든지 일본의 납치자가족회의 조사에 의해서 제기되고, 정식으로 DNA 테스트를 해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즉 김영남 씨와 요코다 메구미는 부부관계인 것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요코다 메구미씨의 부모님이 한국으로 와서 1978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서해안 군산 앞바다에 있는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당시 17세 김영남씨의 어머니와 만나는 장면이 한국 언론에 의해서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가족, 즉 요코다 메구미씨의 가족들은 자기의 딸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요코다 메구미씨가 자살했다고 고이즈미 일본 수상한테 통보를 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김정일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요코다 메구미씨와 김영남씨가 같이 납북되어서 북한에서 부부가 되었고 그 사이에 딸이 생겼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동북아시아에서 김정일이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있을 수 없는 악행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코다 메구미씨의 가족들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남자와 결혼한 것이 참 다행이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이 방송이 나가는 날이 5월 말쯤 될 것 같은데, 이제 곧 6.25 전쟁을 우리가 기억하는 6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950년에 6월 25일에 남침을 했으니까 올해로 5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한국전쟁의 의미를 잘 기억하지 않으면 오늘날의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도 어렵게 됩니다.

저는 월간조선 편집장을 하던 시절인 2002년에 우리나라 도서관에서 중요한 문서를 하나 발굴했습니다. 그것은 1952년에 이승만 정부에서 만든 피살자, 납북자 가족 명단이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6.25피살자, 즉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피살된 한국의 양민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의 숫자는 5만9994명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정이 아직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던 1952년의 기록이 5만9994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납북자, 즉 북한으로 납치된 한국 사람들의 명단도 입수해서 책으로 내었습니다. 책으로 내었더니 아주 두꺼운 두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실려 있는 납북자 명단은 8만2959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 보도가 나간 이후에 가족들이 찾아와서 명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납북자 명단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까지 포함하면 제 계산으로는 납북된 사람은 15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를 것이고 피살자는 약 10만 명에 육박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휴전선 남쪽 즉 대한민국에서만 있었던 일입니다. 북한에서 있었던 살육은 더 큰 규모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6.25전쟁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느냐 하는 데 대한 정확한 통계는 잡기 힘듭니다만 대충 300만 정도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300만의 인명 희생은 오로지 김일성의 만행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김일성이 동족, 같은 민족을 치기 위해서 스탈린과 모택동의 도움을 받아서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全 전선에서 기습을 해서 한국전쟁이라 불리는 동족상잔의 참화를 일으켰습니다.

김일성은 오판을 했습니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을 했습니다만, 트루먼 대통령은 6월 25일 자신의 고향에서 전투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미군을 파병하는 위대한 결단을 내려서 대한민국이 구출되었습니다.

이 6.25전쟁에 대해서 최근에 재미있는 책이 나왔습니다. <조선전쟁의 수수께끼와 진실>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한국전쟁의 배경을 잘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러시아의 ‘아나톨리 바실레비치 토르크노프’라는 사람인데, 모스크바 대학의 국제관계대학 학장이자 동양학과 교수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6.25남침은 스탈린에게 매달린 김일성이 두 차례에 걸쳐서 스탈린을 설득해서 일어난 전쟁으로 되어있습니다. 스탈린은 이 전쟁을 지원하면서 모택동에게 다시 김일성을 지원하라는 이중의 보장을 하게 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스탈린은 6.25전쟁의 정전이 빨리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탈린의 계산은 아주 비정했습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중공군과 북한군을 상대로 고지전을 끌어주면서 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소련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한국전선에 붙들려서 유럽 등 다른 데 신경을 덜 쓰도록 만드는 것이 소련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고지전을 하면서 쌍방이 피를 흘리는 것을 구경하면서 즐겼다는 것입니다.

결국 김일성은 스탈린을 전쟁에 끌어들이긴 했는데 나중에는 그 스탈린이 김일성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아서 2년 동안 할 필요가 없었던 고지전을 지루하게 계속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소련을 이용하려다가 소련에게 이용당한 것입니다. 이런 김일성의 바보짓으로 해서 한국, 미국, 중국인들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당했습니다.

6.25전쟁 중 김일성은 스탈린의 완전한 꼭두각시였습니다. 그러다 1953년 3월에 스탈린이 죽자마자 소련공산당은 그 이전의 스탈린의 방침을 바꾸어서 6.25전쟁을 빨리 휴전으로 가져간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넉 달 만에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일성이야말로 외세의 꼭두각시가 되어 동족의 피를 판 매국노인 것입니다. 이런 자가 일으킨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미화하고 그의 원죄를 이어받은 김정일과 손잡고 부시에 대항하자는 민족공조를 외치는 자들이 지금 북한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기 때문에 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1952년 8월 당시 중공 수상 주은래는 스탈린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스탈린은 모택동이 휴전하고 싶어한다는 의사를 전해받고는 주은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전쟁은 미국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북한은 이 전쟁으로 인명손실 이외엔 전혀 패배한 구석이 없다. 미국인들은 이번 전쟁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고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잘 알고 있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많은 희생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위대한 일이라고 그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북한 사람들을 지원하여 버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스탈린은 주은래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주은래는 스탈린에게 이렇게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 동지들은 새로운 공세를 펴야 할 것이라고 물었는데, 중국 정부는 전략적 공세라면 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스탈린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휴전교섭 기간에는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공세를 펴서는 안된다라고 전해라.”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소련은 북한군이 전략적인 공세를 펴서 이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6.25전쟁에서 스탈린은 유엔군도 이기지 않고, 북한군, 중공군도 이기지 않는 그런 내출혈 상태의 인명소모전을 원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다 스탈린이 죽자 소련 지도부는 쿠즈네초프 특사를 김일성한테 보내서 휴전의사가 있다는 것을 전하도록 합니다. 쿠즈네초프가 김일성한테 그 전달을 한 다음 모스크바로 보고한 전문이 공개된 것이 있습니다. 쿠즈네초프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설명을 듣고 김일성은 대단히 흥분했다. 그는, 좋은 뉴스를 들어서 대단히 기쁘다면서, 이 문서를 더 연구한 뒤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이날 두 번째 회담에서 김일성은 '소련의 조선문제에 관한 제안에 완전히 동의한다. 이 이상 전쟁을 끄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익에도, 전 민주주의 진영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김일성이 소련의 쿠즈네초프 특사에게 실토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바로 김일성의 바보짓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1953년에 되면 그제서야 자신의 전쟁이 중국에도 조선 민족에도 그리고 전 민주주의 진영, 즉 전 공산주의 진영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300만 명이 죽었던 것입니다. 김일성의 오판에 의해서 공산주의자, 북한, 한국 이 세 개의 전 인류가 크나큰 피해를 봤다는 것을 그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문서라고 할 것입니다.

김일성이 이처럼 스탈린의 주구(走狗)처럼 굽신굽신하면서 자신이 일으킨 동족상잔의 유혈사태를 저지하지도 못한 채 질질 끌려가고 있는 동안,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하려 하는 미국의 멱살을 잡고 처절한 자주외교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미국이 휴전으로서 전선을 적당히 봉합한 뒤에 철수하여 한국의 운명을 대륙 공산세력에게 다시 맡겨 버릴 것이라고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휴전에 반대하고 단독으로라도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미국을 위협하였습니다. 그는 이 위협이 공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유엔군이 관할하고 있던 반공포로들을 국군이 몰래 풀어서 내보내주도록 지시했습니다. 미국은 이런 이승만을 달래기 위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고 한국군 현대화 등 많은 지원약속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미동맹은 그 뒤 50여 년 동안 한국의 번영 즉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능하도록 한 큰 울타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미동맹 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는 산업화를 할 때 군사비를 북한처럼 그렇게 많이 지출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물건을 만들어서 미국 시장에 팔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갈 수 있는 곳은 한국도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은 세계사에서 보지 못한 굉장한 성장을 지속하여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한 우상숭배와 김정일 세습체제를 굳히는 바람에 생산성이 전혀 없는 낡아빠진 체제를 부여안고 같이 침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6.25사변을 되돌아보면 비록 56년이 지났지만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끝날 것이냐. 평화협정을 맺어야 되겠죠. 그러나 평화협정을 맺을 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6.25 때 북한이 납치해 간 약 15만에서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납북자들의 생사를 밝혀야 될 것이고 생존자는 돌려줘야 합니다. 김일성이 부당하게 억류하고 있는 국군포로가 수만 명입니다. 그 중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천 명, 수만 명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들을 다 돌려줘야 합니다. 동시에 6.25가 끝난 이후에 납치해 간 수천 명의 어부들이나 한국 사람들, 외국 사람들을 돌려줘야 합니다.

이런 것을 김정일이 과연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없다면 평화협정은 맺어지지 않을 것이고, 남북한의 긴장상태는 휴전체제 속에서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6.25전쟁은 남북한끼리만 싸운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중공군도 개입하고 미군도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16개 국가가 군대를 보내서 자유를 지키고 한국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이 6.25전쟁의 결과로서 일본의 경제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6.25전쟁으로 해서 중공은 대만침략을 포기했기 때문에 대만도 지켜졌습니다. 아시아에서 지금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한민국, 일본, 대만은 6.25전쟁 때문에 큰 이득을 보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6.25전쟁을 계기로 해가지고 미국은 군사비를 증강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소련과의 냉전을 시작하게 되고, 그 결과는 1989년에서 1991년 사이 동구 공산권과 소련이 무너지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입니다.

따라서 6.25때 남침을 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항복하지 않고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리더쉽을 믿고서 버틴 결과로서 세계의 역사가 달라지고 자유가 승리했다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300만의 인명의 희생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6.25를 일으킨 자들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이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 심판의 날이 통일의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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