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書의 자유와 사랑 이야기

(남북대결은) 이웃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기독교와, 자신보다 더 수령을 사랑하라 가르치는 주체 광신교와의 대결입니다.

조갑제 방송위원은 13일 송출된 을 통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김일성·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너의 몸처럼 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북한의 모습은 모든 주민들이 자신들의 몸보다도 수령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주체광신교’ 집단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조 방송위원은 자유의 본질에는 상당부분 이동의 자유를 의미하고, 이동의 자유는 또한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자유는 곧 이동과 다양성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는 것.

그는 결국 남북한의 대결은 자유와 정의, 진실의 대결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이 함께 자유와 정의, 진실을 누리게 될 때가 자유통일이 되는 날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김수연 기자 nksue@hanmail.net

[다음은 대북방송 전문]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서울은 완연한 봄입니다. 최근 며칠 동안 꽃샘추위가 있었습니다만 오늘부터 다시 화창한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북녘 땅에도 봄이 왔겠지요. 이 계절의 순환은 인간사에서도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다음에는 억압의 시대 다음에는, 반드시 자유와 번영의 시대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아름다운 봄날에 북한 동포 여러분과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사이 외손녀와 외손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집사람이 직장에 나가는 두 딸을 대신해서 키워주고 있습니다.

흔히 청춘의 특권과 환희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노년,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가질 수 있는 행복과 특혜를 말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청춘의 순수함과 열정만큼 노년의 성숙과 관조는 아름답습니다. 노년만이 가진 특혜, 그것은 손녀, 손자와 함께 놀아주되 관조하는 시선 즉, 은근히 바라보는 시선. 그런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년의 즐거움은 비밀입니다. 청춘의 연애는 공개된 열정이지만 손자, 손녀와 어울리는 즐거움에 대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좀처럼 선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외손녀 유진이를 본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갑자기 저를 엄습해온 즐거움은 아주 예기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말처럼 손자, 손녀를 보는 재미를 이야기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짜릿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처럼 된다고 하는데 우리 외손녀와 놀 때는 저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진이가 세 살박이면 저는 다섯 살 정도는 되어야 대화가 통하니까요.

두 딸을 키울 때 몰랐던 것을 손녀가 커가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은 애정과 관조와 차이일 것입니다. 부녀 모자간의 애정은 서로 너무 가까이 섞여 있습니다. 애정은 진하게 느낄 수는 있는 것이지만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는 관조, 그것의 편한 즐거움은 더 좋은 것입니다.

손녀를 키우는 할머니가 된 아내를 바라보는 것도 일종의 즐거움입니다. 딸이 직장에 나가니 아침마다 우리 사위가 외손녀를 데리고 와서 집사람에게 맡겨두고 나갑니다. 종일 손녀하고 노는 것이 큰 노동인데도 저희 집사람은 즐거움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샘이 날 정도입니다.

아이의 지각과 체력이 자라는 것은 노는 것을 통해서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새삼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른들도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도 알고 보면 노는 것이며 연극하는 것이 아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진지한 연극은 바로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노는 것은 의도되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놀다가 보니까 배우게 된다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법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바로 놀면서 크고, 놀면서 어른이 되고, 놀면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외손자가 넘어지고 깨어지면서 무럭무럭 커가는 것을 지켜보니, 한 생명이 온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들어가야 되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11명의 아이들을 낳으셨는데 여섯만 살아남았습니다. 아마 이런 비율은 그 시대 우리 앞선 시대의 평균일 것입니다. 아마 지금 북한도 영아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10명을 낳으면 7명 정도가 살아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제 시대 때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아이가 커 가는 것은 결국은 말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쓰는 낱말 수만큼 커가는 것입니다. 그 낱말 수만큼 또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손자는 漢字(한자)를 읽으면서 “날 日(일)”, “물 水(수)”, “흙 土(토)”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1, 2, 3, A, B, C 등 숫자와 영어도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한자를 배워가는 속도를 보면 아주 놀랄 정도입니다. 아이들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생명의 존귀함을 알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외손녀 이외에 저는 외손자도 요새 안아보았습니다. 불과 석 달 남짓 지났습니다. 열흘 전에 생후 110일째 되는 우리 외손자가 드디어 몸을 모로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은 온통 경사가 났습니다. 정석인데 이름이, “정석이가 뒤집었다”라고 고함을 지르고 다닙니다.

몸을 뒤집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최초의 자유를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손자는 몸을 뒤집은 다음에는 한 팔을 제대로 빼지 못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얹은 상태에서 낑낑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외손자의 생애에 있어서 몸을 뒤집는다는 것은 역사적 쾌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최초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심에 의해서 스스로 움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상당부분 이동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평양에서 살기 싫으면, 청진으로 가거나 중국으로 옮겨가서 살 수 있는 자유. 교사로 일하는 것이 따분하면 다른 직업 예컨대, 저처럼 기자로 직업을 바꿀 수 있는 자유. 그 본질은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자유는 또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만들어냅니다. 평양에서 사는 생활과 중국에서 사는 생활은 다릅니다. 교사로서의 생활과 기자로서의 생활은 다릅니다. 인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 자유라는 것은 이동과 다양성에 대한 존경을 의미합니다.

지금 북한은 이동이 거의 멈춘 사회입니다. 사람이 평양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평양으로 옮길 수가 없고 국경을 넘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고 직업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자유가 제한된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성경을 보는 것을 하나의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갈라디아서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이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 사람들을 위해서 쓴 편지 형식의 성경입니다. 갈라디아 지방은 지금의 터키 동부 내륙 지방을 가리킵니다. 이 갈라디아서는 한 마디도 빠뜨릴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논리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갈라디아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갈라디아서 5장1절을 자주 인용하면서 연설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5장1절은 ‘주께서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쓰지 말라’ 라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광복 후 대한민국을 세운 뒤에도 계속해서 싸움박질만 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성경 귀절로서 경고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 갈라디아서 5장은 사실 그 핵심이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 씌어져 있습니다.

예수가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간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간은 자유를 낭비하고 남용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 자유를 육체적 향락을 위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그런 자유를 얻은 인간이 주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방식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의 핵심은 예수 한 사람한테만 종이 되면 따른 모든 분야에서 진정한 자유민이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방종이 아닙니다. 자유는 반드시 법치나 또는 권위가 전제되어야 낭비되지 않고 방종으로 흐르지 않고 무질서로 되지 않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꽃핀 나라는 선의의 권위를 만들어낸 나라입니다. 영국 같은 입헌군주국은 왕이 권위의 상징입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는 대통령이 그런 권위의 상징입니다. 일본은 천황이 국가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왕이나 대통령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역할은 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또 자유와 사랑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갈라디아서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5장 14절에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전체 율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을 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라’고 요약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이면서도 가장 따르기 힘든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이웃을 나처럼 아끼고 돌보고 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김일성, 김정일은 “너의 몸처럼 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의 몸같이 나의 초상화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셈입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불이 나면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탈출한다고 합니다. 이웃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기독교와 모든 주민들이 자신들의 몸보다도 더 수령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주체 광신교! 남북한은 지금 이런 두 종교 집단의 대결이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주류 종교가 되었고 기독교의 이런 인간존중이 바로 대한민국의 헌법에 들어가 있습니다. 결국 남북한의 대결은 자유와 정의와 진실의 대결입니다. 자유와 정의와 진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다 들어가 있고 성경 속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처럼 자유와 진실과 정의를 함께 누리게 될 때가 자유통일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 날로 가는 과정에서는 여러분들의 고생과 한국 사람들의 희생과 용기가 같이 있어야 그 과실을 우리 힘으로 따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다른 화제로 다시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