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사람, 노태우 前 대통령

열심히 5년 임기를 쓰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람이 노태우 대통령이었습니다.

조갑제 방송위원은 5일 송출된 <조갑제의 통일전략>을 통해 남한 내 비판적인 여론이 많음에도 불구, 노태우 전 대통령은 20년 전 대통령 직선제를 선포한 6·29 선언을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趙방송위원은 盧 전 대통령이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며, 변혁의 시기였던 5년 재임기간 동안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대화와 강경책을 겸한 북방정책을 폈으며 항만, 도로, 주택, 철도에 대한 투자로 사회기반을 다지는 등 전환기를 기회로 삼아 국가 대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는 북한에서도 김정일과 같은 학살자가 아닌,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노태우 대통령 같은 사람이 총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임소정 기자 imsowow@naver.com

[다음은 송출된 대북방송 전문]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이라고 하면 북한에서는 어떻게 알려져 있는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서는 비판적으로 보는 여론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 분이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재임기간 중에는 ‘물태우’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퇴임하고 난 후에 비자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구속이 되고 또, 12·12 사건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군부 쿠데타라고 하여 감옥에 가서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사이 이 분은 또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노태우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 자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분의 인터뷰를 담아서 지난 6월에 책으로 만들어 펴냈습니다. 제목은 ‘盧泰愚 육성 회고록’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 책을 낸 이유는, 올해 6월이 의미 있는 달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987년 6월 29일에 있었던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민주화 선언, 흔히 6·29 선언이 한국의 민주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6·29 선언의 배경을 말씀드린다면, 1987년 6월에 우리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통령 선거를 직접 국민이 뽑는 식으로 하자 해서 직선제를 요구를 했습니다. 한 달 동안 전국적으로 큰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한때 군대를 동원하는 계획도 세웠으나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결정이 되어있었습니다. 당시의 헌법에 따라서 간접선거로 하면 아주 안전하게 당선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직선제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연금 중이던 김대중 씨를 풀어서 출마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6·29 민주화 선언입니다.

올해는 6·29 민주화 선언이 나온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6·29 선언 이후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그 전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기능하도록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나라를 만들고, 나라를 지키고, 산업화를 하는 이런 제도를 만드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민주주의가 마지막 단계에 오면 투표를 통해서,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바꾸게 됩니다. 정권 교체의 합리적인 선택, 정권 교체의 평화적인 프로세스가 정착이 되어야 민주주의는 성숙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하고 나서 시작되었지만, 정권 교체를 시작한 역사는 2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비교적 어린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바로 민주 실천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전에 김영삼, 김대중, 학생, 종교인들은 민주 투쟁을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또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6·29 선언이 아주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분이 87년 12월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 때 김영삼, 김대중 씨가 합쳐서 단일후보를 냈으면 둘 중에 한 사람이 당선되었겠지만, 두 사람이 각자 출마하는 바람에 노태우 씨가 대통령이 되어서 군인 출신이 민주화를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아주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군인이라고 하면 아주 흉포한 사람으로 북한에서는 알려져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은 민주 군대이기 때문에 지휘관들이 아주 부드럽고 모범적인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 분은 순하게, 착하게, 열심히 대통령 단임 5년을 국가 발전에 헌신을 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한국의 민주주의라고 하면 김영삼, 김대중, 학생으로 대표되는 민주투사들이 만든 작품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 데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 분들의 공이 컸습니다. 군인들의 공이 컸습니다. 나라를 만들고, 나라를 지켜내고, 산업화하고 민주화하는 이런 전 과정에서 근검절약한 성실한 국민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부드러운 사람 노태우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투사들이 독점해야 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 그리고 선배 세대들,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 공을 나눠 가져도 되는 공동작품인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5년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입니다. 이 5년 동안은 세계사적 전환기였습니다. 즉, 동구 공산권이 무너질 때였습니다. 국내에서는 권위주의 시대가 민주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2중의 전환기가 왔습니다. 1988년에 벽을 넘어서(breaking down the wall)라는 주제가를 내건 서울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 올림픽은 공산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989년에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 공산권이 해체되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 이듬해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었습니다. 1991년 독일이 통일된 다음에는 드디어 소련이 해체됐습니다. 한국도 그 당시 건국, 호국, 산업화에 이은 네 번째 전환기, 즉 민주화 시대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 전환기라는 것은 항상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거나 잘못하면 일대 혼란에 빠져버리기도 하는 위기와 찬스가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위험도 많지만 기회가 더 많은 시기입니다. 역사는 노태우 대통령이 이 2중의 전환기를 기회로 삼아 국가 대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사람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3대 업적을 남겼습니다. 첫째는 민주주의를 실천한 사람입니다. 이분은 1988년 4월 총선에서 국회가 여소야대, 야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여당이 소수당이 되는 그런 사태를 맞이했습니다. 할 수 없이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고 설득하는,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학원이나 기업에서 불법적인 농성, 파업이 발생해도 경찰 투입을 잘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기업과 학교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질서가 훼손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때 질서 속에서 민주화를 할 수는 없었느냐 하는 후회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쟁점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참용기’라는 말을 썼습니다. 참용기라는 것은 참고 용서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주 약하게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약해보이면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나서서 질서를 지키고 불법에 저항을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즉, 대통령이 약해보이면 국민들이 강해진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또한 북방정책이라는 것을 폈습니다. 당시에 동구권이 무너지는 것을 찬스로 잡아서, 공산국가하고 국교를 열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 중국과의 수교였습니다. 중국과 수교한 그 득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느냐, 작년에 한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액이 어마어마합니다. 1200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작년에 북한의 무역액이 30억 달러니까 40배입니다. 40배를 했습니다.

또 우리 민족의 활동 공간을 두 배로 넓혔습니다.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한국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부시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공조하면서 북한을 압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1991년에 남북기본합의서란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남북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잘 정리한 문서입니다. 이것은 김일성, 김정일이 상황이 불리하니까 상당히 양보하고 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잘 되려면 남북관계가 이 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또 이 시기에는 북한이 한 번도 남한에 대해서 도발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일면 강하게 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또 노태우 대통령은 항만, 도로, 주택, 철도 여기에 투자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속철도가 지금 서울에서 대구까지 뚫려있습니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얼마 걸리느냐, 1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그런 속도입니다. 인천공항이라는 거대한 공항이 들어섰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항입니다. 또 가장 깨끗하고 가장 효율적인 공항을 이 때 만들기로 했습니다.

서해안 시대를 열었습니다. 서해안에 도로를 닦고, 공장을 유치하고 해서 요새 과거처럼 경부축선이 아니라, 즉 부산과 서울 중심이 아니라 서해안에 항구가 발전하고 그 주변에 공단이 들어서서 중국과 무역을 많이 하기 때문에 서해안이 아주 활기 있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를 앞당긴 것이 노태우 대통령의 서해안 시대 개막 정책이었습니다.

이처럼 노태우 대통령은 5년 단임 기간 동안에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5년 단임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하겠다고 하다가 취소를 했습니다만, 부드러운 얼굴을 가지고 열심히 이 5년을 쓰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람이 노태우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에서도 이제는 보기만 해도 공포감이나 증오심이 생기는 김정일과 같은 포악한 학살자 말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아주 인자하고, 어떤 면에서는 우직하게 보이는 노태우 대통령 같은 사람이 총서기가 되어서 북한 주민 여러분을 먹고 살리는 문제에 신경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북한에서는 왜 노태우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고 좋은 대화를 나누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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