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이념은 게으른 자의 아편 [2007-07-20 ]
조갑제 방송위원은 19일 송출된 <조갑제의 통일전략>을 통해 성경에서도 옹호하고 있는 자본주의 윤리는 공짜심리를 부정하고 모험을 긍정하며 게으름을 악으로 규정하며 효율성 원리에 충실하다고 주장했다.
조 방송위원은 또한 자본주위 사회에서 부자는 부지런하고 신뢰성이 강해서 돈을 벌게 된 것이므로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며 이와 반대로 게으르면서 위선적인 사람들한테는 사회주의 이념이 아편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가난은 자랑이 아니”라며 공돈으로 잘 사는 김정일 같은 사람들이 성실한 부자들을 도덕성 검증이라는 잣대로 역적으로 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임소정 기자 imsowow@naver.com
[다음은 송출된 대북방송 전문]
북한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울산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광역시인데요.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울산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사는 도시가 됐습니다. 일인당 연간 국민 소득이 4만 달러입니다. 4만 달러라고 하면 실감이 잘 안 나실지 모르겠는데, 북한의 일인당 국민 소득이 저는 한 300달러 내지 400달러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북한의 일인당 국민 소득보다 약 100배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110만 명 되는 도시가 연간 수출액이 얼마냐 하면 작년에 550억 달러였습니다. 작년의 북한의 수출액이 10억 달러였습니다. 그러니깐 북한의 55배가 되는 거죠. 북한 인구의 20분에 1밖에 안 되는 도시에서 북한 수출액의 50배를 수출을 했습니다.
원래 울산은 1962년부터 공업 센터로 지정되어 정부에서 많은 공장을 지었습니다. 현대 중공업, 현대 자동차, 그리고 정유공장 등 한국을 움직이는 큰 공장이 여기서부터 출발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보니깐 공해가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울산을 흐르는 태화강 물이 맑아졌다고 합니다. 연어도 다시 돌아오고 수달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난 한 10년 동안 부자니까 돈을 많이 썼습니다, 이 공해 방지에. 약 4조원, 4조원이면 약 40억 달러가 됩니다. 따라서 경제가 좋아지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환경도 깨끗해진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환경이 엉망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공해방지에 돈을 댈 수가 없습니다. 돈은 이처럼 위대한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29절까지 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탄압받는 사람들만 좋아했다라고 이해하시는 분들한테 아주 충격적인 내용이 여기 들어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종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의 능력에 따라서 돈을 맡기게 됩니다. 제일 능력이 있는 종한테는 5달란트, 이 달란트는 화폐의 단위입니다. 그러니깐 달러라고 봐도 되겠죠. 5달란트를 맡기고, 또 두 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기고 마지막으로 능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에게는 1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자 어떻게 됐느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5달란트를 남겼습니다. 2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1달란트를 받은 이 종은 땅을 파고 그 주인이 맡긴 돈을 묻어 두었습니다. 오래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종들을 불러서 회계를 맞춰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럴 때 5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5 달란트를 더 남겨가지고 10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께서 아주 만족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앞으로 많은 것을 너에게 맡기리라. 그리하여 주인과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2달란트 받았던 사람도 와서 주인한테 보고를 했습니다. 내가 2달란트를 받았는데, 장사를 해서 2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만족해서 또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앞으로 많은 것을 너에게 맡겨서 나와 즐거움에 동참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1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왔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아주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는 데서도 거두는 사람임을 제가 잘 알기 때문에 돈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이렇게 가져왔습니다”라고 보고를 합니다.
그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 데서 거두는 공짜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마땅히 내가 맡긴 돈을 사채업자들에게 맡겨서라도 돈을 남겼어야 됐는데, 왜 그동안에 땅에 파묻고만 있었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이런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가 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자본주의의 윤리의 그 핵심을 말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우선 예수는 사고파는 상행위를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또 공짜심리를 대단히 경멸합니다. 예수는 주인의 입을 통해서 세 번째 종이 주인에 대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종은 주인이 공짜심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오판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 않고도 거두는 사람이라고 주인을 잘못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쫓은 것입니다.
예수는 또 자본주의의 큰 동력인 모험을 인정을 합니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을 칭찬하는 주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설사 손해를 볼망정 돈은 묻어 두어서는 안 되고 돈은 돌려가지고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 하는 점을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1달란트 받고 땅에 묻어 놓고 그냥 한 달란트를 그냥 그대로 갖고 온 종을 책망하는 이유도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기 싫으면 이자라도 놓아야 하는데 그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용서하지 못하겠단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게으른 것을 惡(악)으로 봅니다. 세 번째 종을 문책하는 큰 논리도 그것입니다. 능력이 있으면서 게으른 자는 구제불능이란 그런 뜻입니다. 인간이란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돈을 벎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정신의 뿌리를 받은 자본주의의 윤리다 이렇게 평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도 열심히 잘하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효율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게으른 종의 1달란트를 빼앗은 다음에 5달란트를 가지고 가서 또 5달란트를 남긴 그 사람한테 줘버립니다. 더 잘하는 사람한테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못하는 사람한테는 아예 동정도 하지 않고 빼앗아 버립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방식과 비슷합니다. 박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을 할 때 자립정신이 있어갖고 잘하는 마을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정부가 지원을 하기로 했고 자립정신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고 있는 마을에 대해서는 일체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하여 경쟁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게으르면서 악하고 위선적인 논리를 가진 사람들한테 공산주의 이념은 아편이 되는 것입니다. 게으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는 자칭 평등논리, 계급해방의 논리, 가진 자에 의한 착취라는 이 가상의 논리를 만들어 양극화를 선동하는 것, 이게 다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기 위한 사회주위 논리의 허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회주위 논리는 게으른 사람들 마음에는 잘 먹혀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주자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유교의 일종인데 굉장히 교조적이죠. 이것이 조선조를 지배하게 됐는데 이 주자학은 공산주의와 똑같은 논리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즉 상행위를 경멸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선비가 장사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청빈한 인물을 존경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깨끗한 사람. 이런 논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말은 그럴 듯한데 거짓말입니다. 가난하면 깨끗해질 수가 없고 가난하면 인간이 구질구질해지고 범죄를 저지르고 구걸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북한이 가난하기 때문에 오염되고 굴욕적이 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요새 도덕성 검증이란 말이 한국 정치판에는 유행인데 누가 더 도덕적이냐, 부자와 가난한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도덕적이냐 하면 부자가 더 도덕적입니다.
왜 부자가 더 도덕적이냐. 첫째는 도덕성 검증을 한다는 말은 좌파들이 만든 논리입니다. 이것은 누구한테 유리하냐면 무능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남한테 빌붙어 사는 사람을 도덕분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도덕성 검증입니다. 그런데 유능하기 때문에 열심히 돈도 벌고 또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다가 보니깐 작은 실수도 하게 되고 그러나 돈을 많이 벌어서 남한테 좋은 일을 하거나 일자리를 만들어준 이런 사람들을 부패 분자로 모는 것이 이 좌익들이 만든 도덕성 검증이라는 함정인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입니다. 부자는 우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신뢰성이 강하므로 돈을 벌게 된 것입니다. 부자가 공짜로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가 돈을 절대 벌 수는 없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속임수와 뇌물로 부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어떠냐? 신체 부자유자나 특별한 가정 사정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게으르고 무책임하기 때문에, 또 신용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는 남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기업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줍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러나 남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이 또한 돈 많은 사람이 더 도덕적이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하여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일을 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 경우에도 그들이 벌어 놓은 돈 그 자체는 좋은 목적으로 쓰입니다. 이것이 돈이 가지고 있는 자체 생명입니다.
가난은 자랑이 아닙니다. 북한의 경우에 가난은 김정일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의 가난은 본인의 책임입니다. 좌파들은 가난이 자랑이고 가난이 도덕적이라고 속입니다. 청빈이란 말을 악용합니다. 청빈보다도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청부입니다.
즉 깨끗한 부. 정상적으로 돈을 벌고 좋은 곳에 그 돈을 쓰는 것을 청부사상이라고 합니다. 청부사상을 가진 자본주의 국가는 다 흥하고 잘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빌 게이츠란 사람이 돈을 가장 많이 벌었지만 이 사람도 돈을 좋은 데 많이 쓰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고 공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들, 김정일 같은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데 쓰는 남한사람들을 욕을 한다든지 또는 그런 아류의 인간들이 도덕성 검증이란 잣대를 들이 대어 부자들과 성공한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반도 이런 곳에서 열심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도덕이란 말에 속으면 아주 비도덕적인 인간을 지도자로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돈은 힘이 있습니다. 돈은 인간의 운명을 바꾸고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고 돈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다음에도 좋은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서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난은 자랑이 아닙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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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20, 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