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거대한 거짓말의 궁전

김일성 부자는 조작된 역사로 북한 주민들을 속여 하나님처럼 행세해 온 것이 들통날까 두려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갑제의 통일전략]

조갑제 방송위원은 2일 송출된 <조갑제의 통일전략>을 통해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일성, 김정일이 거짓으로 역사를 조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발이 묶여 설사 원한다 할지라도 외부의 정보나 자유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라 분석했다.

조 방송위원은 고려인으로 소련군에 입대해 해방 직전 소련군이 북한을 쳐 내려올 때 소련군에 참전했던 정상진 씨가 월간조선에 기고한 기사를 인용, 북한의 역사조작과는 달리 일제치하로부터 국토를 수복하는 “전투에 참전한 조선인은 정상진 씨 한 사람뿐이었다”며 당시 김일성 및 500명은 인근 소련 마을에서 편히 지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김일성이 훗날 자신의 역사조작을 아는 많은 뛰어난 항일운동가들을 다 숙청해버렸으며 이런 역사말살의 과정으로 인해 넓은 시야를 가진 뛰어난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편협한 시각의 김일성만이 남아 북한이 현 상황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임소정 기자 imsowow@naver.com

[다음은 송출된 대북방송]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서울은 무더위입니다. 보통 30도가 넘는 더위가 시작되었고, 일본에서는 지진도 일어나고 이 한반도 주변이 정치적으로나 재해 면에서 여러 가지로 시끄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여름을 북한동포 여러분께서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북한에서 한국에 오신 분들하고 이야기를 해보면 제가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사실은 소련의 하바로브스크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놀라는 북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마도 김정일의 우상화 작업이 시작된 것이 그런 역사조작, 즉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는 역사조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놀라는 것 같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상옥 씨인데, 이 신상옥 씨가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김정일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김정일 측근들과 저녁 늦게까지 파티에도 참석해보고 하니까 꼭 북한 정권이 마적단 같더라 하는 이야기를 저한테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그게 아주 핵심을 찌른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신상옥 씨는 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김대중의 운명은 김정일한테 달렸고 김정일의 운명은 대한민국에 달렸다.’ 이 분이 저를 만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평양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을 보면 왜 북한이 절대로 개혁-개방할 수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조선혁명박물관이 김일성의 항일혁명을 조작한 거대한 거짓말의 궁전이기 때문에 그것을 한번 보고 나면 김일성 김정일이 자신들을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것 때문에 절대로 나라의 문을 열고 외부로부터 정보라든지 자유라든지 이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하는 것을 실감을 할 것이다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김일성, 김정일이 바로 거짓으로 조작된 역사를 가지고 북한 주민들을 속여서 하나님처럼 행세해 온 것이 개혁-개방에 의해서 들통 나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것 때문에 북한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있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즉 개혁개방의 가장 큰 걸림돌은 김정일이고 김정일은 역사 조작에 스스로 발이 묶여서 본인 스스로도 개혁하고 싶어도 개혁할 수 없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최근에 아주 재밌는 분의 기사가 월간조선이라는 잡지에 실렸습니다. 정상진이라는 분인데 이분은 원래 고려인이었습니다. 소련군에 입대를 해서 해방 직전에 소련군이 북한을 쳐 내려올 때 소련군에 참전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인터뷰를 한 기사를 읽어보니까 김일성에 대한 상당히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서 오늘은 이분의 이야기를 좀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분은 카자흐스탄에 살던 당시에 1942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을 했다고 합니다. 1944년 8월에 소련의 태평양 함대 정보처에서 고려인 병사들을 모집할 때 자원입대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일본 놈들과 싸우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는데 “네가 이렇게 싸우러 나가니까 나는 너의 길을 막지 못한다”고 하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이 정상진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북한에서 선전부의 부상까지 했습니다. 그 당시에 선전부의 선전상은 허정숙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945년 8월 9일에 소련이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대해서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소련군의 만주한반도 작전을 하게 됩니다. 8월 11일 아침인데 이 정상진 씨는 60명의 육전대원들과 함께 어뢰정을 타고 웅기항에 출동을 했습니다. 지휘관이던 소련 대위는 이제는 ‘자네들의 조국은 해방되면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면서 정상진 씨를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정상진 씨의 부대는 웅기에 싸움도 하지 않고 입성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본군대가 다 철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피난 갔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정상진 씨는 이 조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반가워서, “여러분은 오늘 이 순간부터 해방된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8월 12일 이튿날 나진항에 들어갔습니다. 나진항에 들어 갈 때도 큰 충돌이 없었다고 합니다. 소련군의 폭격과 함포 사격으로 항만과 선박들이 불타고 했으나 일본군의 저항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소련군이 들어가니까 조선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들고 나와서 환영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소련군 대위가 이런 일장 연설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을 뿐 어떤 나라를 세울지는 조선 인민들의 의사에 달려 있습니다. 해방된 여러분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은 소련은 이 약속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스탈린이 김일성을 앞세우는 바람에요. 그러나 정상진 씨는 그때 이 소련군의 약속을 믿었다고 합니다.

일단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갔던 정상진 씨 부대는 다시 3월 13일부터 18일 사이에 벌어진 청진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이 청진에는 일본군대의 일개 연대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서로 상당한 전투를 하게 됐습니다.

일본이 항복한 이후에도 일본군대는 계속 저항을 해서 8월 18일까지 전투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소련군이 청진을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정상진 씨는 청진 형무소로 달려가서 정치범들을 석방시키는 임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북한 역사는 김일성이 창건한 조선인민혁명군 예하 500명 부대가 치열한 전투 끝에 웅기를 해방시켰다 등등 이런 식으로 역사를 조작을 하고 있습니다. 정상진 씨는 웅기, 청진 이쪽을 수복하는 과정에 대해서 이렇게 증인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웅기는 물론 나진 청진에서 단 한사람의 인민혁명군도 항일 투사도 혁명가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전투에 참전한 조선인은 나 한사람 뿐이었다” 이렇게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물론이고 500명은 본 적도 없다, 그때 김일성과 500명은 하바로브스크 인근에 있는 웨트스쿠에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 88정찰여단 막사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즉 김일성은 소위 그 해방 전쟁 때 하바로브스크의 소련군 88정찰여단의 병영 안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현장에 있었던 정상진 씨의 결정적인 증언입니다.

그런데 이 정상진 씨가 김일성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해 9월 19일 원산항에 김일성이 소련 배를 타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정상진 씨의 상관되는 러시아 장교가 “김일성 장군이 들어오니까 나가서 환영을 하라” 이렇게 정상진 씨한테 명령을 했습니다. 정상진 씨는 김일성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나이가 지긋한 아주 관록있는 역전의 용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소련군이 장악하고 있던 원산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타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소련군 군복을 입고 가슴에다 적기 훈장을 단 젊은 대위가 배에서 내리면서 첫 마디가 ‘나는 김성주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성주는 김일성의 본명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날 원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추석놀이를 참관한 이후 저녁에 기차 편으로 평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정상진 씨의 증언입니다.

정상진 씨는 김일성 장군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이상한 소련군 대위가 나타났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진짜 김일성장군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김일성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인 항일 운동가가 한 5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은 해방되기 전에는 김일성이라는 명칭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해방된 이후에 김성주라는 이름을 김일성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 정상진 씨는 나중에 숙청이 되었습니다. 이분은 소련파입니다. 그리고 소련 국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북한을 만들 때 여러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자들을 연안파라고 그러는데 연안파 출신들, 그중에는 김원봉, 무정 같은 아주 유명한 항일투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에서 온 소련파, 그리고 김일성과 같이 활동을 했던 빨치산 파, 그리고 남한에서 근거지를 가지고 있었던 남조선 노동당의 박헌영 이런 사람들이 합쳐서 북한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면 김일성이 다 숙청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역사조작을 아는 사람, 즉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을 다 숙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과거의 항일혁명운동을 조작을 하고 과장을 했는데 그 진실을 알고 있었던 소련파, 연안파, 국내파들을 다 숙청하고 자기 패거리들만 남겨놓았습니다.

그자들이 바로 빨치산 활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의 위대한 독립운동역사가 김일성에 의해서 다 말살되었습니다.

그 중에 조선의용군의 역사가 말살되었습니다. 조선의용군은 만주에 살던 조선족이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 참여했었던 김원봉, 최창익, 김무정 같은 사람의 항일독립운동사는 없어져버렸습니다.

이분들의 항일독립운동은 김일성보다도 훨씬 뛰어났습니다. 중국에 남아있던 조선의용군은 일제와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훨씬 큰 부대로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은 완전히 말살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역사말살의 과정을 통해서 북한에서는 해외에서 시야를 넓게 해서 이 세상을 제대로 보는 뛰어난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김일성처럼 아주 불한무식한 사람이 남아서 오늘날 북한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정상진이라는 사람은 지금도 나이게 90인데 아주 정정하게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김일성의 역사조작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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