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는 북한의 제1세대 해외 여행객

"독재자들은 본질적으로 골목 대장입니다. 국내의 무대를 떠나서 광명한 세계로 나가면 초라해진다는 것을 본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하지 않습니다."
조갑제 방송위원은 9일 송출된 <조갑제의 통일전략>을 통해 일본, 미국 등 여러 해외 여행 경험담을 소개하고 한국의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이 여행을 많이 했다는 것과 반대로 김일성, 김정일, 모택동과 스탈린 등 독재자들은 본질적으로 골목대장이기 때문에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광대한 세계로 나가기를 꺼려한다고 분석했다.

조 방송위원은 또한 여행은 일종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1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북한의 제 1세대 해외 여행객들이라며 이처럼 해외로 나가는 북한 사람들이 매년 100만 명씩만 된다면 북한 체제는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정 기자 imsowow@naver.com


[다음은 송출된 대북방송]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장마도 거의 그친 것 같은데, 북한 사정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다행히 남한에서는 비가 적게 오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무더위에 건강을 조심하시고, 하시는 일이 다 잘 되고, 김정일 정권이 끝장나는 날이 하루 빨리 앞당겨지기를 기도하는 심정입니다.

이번에 여행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마 (북조선 여러분들이) 평양에서 지방을 여행하는 것이라든지 지방에서 평양을 여행하는 것이 한국인들이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에 가는 일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원래 독재국가는 국민들이 세상 사정을 잘 알게 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 하기 때문에 국내외 여행을 제한하는 법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 여행단을 이끌고 일본의 야마구찌현 일대를 돌고 왔습니다. 이 지역은 명치유신의 주인공들을 배출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지금 아베 수상을 비롯해서 8명의 수상을 배출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비록 시골에 있지만 어떻게 보면 권력의 센터라고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여행을 했는데, 여행을 하다 보면 버스 운전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관광버스 한 대를 우리가 전세를 냈는데 버스 운전사가 잘 해야 여행의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번에 만난 운전사는 하시모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은 55세의 야마구찌 사람이었는데 일찍 결혼을 해서, 33세 되는 아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관광버스 운전사이지만 정작 자신은 아들이 결혼할 때 하와이에 한번 가본 것이 유일한 해외여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주 지리에 밝고 행동이 민첩하고 운전도 아주 안전하게 했습니다. 이 하시모토씨와 함께 호텔 커피숍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땀을 식히면서 커피 한잔을 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미회 사람들 매너가 정말 좋습니다.”

일본말로 “매너가 스고이데스네”라고 말했습니다. 상미회는 저희 여행단의 이름입니다. 무엇보다도 버스가 시간 내에 맞춰서 정확하게 출발하고 늦는 사람이 없고, 또 쇼핑을 한답시고 물건을 많이 사는 사람도 없고, 버스 안에서는 강연을 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운전사한테는 친절하고, 이런 모습을 보니까 ‘한국인들의 매너가 정말 좋다.’ 하는 이런 감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매너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일본 사람들로부터 이런 칭찬과 높은 평가를 받으니 한국인들도 일류 국민이 될 수 있다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1975년에 처음으로 해외에 나갔습니다. 일본여행이었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는 여권을 내는데 일회용입니다. 한번 갔다가 오면 그 여권이 무효가 되는 일회용이었습니다. 이 여권을 내는데 한 달이 걸렸습니다. 특히 신원조회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요사이는 비행기를 타면 불안한데 그때는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내려 오래된 호텔에 든 다음 저녁에 거리로 나와서 제가 맨 처음 한 것은 바나나를 한 송이 사가지고 와서 밤 새워 다 먹어치우는 일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바나나를 한 개 사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때 일본여성들은 화장을 짙게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화장품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2년 뒤에 처음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하와이를 경유하여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을 돌아다녔습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던 호텔에 들어갔는데 도난을 당했습니다. 바깥 구경을 하고 객실로 돌아오니까 도둑이 들어서 제 가방을 뒤진 다음 녹음기 등 귀중품만 훔쳐갔습니다. 직접 제가 전화로 파출소에 신고를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1977년 미국은 여러 가지 일로 질서가 무너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요사이 미국과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요사이 미국은 질서가 잡혀있고 흑인들도 얌전해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해졌습니다.


저의 3번째 외국 여행은 1984년이었습니다. 요즘 북한에서 많이 만들고 있는 필로폰 관련 취재로 일본에 갔었습니다.

그 뒤로는 세는 것이 귀찮을 정도로 자주 갔습니다. 제가 여권에 찍힌 외국 여행한 나라 수를 계산해보면 약 60개국이 넘습니다. 2002년에는 마음 맞는 분들과 함께 여행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그 2년 뒤에는 다시 주식회사가 되었습니다.

여행이 저의 직업이 되다시피 했고 저는 어느새 여행 가이드로 변신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해외여행 횟수가 벌써 열 번을 넘었습니다.

2004년부터는 일본을 집중적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47개 도독부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35곳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고 일본을 여행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이 작게 보일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반대였습니다. 일본이 오히려 전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시골은 탄탄하고 기름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은 나라를 세운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침략을 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실패한 몽골의 침공과 태평양 전쟁 중 미국이 폭격한 정도입니다. 1600년 동안 건설하고 생산한 것이 고스란히 축적이 되어 있으니까 속이 꽉 찬 나라가 된 것입니다.

수년 전부터는 국내 여행도 많이 합니다. 유럽과 일본 즉 일류국가를 많이 보았으니 한국이 시시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한국이 전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그렇습니다.

제 고향인 전북 청송은 결코 부유한 농촌이 아닌데 인구 3만 명에 승용차가 만대를 넘습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군인 강원도 양구군은 인구 2만 명에 공무원 숫자는 8백 명이나 됩니다. 활주로 같은 도로, 길이가 3km를 넘는 터널들, 서울 시민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깔끔한 옷차림을 한 시골 사람들. 이런 변화를 몰고 온 힘은 역시 돈이었습니다.

한국의 두 위대한 대통령인 이승만과 박정희도 여행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이승만은 미국을 근거지로 삼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국제정세를 실감했습니다. 박정희도 1930년대 아시아의 서부였던 만주를 비롯해서 중국, 일본, 그리고 해방 뒤에는 미국을 여행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여행을 가장 적게 한 사람이 지금의 노무현 씨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가 구경한 유일한 외국이 일본이었다고 합니다. 60세가 된 사람이, 돈도 많은 사람이 국회의원도 한 사람이 일본 밖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식견을 형성하는데 결코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또한 외국 여행의 경험이 매우 얕습니다. 이들이 여행한 곳은 공산 국가 뿐입니다. 세계 일류국가를 가보지 못하고 3류, 4류 국가만 체험한 셈입니다. 두 사람 또한 비행기를 타기 싫어 기차여행을 탄답니다.

이 바쁜 세상에 모스크바를 근 한 달 간 기차로 왕복하는 자가 다스리는 북한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모택동도 스탈린도 해외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독재자들의 공통점들입니다.

독재자들은 본질적으로 골목 대장입니다. 국내의 무대를 떠나서 광명한 세계로 나가면 초라해진다는 것을 본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하지 않습니다. 김정일이 한국에 올 수 없는 것도 그런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옷차림과 그런 말투로서 누구를 감동시키겠습니까?

비행 공포증이라는게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불안해지는 증세인데 이런 증세가 심한 사람은 아예 비행기를 타지 못합니다. 김정일도 아마 비행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행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한국에서 보면 비행기를 많이 탄 사람일수록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비행기를 처음 탈 때는 신기하고 구경거리도 많고 잠도 잘 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자주 타면 난기류에 걸려가지고 비행기가 흔들린 경험도 생기고, 기계가 잘못 작동을 해가지고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야 이게 무슨 사고가 난 모양이다 하고 가슴이 철렁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비행장이 눈이나 비로 폐쇄되어가지고 구름 속에서 여러 번 선회하다가 기름이 떨어지기 직전에 다른 공항으로 간 적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많이 탄 사람일수록 비행기 공포증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통계로 보면 비행기는 가장 안전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의 수치고 통계일 뿐이고 비행기를 타고 인간이 공중에 떠 있다. 그것도 상공 10km 공중 속을 날고 있다 하는 것 자체가 공포인 것입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쿵하고 내리기 전까지는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일조를 하는 것이 요새 많이 등장하는 비행기 사고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입니다.


여행을 하면 교양이 생깁니다. 책을 읽어서 아는 지식과 여행을 하면서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살아 있는 지식이 서로 결합되어가지고 입체적인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행 동반자들과 나누는 대화도 아주 즐겁습니다. 여행 중에 일어나는 사건들도 또 재미가 있습니다.

여행은 세계를 독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연인원으로 한국인 약 1200만 명이 해외로 나갑니다. 20년 안에는 약 1억 명의 중국인이 매년 해외로 나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해외의 좋은 곳은 거의 다 중국 사람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한국은 자리가 좋기 때문에 즉 일본, 중국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한국은 좀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좋은 화장실에서 발을 씻는 시민들도 보이고,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에서는 휴지 담배꽁초 껌이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원래 이 좌파가 집권을 하면 질서가 무너진다고 합니다. 휴지 버리는 사람이나 청소를 게을리 하는 청소부가 있어도 잔소리 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좌파는 항상 법치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탈북자가 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북한의 제1세대 해외 여행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들은 용감한 분들입니다. 여행은 일종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갈구입니다. 지금 이분들의 숫자가 약 100만 명만 된다면, 즉 매년 북한사람들 100만명 씩만 해외로 나간다면 분명히 북한의 체제는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부터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여행할 때 비자를 받을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법을 잘 지킨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평판이 되었고 미국에서도 그런 한국인은 일단 무조건 비자를 발급해야 된다 하는 이런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드디어 세계에서 모범적 국민으로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북한의 동포들도 언젠가는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