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6·25 전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 달쯤 있으면 6·25 전쟁 58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북한에서는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부르지요? 우리는 6·25 남침 전쟁,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6·25 동란, 또는 6·25 사변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동란, 사변이냐 하면 북한을 우리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반란 집단으로 인정을 하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력충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반란집단의 공격으로 규정을 하기 때문에 6·25 동란, 6·25 사변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요사이에는 국제적으로 한국전쟁, 한국전쟁 하니까 우리도 6.25 남침 전쟁,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북한 여러분들은 아마도 6.25를 북침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6·25는 남침입니다. 그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북한에서도 남침할 때 최전선에서 참여한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침이 뻔한 거짓말인 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하도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소리가 있으니까 몇 가지 거기에 대한 발론을 말씀드린다면 원래 전쟁은 기습한 쪽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며칠 동안은 이기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한국군이 북침을 했으면, 기습을 했으면 한국군이 이겨야 될 텐데 3일 만에 서울이 함락이 되었겠습니까?
이것은 북한이 기습을 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 그 뒤에 여러 가지 문서가 많이 나왔습니다. 러시아에서도 나오고, 중국에서도 나오고, 특히 북한에서 나온 문서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노획문서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6·25 때 북한이 도망을 가면서 남겨 놓은 문서를 미군들이 잔뜩 모아서 미국의 내셔널 아카이브라는 문서보관소에 집어넣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일본인 하기와라 료라는 사람이 분석을 해가지고 '북한문서로 본 조선전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것을 보면 북한문서에 의해서도 남침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남침 시나리오를 쓴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이고 또 러시아 장교들이었습니다. 러시아 장교들이 북한 전쟁계획서를 다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6·25 남침 전쟁은 그 성격이 민족 반역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민족해방을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외세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습니다. 1949년에 스탈린한테 달려가 가지고 전쟁을 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스탈린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1950년에 다시 김일성이가 스탈린을 만나서 전쟁을 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스탈린이 한 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대신에 중국 모택동의 동의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김일성은 다시 모택동한테 가서 동의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일성과 모택동, 즉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서 특히 소련의 무기, 소련의 작전지휘, 소련군의 일부 장교들의 지원을 받아서 일으킨 전쟁입니다.
출발부터 이것은 외세의 개입을 부른 전쟁이었습니다. 민족을 치기 위해서 외세를 불러들였으니까 이런 민족반역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동족을 치기 위해서 외세를 끌어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그 죄를 백 번 죽더라도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국 만주 쪽인 단동에 抗美援朝(항미원조) 전쟁기념관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1950년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택동 중국 공산당 주석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썼을 때가 언제냐 하면 인천상륙작전으로 유엔군이 북진을 하니까 북한군이 붕괴가 돼 가지고 김일성이가 북쪽으로 도망가면서 쓴 편지입니다. 그 편지 원문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비교적 짧게 돼 있습니다.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당신은 모택동입니다)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의하게 되니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립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박헌영. 1950년 10월1일 평양시.”
이렇게 돼 있습니다. 즉 유엔군이 쳐들어오니까 중국 인민해방군을 보내달라는 그런 뜻인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약속한 바와 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모택동이가 인민군을 보내서 김일성을 돕기로 약속을 미리 했다는 뜻입니다.
6·25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김일성은 스탈린의 지시를 따라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모택동은 하나의 약속을 합니다. 미군이 개입을 하면 중공군을 보내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에 따라서 김일성-박헌영은 모택동보고 중공군을 보내 달라,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부탁을 받은 모택동이 10월19일 날 인민해방군을 항미원조군, 지원군으로 위장을 해가지고 압록강을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일성은 두 번의 민족반역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전쟁을 일으킬 때 스탈린-모택동의 도움을 받았고 북진을 할 때 다시 중공군을 끌어들여가지고 통일을 저지했습니다. 이때 중공군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우리는 1950년 10월 말에 통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김일성은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부르지만 민족반역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김일성은 전쟁을 계획하기 전에 미군이 절대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남침을 하니까 화가 난 트루먼 대통령이 미군을 보내게 되었고 유엔군의 깃발로 여러 다른 나라 군대가, 자유진영의 군대가 같이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 들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북진을 할 수가 있었고 중공군이 들어오니까 다시 밀렸다가 지금 휴전선 근방에서 교착 된 전선에서 약 2년 동안 高地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유엔군, 민간인까지 합쳐서 약 300만 명이 죽었습니다.
특히 공산당에 의해서 남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은 남한에서 약 20만 명을 납치해 갔습니다. 이 20만 명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의사들, 과학자들, 기술자들, 관리들, 그리고 한국사회를 움직이던 중견간부들을 모두 납치해가지고 갔습니다.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이런 민족적 비극을 만든 자가 김일성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선이 교착이 되면서 1951년부터 1953년 사이에 고지전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김일성은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스탈린에게 휴전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미군이 피를 많이 흘리도록 해야 다른 나라에서, 유럽에서 미군이 강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한국에서 미군을 오랫동안 붙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얼마나 이게 잔인한 이야기입니까? 즉 고지전을 하면서 수많은 인명이 죽도록 방치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소련에 이득이 된다는 이런 뜻입니다. 뒤늦게 김일성은 휴전을 해달라고 애걸복걸하지만 스탈린은 매정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탈린이 1953년 3월에 죽었습니다. 소련도 이제는 휴전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넉 달 뒤에 휴전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왜 휴전협상이 이렇게 오래 끌었는가 하면 포로문제가 있습니다. 그때 유엔군이 중국군과 북한군을 포로로 한 10만 명 이상 잡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북한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포로가 있었습니다. 반공포로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들까지 북한으로 보내주면 북한에서 처형당하기 때문에 이 반공포로들을 북한으로 보내주지 않기 위해서 2년 동안 전쟁을 해가면서 이 반공포로들의 인권을 지켜냈습니다.
굉장한 인권보호입니다. 굉장한 인도주의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반공포로 숫자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이 2년 동안의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인권의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한 미국의 고집, 이것은 굉장히 존경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1953년 7월27일에 3년 1개월 정도의 전쟁이 끝났습니다. 38선과 거의 비슷한 선에서 휴전선이 그어졌습니다. 전쟁 전에 북한 땅이었던 설악산을 우리가 가져오고 남한 땅이었던 개성을 우리가 빼앗겼습니다.
서부전선이 상당히 서울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불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 휴전하는 과정에서 韓美상호방위조약이 맺어졌습니다. 즉 한미동맹이 이때부터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서 미국과 한국은 양쪽이 침략을 받을 때 서로 도와주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서 미군이 많을 때는 7만 명 정도 한국에 주둔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김일성이가 再남침을 시도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한미동맹은 군사적 동맹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 동맹이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마음씨 좋은 나라와 친구가 돼 가지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게 되고 이것이 그 뒤에 한국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또는 6·25 남침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세계사적인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미동맹이 만들어지면서 한반도의 남쪽을 지켜냈습니다. 동시에 일본은 한국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경제부흥이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독일이 다시 재무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독일은 전범 국가이기 때문에 재무장을 금지당했으나 미국이 소련과 대응하기 위해서는 독일을 재무장시킬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대만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6·25 전쟁이 없었으면 대만은 일찌감치 중공한테 넘어갔을 것입니다.
또 미국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냉전체제로 가면서 군비를 강화했습니다. 그리하여 소련과 군비경쟁을 하게 시작했고 결국은 경제력이 강한 미국이 승리해서 냉전이 끝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군대가 60만, 70만 군대로 성장을 해 한국사회에서 가장 조직되고 선진한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고 이 군인 출신으로서 박정희란 사람이 5·16 군사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뒤에 한 30년 동안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세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군인출신들의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경제발전을 하고 동시에 노태우 시대 때 민주화도 이룩하는 등 군인들의 세상이 되고 이 군인들이 경제발전과 국가발전에 성공을 했습니다.
박정희란 사람은 이 6·25 남침전쟁이 없었더라면 민간인으로 끝났을 사람인데 김일성이가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민간인이 되었던 박정희가 다시 군복을 입고 장교가 되었습니다.
이 박정희란 사람은 원래 공산당에 약간 넘어갔다가 적발되어 가지고 재판을 받고 군복을 벗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단 군으로 복귀한 다음에는 반공투사가 되어가지고 경제발전을 통해서 김일성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공은 어떻게 보면 김일성이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만약 그때 김일성이가 남침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남한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발생해 가지고 월남처럼 1960년대에 가면 적화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이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셈이 되어 한국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일하고 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었으니까 6·25 전쟁은 비극이지만은 아니었습니다.
6·25 전쟁을 통해서 강건한 한국인이 만들어지고 거대한 군사조직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투지를 갖게 되고 열심히 일하게 되고 그리고 미국과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발전이 바로 이 전쟁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전쟁 그 자체는 비극이지만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국민이나 국가가 목숨을 걸고 열심히 일하다가 보면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전쟁을 많이 한 나라일수록 나라가 발전하고 민주주의도 발전하고 일류국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6·25 전쟁은 참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6·25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휴전이기 때문에 6·25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축구로 말하면 중간에 쉬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이 6·25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이냐, 그것은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후손인 김정일을 제거를 해 북한 동포를 해방시키는 이 자유통일을 해야 6·25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 6·25를 끝장내는 데는 이제는 북한 동포 여러분들의 역할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戰犯 김정일, 그리고 그 전범을 에워싸고 있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이자들을 몰아내어야 6·25 전쟁 때 희생된 그 수많은 생명의 원혼을 우리가 달래고 그리고 한반도에서 이제는 더 이상 전쟁이 없고 억압이 없는, 수용소가 없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한국이 우리 역사상 신라통일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일류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날까지 남한 북한 같은 민족으로서 손을 잡고 같이 싸우면서 그날을 앞당깁시다. 감사합니다.
김일성은 민족반역전쟁의 주범
- 趙甲濟(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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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20, 1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