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장군이 아니라 치사한 졸병

한 번도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워본 적이 없는 김정일과 백선엽,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의 리더십 비교.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장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북한사람들은 김정일을 김정일 장군이라고 부르고 김정일도 장군이라고 불리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군이 김정일과 같이 행동하는지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일은 우선 군대생활을 한 적이 없습니다. 군대생활은 해보지 못한 사람은 장군이 될 수 없습니다. 김정일은 한 번도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장군이라고 불리는 나라도 아마 북한뿐일 것입니다. 장군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좋은 모범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이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은 6.25 김일성의 남침시 1사단장이었습니다. 비록 기습은 당했지만 잘 싸워가지고 부대가 와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분은 낙동강까지 밀려가지고 낙동강에서 최후 방어선을 펼 때 거기서도 잘 싸웠습니다. 대구 근방에 있는 다부동이라는 전선을 지켜냈습니다. 그곳을 지켜내었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모아가지고 인천상륙작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방어 작전을 지휘한 사람이 백선엽 장군입니다. 이분은 나중에 육군참모총장에 장관까지 지내시고 지금도 나이가 88세인데도 아주 건강하게 여러 가지 좋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군들도 백선엽씨를 아주 존경합니다. 그래서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 깍듯하게 인사를 차리고 주한미군사령관이 오면 백선엽 장군을 찾아뵙습니다.

백선엽 장군은 리더십에 대해서 위기를 맞았을 때 지도자가 어떤 일을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8개항으로 이렇게 정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과연 김정일이가 북한동포 여러분들이 위기에 맞았을 때 이런 일을 했는지를 비교해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백선엽 씨의 리더십 8개항입니다.

1. 과학적으로 예측하라. 리더는 수많은 생명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이다. 2. 지휘자는 부하 속으로 들어가고 현장을 뛰면서 민심과 사기와 환경을 파악해야 한다.
3. 앞장서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부하에게 시키지 말라.
4. 공격하라 방어로는 이길 수 있다.
5. 선동하지 말고 사기를 올려라. 신바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6. 부하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라. 그리고 칭찬하라.
7. 진심으로 설득하라. 설득은 선동이 아니다.
8. 위기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 실패하면 원칙을 다시 점검하라.

김정일이가 과연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까? 특히 백선엽 장군이 한 이 말이 아주 가슴에 남습니다. <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부하에게 시키지 말라. >김정일 이가 할 수 없는 일을 김정일은 부하에게 시키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을 배가 고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이 변하려면 김정일 이가 배가 고파야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장군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웨스턴 모얼랜드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미군의 사령관으로서 한 5년 동안 싸웠던 사람이고 나중에 미육군 참모총장이 되었습니다. 별명이 <웨스티>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1958년에 미국 최정예 사단인 제 101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 받았었습니다.

캔터키주 포트캠벨이라는데 사단 본부가 있었는데 부임한 직후 낙하훈련을 했습니다. 이런 훈련을 할 때에는 바람이 센지, 약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신호를 보내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신호가 낙하해도 좋다는 녹색연기가 나왔습니다. 웨스트모얼랜드 사단장도 낙하산을 쥐고 뛰어내렸습니다. 제 502연대 장병들도 낙하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 장군이 땅에 내려서 보니 바람이 예상외로 세게 불었습니다.

그는 몇 백 메타를 낙하산에 끌려가다가 겨우 다른 장병들이 와서 낙하산을 주저앉히는 바람에 다치지 않고 설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강풍에 끌려가지고 훈련하던 병사들이 7명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훈련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날씨가 나쁘다고 해서 전쟁을 중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상상태에서 낙하훈련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단장이 점검을 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사단장은 다른 사병들은 대기하도록 하고 혼자서 낙하산을 쥐고 뛰어 내렸습니다. 땅에 내리니까 또 바람이 불어서 겨우 멈출 수 있었습니다. 웨스트장군은 낙하훈련을 중단시키고 육상훈련만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를 분석한 결과 낙하산을 빨리 분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야 되겠다. 즉 낙하산을 쥐고 땅에 내렸을 때 병사가 낙하산을 빨리 떼어낼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장치를 개발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이런 사고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를 김정일의 행동과 비교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웨스티 장군이나 백선엽 장군이나 이런 분들은 위험한 일은 자기가 먼저 앞장섰습니다. 장군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어디에 있습니까? 항상 북한동포 여러분들의 제일 뒤쪽에 서 있는 것입니다. 대기근이라는 일종의 전쟁과 싸워서 희생한 분들은 여러분들이고 김정일은 여러분들의 등 뒤에서 아주 호화로운 식사만 하면서 살만 찌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장군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삼국통일을 하는데 앞장섰던 신라의 김유신과 임진왜란 때 그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을 지켜내었던 이순신장군입니다. 그러나 김유신과 이순신은 차이가 있습니다. 김유신은 성공한 장군이고 이순신은 불운한 장군입니다. 그 차이는 뭐냐? 장군을 알아주던 시대에 태어난 김유신과 장군을 알아주지 않는 선비들이 통치하던 시기에 태어난 이순신의 차이인 것입니다.

김유신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삼국사기를 읽을 기회가 드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는 삼국사기가 잘 번역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한국인에게는 성경이라든지 불경이라든지 또는 공산당원들한테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같은 꼭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우리나라 민족사가 2000년인데 그 중에 1000년이 이 책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김유신에 대한 부분에서 아주 몇 가지 꼭 기억하고 넘어갈 만한 문장이 있습니다. 김유신전이라고 해서 일종의 전기를 삼국사기에 불어넣었는데 김유신이 열일곱 살 때 굴 속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면서 도를 닦던 시기에 난성이라고 불리는 도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난성이라는 도사가 왜 청년이 이런 어려운 짓을 하는가고 물으니까 김유신이 하는 말이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적국이 무도한 이리와 범이 되어 우리나라를 침략하니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저는 신라 사람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보면 마음과 머리가 아픔으로 어른께서는 저의 정성을 민망히 여기시어 좋은 전술을 가르쳐주십시오.>

여기서 <나라와 원수를 보면 머리가 아픔으로.> 이 말이 아주 멋진 말입니다. 열일곱 살에 김유신은 신라를 치는 백제와 고구려의 행동을 보면 화가 나서 마음과 머리가 아팠다고 합니다. 일종의 의협심이죠.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하려는 의지가 생겨났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 당이 신라까지 치려고 하는 정보를 입수한 뒤에 이뤄진 어전회의에서 김유신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개의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째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아무리 신라를 도와서 삼국통일을 시킨 당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신의 존재를 무너뜨리려고 하면 개가 주인을 물듯이 반드시 자위적인 조취를 취해야 된다는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김유신 또한 백선엽 장군이나 웨스트 모얼랜드 장군처럼 솔선수범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전선에 갔다가 돌아와서 집으로 가려고 할 때 또 전쟁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 들르지도 못하고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족들이 먼 곳에서 김유신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김유신은 차마 집에 들르지는 못하고 부하를 시켜 집 근처에 있는 그 우물에 가서 물을 퍼오게 해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만약 그때 김유신이 지금 김정일이가 하는 식으로 다른 사병들은 다 전선으로 가는데 자신은 자기 집에 가서 잘 먹고 잘살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김유신 장군의 아들 원술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전쟁에 나가서 패했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김유신은 살아서 돌아온 아들을 아들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김유신이 죽었습니다. 아들 원술랑이 아버지의 초상집에 와서 문상을 하려고 하니까 김유신의 부인, 즉 원술랑의 어머니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로 취급하지 않았으니까 어머니도 아들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원술랑은 그 뒤에 큰 공을 세우고 중이 되었습니다. 김유신은 자기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제자를 대하는 태도가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장군인 것입니다. 이순신에 대해서는 유성룡이라는 사람이 쓴 <징비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다룬 책입니다. 여기에 이순신을 이렇게 표현한 대목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유성룡이가 이순신을 삼군 수군통제사로 천거를 했기 때문에 이순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어렸을 때부터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 이순신은 이렇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는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것 또한 평소 그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 형 이신과 이효신은 그보다 먼저 죽었는데 이순신은 그 자손까지 자기자손처럼 길렀으며 조카들을 모두 결혼시킨 후에야 자기 자식들이 혼례를 올렸다. 그는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운이 부족해 100가지 경문을 하나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통제사 이순신은 군 병영 안에서 갑옷을 벗는 일이 결코 없었다.>

이것도 김정일이 하는 행동과 비교해 보시면 참고가 될 것입니다. 이순신은 항상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마음으로 몸가짐을 바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전쟁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전쟁에서 갑자기 용감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용감해지려면 평소의 생활이 모범적이어야 되고 훈련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남북한이 정면충돌을 하면 북한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잘 하지 못하는 군대가, 평소에 잘 하지 못하는 장군이 실지 전쟁이 났을 때 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따라서 장군이 아니고 장군이라고 사칭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김정일을 부를 때는 절대로 장군이라고 불러주시지 말기 바랍니다.

장군은 김정일과 같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그러나 전쟁 중에 모함에 걸려서 끌려가서 옷을 벗기고 옥중생활을 하다가 강등되어서 졸병으로 종군했습니다. 그것을 <백의종군>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원균이 패전하는 바람에 다시 지금으로 놓고 보면 '해군참모총장' 당시로는 '삼군수군통제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점검을 해보니까 군함이 12척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며 배를 더 지원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때까지 싸우지 않았을 텐데 이순신은 상부에 보고를 할 때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이 남아있다.>즉 <저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고 이순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런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 12척을 데리고 가서 명량해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이룩합니다. 이것이 장군의 모습입니다. 김정일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북한동포 여러분들한테 시키고 있는, 따라서 장군이 아닌 치사한 졸병에 불과합니다. 장군은 계급이 높다고 장군이 아닙니다. 부하들한테 존경을 받아야 장군인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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