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2월16일은 김정일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날을 맞추어 탈북자, 납북자들이 돈을 모아서 북한으로 풍선을 보냈습니다. 삐라가 들어 있었고 북한 돈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워 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정일의 생일은 북한에서 큰 명절이라고 합니다.
한 개인의 생일이 명절이 되는 나라는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누구의 생일도 명절이 되지 않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생일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워싱턴과 링컨의 생일이 유명합니다.
김정일의 생일이 있었던 바로 그 전주에 링컨대통령의 탄생 200주년 행사가 미국에서 열렸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링컨 탄생 20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미국 사람 중에서 세계 도처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링컨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1809년에 태어났고 1865년에 암살됐습니다. 쉰여섯 살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이 짧은 기간에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1860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고 그 다음 해에 취임하자마자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남북전쟁은 미국의 남쪽에서는 노예를 쓰고 있었고 북쪽에서는 노예제를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예제도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분리 운동을 하다가 결국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미국인구가 3000만 명인데 이 전쟁에서 약 60만 명이 죽었습니다.
아주 참혹한 내전을 거치면서 북군이 결국 승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링컨 대통령을 노예해방자로서 존경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분열을 막은 통일 대통령으로서 존경하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링컨 대통령은 정규 교육을 18개월밖에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나머지는 전부 독서를 하고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들 네 명을 낳았는데 어른이 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고 나머지 세 명은 다 어린 시절에 죽었습니다. 결혼도 그렇게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아주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이야기하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고 기분 좋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링컨과 김정일을 비교하면 어떤 인간이 태어난 것이 불행도 되고 행복도 된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남한에서는 링컨 대통령처럼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이 세상을 밝게 만든 분이 있습니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에 아주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박정희의 어머니는 큰 딸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박정희라는 이 생명을 지워 버릴까 하고 간장 한 사발을 들이마시고 기절을 했습니다. 또 밀기울을 끓여서 마시고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배 속에 있는 생명이 지워지지 않으니까 섬돌에 올라가 뛰어내리기도 하고 장작더미 위에서 곤두박질도 치고 수양버들 강아지 뿌리를 달여 마시고 정신을 잃는 등 이렇게 자해를 했지만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아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박정희를 낳았습니다. 그때 어머님의 나이는 45세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어머니는 박정희를 잘 돌보게 되었습니다. 또 미안한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박정희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여위어서 젖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밥물에다가 곶감을 넣어서 끓인 죽 같은 것을 먹고 자랐다고 합니다. 변비가 생겨서 혼이 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두 살 때에 기어다니다가 화로에 들어가서 아주 크게 다친 적도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인 1970년 4월26일, ‘나의 소년시절’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 유필원고가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어린 시절에 박정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주 눈에 선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박정희는 아홉 살 때에 구미 보통학교라는 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나의 소년 시절’이라는 글을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상모동에서 구미읍까지는 약 8km로 시골에서는 20리 길이라고 불렀다. 오전에 4시간 수업을 했다. 학교 수업 개시가 오전 8시였다. 20리 길을 새벽에 일어나서 8시까지 지각하지 않고 그 시간에 닿기는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시간이 좀 늦다고 생각하면 뛰어서 20리 길을 가야 했다. 동네에 시계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간을 알 도리가 없고 다만 가다가 매일 도중에서 만나게 되는 우편배달부를 여기서 만났으니 오늘은 늦다 빠르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또 하나는 경부선을 다니는 기차를 만나는 지점에 따라 시간이 빠르고 늦다는 것을 짐작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 기차시간표가 변동이 되면 엉뚱한 착오를 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 가는 봄과 가을은 주변 길의 풍경이 아주 상쾌하여 학교에 다니는 것이 기쁘기만 하였다.
여름과 겨울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여름에 비가 오면 책가방을 허리에 동여매고 삿갓을 쓰고 갔다. 아랫도리 바지는 둥둥 걷어 올려야 한다. 학교에 가면 책보의 책이 거의 비에 젖어 있었다. 겨울에는 솜바지 저고리에 솜버선을 신고 두루마기를 입고 목도리와 귀걸이를 하고 눈만 빼꼼하게 내놓고 뛰어 갔다. 땅바닥이 얼어서 빙판이 되면 열두 번도 더 넘어 진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앞을 볼 수가 없다. 시골 논두렁길은 눈이 많이 오고 눈보라가 치면 길을 분간할 수가 없게 되기도 한다. 사곡동 뒤의 솔 밭길은 나무가 우거지고 가끔 늑대가 나온다 해서 어린 아이들이 혼자는 다니지를 못했다.
어느 눈보라가 치는 아침에 이곳을 지나다가 눈 위에서 늑대 두 마리가 서로 희롱하는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고 마을 아이 3명이 집으로 되돌아가고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그곳을 지날 때는 언제든지 늑대가 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눈이 동그랗게 되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빨리빨리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해방 후 고향에 돌아가 보니 나무 한 그루 없이 싹 벌목을 해서 뻘건 벌거숭이산이 되어 있었다, 학교 다니는 나보다도 더 고생을 하는 분이 어머니다.>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주 그림처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눈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보면 바로 스케치를 하고 설명을 하더라도 이처럼 시각적으로 떠오르도록 실감 있게 설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박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아주 극진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는데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일기라든지 글에 자주 나옵니다. 어머니의 고생에 대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계도 없이 새벽 장사를 보시고 일어나서 새벽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고 다음에 나를 깨우시는 것이 어머니였다. 겨울에 추울 때는 세숫대야에 더운 물을 방안에까지 들고 와서 아직 잠도 덜 깬 나를 세수를 시켜 주시고 밥을 먹여 주신다.
눈도 덜 떨어졌는데 밥이 먹힐 리가 없다. 밥을 먹지 않는다고 어머니한데 꾸지람을 여러 번 들었다. 아침밥을 먹고 있으면 같은 동네 꼬마 친구들이 살짝 곁에 와서 학교 가자고 부른다. 어머니는 이 아이들을 방안으로 불러들여 따뜻한 구들목에 앉히고 손발을 녹이도록 권하셨다.
밥을 먹고 채비를 차리고 나면 셋이 같이 새벽길을 떠난다. 아직 이웃집에서는 사람들이 일어나지도 않은 새벽길을, 얼어붙은 시골길을 미끄러지면서 뛰어간다. 망태고 밭두렁 길을 뛰어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청녕둑 (집 앞에 있는 산 이름) 소나무 사이에 우리들을 보내 놓고 애처로워서 지켜보고 서 계시는 어머니의 흰 옷 입은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도 늘 그 장소에 나와 계시거나 더 늦을 때는 동내 어귀 훨씬 밖에까지 형님들과 같이 나오셔서 '정희 오느냐 정희야' 하고 부르시면 '여기 가요'하고 대답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왜 좀 일찍 오지 이렇게 늦느냐 하며 걱정을 하시면서 어머니는 자기가 두르고 온 목도리를 나에게 또 둘러주신다.
뛰어 왔기 때문에 땀이 나서 춥지도 않은데 어머니가 자꾸만 목에 둘러주시는 것이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구들목 이불 밑에 나의 밥그릇을 따뜻하게 넣어 두었다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어머니는 상머리에 앉아서 지켜보신다.
신고 온 버선을 벗어보면 흙투성이이다. 어머니는 밤에 버선을 빨아서 구들목 이불 밑에 넣어서 말린다. 다음날 아침에 또 신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저녁을 먹고 온돌방에 앉아 숙제를 하다가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들어 버린다.
어머니가 억지로 나를 깨워서 소변을 보게 하고 옷을 벗겨 그대로 재우면 곤드레가 되어 떨어져 자버린다. 나의 나이 아홉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6년 동안을 이렇게 지냈다. 학교에 가지고 간 도시락이 겨울에는 얼어서 찬밥을 먹으면 나는 종종 체했고 체하면 때론 가끔은 음식을 토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침밥을 먹지 않고 가기도 했다.
이럴 때는 하루 종일 어머니는 걱정을 하신다. 그 당시 시골에는 소화제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하면 이웃집의 침쟁이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가서 침을 맞았다. 이상하게도 그 침을 맞으면 체증이 낫는 것 같았다.
나의 왼손 엄지손가락 뿌리에는 지금도 침을 맞은 자국이 남아서 빨갛게 반점이 남아 있다. 이 반점을 보면 지금도 어머니 생각과 이웃집 침쟁이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한없이 평화스럽지만 가난한 나의 고향, 가끔 학교에 가져가야 할 용돈이 필요하면 어머니가 한 푼 두 푼 모아두신 1전짜리 동전 5전 10전짜리 주화를 궤짝 구석에서 찾아내어 나에게 주신다.
한 달에 월사금이 그 당시 돈으로 60전이었다. 매월 이것을 납부하는 것이 농촌에서는 큰 부담이었다. 특히 우리 집 형편으로서는 큰 부담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한 푼이라도 생기면 나의 학비를 위해서 모아 두신다. 때로는 쌀을 몇 되씩 팔아서 모아두신다.
계란 한 개가 1전이었다고 기억이 난다. 형들이 달라고 하면 없다 하시고 알뜰히 모아 두신다. 어머니는 담배를 좋아하셨다. 때론 담배가 떨어져도 나의 학비를 위해 모아 두신 돈은 쓰실 생각을 아예 안하셨다.
때론 학교에 가져가야 할 돈이 없으면 계란을 몇 개 떨어진 양말짝에 싸서 주신다. 이것을 가지고 학교 앞 문방구점에 가면 일본인 상점 주인이 계란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고 상한 것 같지 않으면 한 개에 1전씩 쳐서 연필이나 공책과 교환하여 주었다.
계란을 들고 가다가 비오는 날이나 얼어서 빙판이 된 날 같은 때는 미끄러져 넘어지면 계란이 팍삭 깨여져 버린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면 계란을 깨었다는 꾸지람을 한 번도 하시는 법이 없다. 넘어져서 다치지 않았느냐 하실 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보냈습니다. 박대통령이 평생 동안, 62년 동안 살면서 이 사람이 한 일은 세 가지 직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교사였습니다. 그리고 군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혁명가였습니다. 박대통령은 구미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에 가서 5년 동안 교사가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문경 산골에서 교사를 3년간 하다가 군인이 되었습니다. 만주 군관학교에 가서 장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군인이 되었기 때문에 1961년에 정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개조했습니다. 이분은 국민을 군대식으로 교육하고 국가를 혁명적으로 개조한 사람입니다.
그 마음 밑바탕에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교육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었어도 가난한 사람들과 꼭같은 식생활을 하고 옷을 입었습니다.
이분이 부하한데 총을 맞고 돌아 가셨을 때 차고 있었던 시계는 세이코 시계라고 아주 허름한 시계엿습니다. 넥타이 핀이 있었는데 메끼가 벗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허리띠는 해져 가지고 하얗게 되어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시신을 진단한 군의관은 대통령이라고 알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박정희의 가난한 생활 때문에 대한민국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밥을 먹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동포 여러분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비극은 김일성이가 오래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행복은 박대통령의 62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고 곧 정권이 바뀌고 또 연부 역강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항상 젊은 대한민국처럼 질주를 하다가 보니까 남북한의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다 위대한 어머니 밑에서 난다고 합니다. 어릴 때 받은 사랑, 이것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이 바로 링컨과 박정희 의 생애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박정희 前대통령의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희의 어린 시절
- 조갑제(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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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25, 13: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