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벌서 봄이 찾아왔습니다.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 동안에 움츠러 들었던 식물들, 동물들, 그리고 사람들까지도 봄의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 힘이 솟아나고 더 활기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북한 동포 여러분들은 지난 겨울 동안 고생이 많았을 줄 압니다. 그러나 계절은 항상 바뀌게 됩니다. 겨울 다음에는 반드시 봄이 오게 돼 있습니다.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번에 우리 박정희 대통령의 태어날 때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은 성격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정반대 되는 사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있었기에 오늘의 북한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과 북의 차이는 이승만 박정희, 김일성 김정일 이렇게 비교해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을 훼손한다든지 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남한에서는 이승만 박정희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많이 비판하는 사람일수록 출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일성에 대해서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잘한 것밖에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의 생애가 적나라하게 밝혀져서 잘못한 것, 실수한 것까지 국민들이 알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고등학교 다닐 때 아주 성적이 부진했습니다. 당시에 교사를 양성하는 대구 사범학교라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박대통령은 대구 사범학교 입학시험에 100명중 51등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1학년에는 전체 97명중 60등이었습니다. 2학년에는 83명중에 47등이었고 3학년에는 74명중에 67등을 했습니다. 4학년에는 73명중에 73등, 그야 말로 꼴찌를 했습니다. 5학년에는 70명중 69등을 했습니다.
완전히 꼴찌 출신 대통령입니다. 꼴찌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하나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나서 그분의 성적표가 공개됐기 때문에 이제는 다 알려진 사실이 됐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이 공부를 못했느냐 하면 이분이 머리가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성적표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성적표를 보면 박정희 학생은 결석이 아주 많았습니다. 2학년에는 10일 3학년에는 41일 4학년에는 48일 5학년에는 41일간이나 결석을 했습니다.
왜 결석을 많이 했는가 하면 당시 박정희 학생은 기숙사에 머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박정희 학생은 가정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기숙사비를 낼 돈을 마련하지 못해 고향인 구미에 내려갔습니다. 돈을 모아서 돌아올 때까지 고향에 머물게 됐습니다. 이 기간이 결석일로 잡혀 있기 때문에 성적이 그렇게 됐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가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성격이 어둡다는 글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박정희는 이때 검도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사격, 나팔, 육상에는 아주 뛰어났다고 합니다. 비록 학업에서는 꼴찌였지만 군사훈련 시간에는 성적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 박정희 몸무게는 키가 159cm, 체중 59.5kg, 가슴둘레 88cm,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결국 대구사범 때 자기의 적성을 제대로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성적이 내려갔고 가정생활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꼴찌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한국은 좌익 출신도 대통령이 되고 고등학교 출신도 대통령이 되고 박정희처럼 고등학교 때 꼴찌 출신도 열심히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꼴찌도 좌익출신가도 그리고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도 상인 출신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재벌 회장도 될 수 있습니다.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기회가 있는 곳, 그리고 자유가 있는 곳, 그 기회가 없는 곳, 자유가 없는 곳의 차이인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더불어 절약 정신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검소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검소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복잡하게 살지 않고 사치스럽게 살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야 정신이 맑아지는 것입니다. 특히 권력을 잡은 사람, 높은 직위에 올라간 사람은 반드시 절약을 해야 정신이 맑아지고 오직 국가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헌신을 하게 됩니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로서 무서운 권력자가 됐습니다. 더구나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자신의 양말을 직접 빨았습니다. 지금 애국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 중에 국방장관을 한 이상훈 대장이 있습니다. 이분이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원을 했습니다.
1961년 어느 날 광주에 순시를 갔습니다. 이상훈 대위가 경비를 서고 있는데 세면실에서 인기척이 났다고 합니다. 李대위가 가까이 가서 보니 박정희가 직접 양말을 빨아서 줄에 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신고 온 한 켤레밖에 없어서 밤에 몰래 나와서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양말 손수건 그리고 속옷을 직접 빨았다고 합니다. 지방 순시 중에 묵게 되는 호텔이나 여관방에서 대통령이 나올 때는 항상 깨끗이 정리해 놓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습관은 오래 동안 군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지만 조금 심한 편이었습니다. 이불은 반드시 개어 놓고 슬리퍼는 가지런히 놓고 화장실 안도 청소를 하고 쓴 수건도 정리를 해 놓고 경호원에게는 베개 밑에 팁을 넣어 두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최고의회 의장 시절에 또는 대통령 시절에 아래 사람들한테 좀처럼 반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이발사 보일러공 청소부들에게도 꼭 존댓말을 하였습니다. 박정희는 사람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박대통령은 키가 작지만 약간 팔자걸음을 걸었습니다. 구두 뒤축이 한쪽만 비스듬히 깎이곤 했습니다. 직원을 시켜서 뒤축을 맞바꾸게 했다고 합니다. 오른쪽 뒤축을 왼쪽에 붙이고 왼쪽 뒤축을 오른쪽에 붙여서 또 신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공평하게 깎이어 평평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뒤축을 갈았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중에 살이 쪄서 바지의 허리가 상당히 조였습니다. 그러면 허리를 수선을 해서 다시 입었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백을 구멍이 날 때까지 10년간 사용했다고 합니다. 경호원이 낡은 골프백을 멋대로 새 것으로 바꾸었다가 아주 혼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헌 것을 다시 찾아오게 하여 계속 썼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절약 정신도 유명합니다. 이분이 머물렀던 이화장에 가보면 대통령 시절에 지나간 타임지를 스크랩북으로 이용해 그 위에다가 보존하고 싶은 기사나 글을 오려서 붙여 놓고 사용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분지 상자를 잘라 옷장으로 쓴 것도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은 오스트리아 사람 프란체스카 여자인데 이분도 대단한 절약가였습니다. 전구 전등을 양말 속에 넣어 가지고 해진 양말을 깁기도 했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연필을 쓰다가 짧아지면 긴 뚜껑을 끼워 가지고 아주 작아질 때까지 그냥 썼다고 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생명을 사랑하신 분이셨어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 나무 꽃 강아지들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쪽으로 아버지에 대해서 쓴 글이 없더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박정희의 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가 대통령 시절에 쓴 일기가 있습니다. 그 일기엔 나무 꽃 낙엽 구름 등 자연에 대한 감상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이 작은 것에 대한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녹아 있습니다.
그 일기를 읽어보면 이것은 권력자의 일기가 아니라 소학생의 일기처럼 순수하게 느껴집니다. 너무 꾸밈이 없어 대통령이란 분의 일기에 깊은 맛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 나이가 그 당시에 박대통령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 보니까 절대적 권력을 잡고도 소학생과 같은 순수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순수하다는 .뜻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다 알고 겪으면서도 자기의 정신만은 맑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청탁을 다 들이마시되 맑은 혼을 유지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한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산림녹화를 성공시켰습니다. 북한에서 한국에 오신 분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산에 나무가 많아 산림이 울창하다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이 산림녹화를 성공시킨 것은 단순이 산에 나무가 많아야 홍수가 나지 않는다는 그런 계산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나무 하나하나를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한 분이였기 때문입니다.
박대통령은 공업단지를 늘인다든지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조경개념을 해야 하였습니다. 조경이란 뜻은 아름답게 경치를 가꾼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공예산업을 멀리하고 환경 보존을 국가 정책으로 삼는 데도 매우 빨랐던 사람입니다.
그는 출장을 가다가도 자연 친환경적인 분위기가 좋은 곳으로 골라 쉬고 그런 곳에서 음식점을 찾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자연을 잘 감상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 박정희가 자주 찾아갔던 음식점들은 지금도 잘 됩니다.
요컨대 이분은 아름다움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선미란 말이 있습니다.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이 진선미 가운데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 저절로 진실되고 착해진다는 이야깁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설명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은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김일성 김정일도 아마 학교에서 공부를 그렇게 썩 잘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록을 여러분들이 알고 있습니까?
김일성 김정일도 박정희처럼 낙엽, 꽃, 나무, 구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습니까? 북한에서 만든 아름다운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박대통령이 나무에 대해서 한 이야기를 한 가지 더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975년 8월27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박대통령이 청와대 기자실에 들렸습니다. 산림녹화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에는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산들이 모두 병에 걸린 것처럼 흙이 많이 보여서 마음이 삭막했는데 요즘은 모두 푸르게 변해 마음도 시원해집니다.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입산 금지시키는 것을 강화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박정희는 입산금지라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산불이 나고 사람이 들어가면 나무가 상하니까 일정한 기간을 두고 아예 산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조금 과격한 조치였지만 한국에서 산에 산림이 울창하게 된 가장 큰 역할은 입산금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자들이 “산림녹화의 비방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무도 사람과 같이 생각해서 대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산에 가보면 알겠지만 나무도 사람이 만지는 것을 싫어해요. 등산로 근처의 나무들은 시들고 측 늘어져 있는 데 비해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있는 나무들은 싱싱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어요,
제가 예를 하나 들어 보지요, 삼성그룹의 이병철씨가 용인농원을 만들기 전에 산림에 관계되는 대학교수들을 만나 산림녹화 방법을 물어 봤는데 그 때 어떤 교수가 아무런 수식어도 없이 “입산금지를 시키면 됩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병철 씨는 이 사람이 누굴 놀리나 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답니다. 후에 이병철 씨가 일본에 가서 산림에 관해 일을 한 총독부 관리를 만나보았는데 그 사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대로 시험을 해 보니 그게 진리라고 이병철 씨가 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처럼 나무도 따뜻하게 대우를 해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나무를 그렇게 아끼는 사람은 인간도 존중하고 아낄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김일성과 박정희의 마음에서 결정적 차이는 생명에 대한 애착,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인간입니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인간애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 남한에서 나무가 잘 자라고 사람이 아주 행복하게 사는 것은 그 바탕에 생명에 대한 권력자의 생각의 차이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南北 권력자의 생명에 대한 사랑
- 조갑제(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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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10, 17:07











